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앵커> 리뷰
엄마. 고마웠다가 억울했다가 그리웠다가 이내 지긋지긋해지는 그 어떤 기억. 온전한 내 편이라 믿다가도 가장 힘든 순간에는 오히려 멀리하게 되는 어떤 사람. 엄마라는 단어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어떤 것들을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그래서 엄마라는 이름을 들으면 아늑하다가도 아득해진다.
영화 <앵커>의 주인공 세라(천우희)는 방송국 간판 앵커이지만 후배에게 자리를 위협받고 있다. 어느 날 생방송 직전 자신이 곧 살해될 거라는 익명의 제보 전화를 받는다. 기회를 잘 잡으면 진짜 앵커로 자리를 굳힐 수 있을 거라는 엄마(이혜영)의 말에 세라는 제보자의 집을 찾고, 거기서 모녀의 시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날 이후 세라는 이상한 환영에 시달린다.
사실 엄마라면 당연히 아이를 낳아 키운다고 믿지만 세상 수많은 여성들은 선택을 해야 한다. 이 아이를 키울 것인가, 버릴 것인가. 그리고 자식을 키우기로 결정했다 하더라도 모성이 본능처럼 짝패가 되어 주지는 않는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의 불안과 분열, 커리어 우먼 조차도 피해갈 수 없는 사회적 차별이라는 외피를 입고 있는 영화 <앵커>는 ‘모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사실 모성은 본능인가 학습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은 당장이라도 베어버릴 것 같이 날카롭다. 희생하는 엄마, 즉 모성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둔 사회에서 이런 의문은 아주 불손한 것으로 여겨졌다. 우리는 땅과 하늘, 바다를 다스리는 여신들이 자식에게 한없이 헌신하는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완성되는 이야기를 무의식중에 배워왔기 때문이다.
<앵커>는 모성애와 그 희생이 인간의 가장 숭고한 혹은 고귀한 것이라는, 그래서 모성을 당연하게 강요받는 수많은 엄마들을 비추는 거울 같은 영화다. 자신을 문지르고 지워 딸의 그림자가 되는 대신, 딸의 후광을 등에 입고 자신을 살아보려는 엄마의 욕심은 우리 사회에서 환영받을 수가 없다. 그래서 엄마가 온전한 자신이고자 하는 의지는 처연하고 슬픈 결말을 만든다.
모성을 강제하는 우리 마음에는 골 깊은 차별이라는 뿌리가 있다. 차별이라는 땅에 심은 세계는 자라나는 세계가 아니라, 늪처럼 가라앉는 세계이다. 차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옛날에 비해 참 좋아졌다고 흔히 말하는 경우가 있다. 절대적이어야 할 가치를 비교급으로 이야기 한다는 건 아직 꽤 멀었다는 말이다.
<앵커>는 사회적 성공과 그 성공을 위해 여성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미스터리한 공기 속에 녹여 넣으면서 출산과 육아의 문제까지 그 뿌리를 뻗는다.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라 밝히진 못하지만, 엄마와 딸 사이의 관계에 대한 <앵커>의 시선은 집요하다. 결국 나의 재능과 상관없이, 골 깊은 차별로 무너진 사람은 다시 누군가를 탓 하는 것으로 위로받는다. 빈곤한 죄의식이 대물림되는 것이다.
정지연 감독은 세라와 엄마를 하나의 프레임에 계속 걸쳐두어 마치 엄마를 세라의 그림자 혹은 분신처럼 보여준다. <앵커>는 우리가 엄마라 부르는 그 여자의 젊은 시절, 딸 세라의 입장에서는 뭉텅 잘려나간 과거의 시간을 세라의 현재와 뒤섞으면서 엄마와 딸을 모녀로 한정짓지 않고, 여성이라는 커다란 하나의 원 속에 담는다. 어쩌면 여성의 세계는 엄마의 시간을 지나, 딸의 시간에 이르러서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우리는 엄마의 과거를 잘 모른다.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엄마였던 그 여성, 우리가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여성, 우리의 엄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제 몫의 성공에 엄마의 욕심까지 업고 뛰어가느라 찢어진 시간의 발에 걸려 넘어져 있던 엄마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엄마를 진짜 알고 있는 걸까?
앵커(2022)
•감독 : 정지연
•출연 : 천우희 (정세라), 신하균(최인호), 이혜영(이소정)
•국내개봉일 : 2022.04.20.
•관객수 : 17만
•볼 수 있는 곳 : 넷플릭스, 티빙, 왓챠, U+모바일tv
글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등단하였다.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으며 영화·문화예술 관련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