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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최재훈 Apr 05. 2024

우리는 성인일까요?

영화 <미성년> 리뷰

영화 <미성년> 스틸 컷
괴괴한 소동의 시간이다. 우리의 매일 매일은 그렇게 혼란 속에 갇혀있는 것 같다. 배우 김윤석의 감독 데뷔작 <미성년>은 늙은 채로 덜 자란 어른들의 뒷걸음질과 자신의 인생과 함께 어른들의 공백까지 껴안으며 익어가는 아이들을 조용히 바라보는 영화다.


우리는 나이와 경력을 앞세워 가르치고 다그치며, 곧 지워버릴 책임감 없는 넋두리로 진짜 어른의 자리를 아이들에게 양보하는 어른들을 자주 본다. 사실 성숙함은 나이로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제 인생을 책임지는 동시에 남의 인생을 쉬 탓하지 않고 품을 수 있어야 진정한 성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어른들도 좀 억울하다. 흔히 사람들은 나이 든 사람에게 관용과 지혜, 여유와 성공을 기대한다. 미혹되지 않고, 관대하며 청춘을 응원하는 든든한 조력자이길 바란다. 그러면서도 내 인생과는 좀 떨어져서 사실은 나와 상관없는, 그리고 내가 필요로 할 때만 꺼내볼 수 있는 실용서 혹은 백과사전 같길 바란다. 그 기준에서 조금만 멀어져도, 중년은 속물 혹은 꼰대라는 별칭으로 폄하된다.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나이가 든다고 절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 태어날 때부터 사는 것이 지겹고 권태로운 사람은 없다. 저 사람들 꽤나 지긋지긋한 일상을 견디는 것에 익숙해 보이지만 누구에게나 나이가 든다는 것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것은 언제나 첫 경험이다. 단지 곁눈질을 하면, 길을 벗어나면 힘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어느새 책임져야할 것들이 많아져서 참을성이 늘어나는 것뿐이다. 모두 매일 겁나지만 유연하게 숨기는 법에도 익숙해진다.


영화 <미성년>은 여러 가지 면에서 낯설지만 성숙한 메시지를 지닌 영화다. 배우 김윤석은 이기적이고 미성숙한 인물을 연기하지만 감독 김윤석은 성숙한 어른의 태도를 취한다. 그는 서두르지도 과한 욕심을 부리지도 않는다.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우리 모두가 끝내 풀어내지 못했던 어긋난 관계의 어려움과 그 지난하고 답답한 속내를 들여다보면서, 한심한 어른의 모습을 전시한다. 동시에 그들을 꾸짖지 않는다.  가공된 극적 장면을 욕심낼 법도 한데, 배우들이 진심을 이야기할 시간을 충분히 주는 그의 연출 방식은 매우 사려 깊어 보인다.


연출과 함께 더욱 조용하고 사려 깊은 것은 영화 속 음악이다. 박성도 음악감독이 참여한 <미성년>의 영화음악은 극 속에서 아주 성숙한 어른 같은 역할을 한다. 기타, 피아노, 현으로 구성된 잔잔한 음악은 단 한 번도 인물의 감정과 표정에 앞서는 법이 없다. 오히려 표정 뒤에 숨어 신중하게 들여다봐야 이해할 수 있는 오롯한 내면을 표현해 준다. 눈에 띄는 씬 스틸러가 아니라, 영화의 정서를 아우르는 커다랗고 조용한 주인공 같다. 


그럼 점에서 <미성년>에서 음악은 겅중거리며 널을 뛰는 다양한 캐릭터들 사이에서 가장 성숙한 캐릭터가 된다. 돋보이고 싶은 개인적 욕심 대신 묻혀있는 화합을 선택한 박성도의 음악이 김윤석의 연출과 하모니를 이룬다. 그렇게 <미성년>의 음악은 뒷모습이 쓸쓸한 우리들의 모습과 아주 많이 닮아 쓸쓸하지만, 또 아름답다.  

 

명대사 

엄마. 내가 엄마를 좀 좋아하게 해줄 순 없었어?


미성년 (2019)

•감독 : 김윤석

•출연 : 염정아(영주), 김소진(미희), 김혜준(주리), 박세진(윤아)     

•국내개봉일 : 2019.04.11

•관객수 : 290,000명

•볼 수 있는 곳 : 티빙, 왓챠, U+모바일


글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등단하였다.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으며 영화·문화예술 관련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나는 아팠고어른들은 나빴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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