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양치기> 리뷰
어릴 때부터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아이는 나빠서 벌을 받는다고 배웠다. 이솝의 ‘양치기 소년’ 우화는 재미로 거짓말을 하다가 정작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아무도 믿어주지 않아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다는 무서운 경고였다. 그런데 우화를 읽다보면 이런 질문이 생긴다. 양치기 소년은 왜 혼자 양을 지키고 있었는지, 왜 거짓말을 해야만 어른들은 나타나는지, 어쩌면 소년은 거짓말을 해서라도 어른들을 불러 자기를 좀 봐달라고 한 것은 아닌지 궁금해진다.
손경원 감독의 <양치기>는 상반기 개봉한 다양성 영화 중 가장 강렬한 질문을 남기는 영화다. 주인공 수현(손수현)은 결혼을 앞두고 있는 초등학교의 담임교사다. 수현의 반에는 요한(오한결)이라는 아이가 있는데 가정폭력의 피해자이고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수현의 친절함에 빠져 그녀에게 집착하는 요한은 어느 날 수현의 집까지 쫓아온다. 배가 고프다는 요한을 돌려보낼 수 없는 수현은 그를 집안에 들이는데, 그때부터 그녀의 일상은 엉망이 된다.
<양치기>는 한 아이의 거짓말 때문에 교권이 무너지는 현재와 공권력으로 포용되지 않는 가정 폭력의 문제를 같은 층위에 올려놓고, 눈 돌리지 않고 끝까지 집요하게 들여다본다. 그리고 지독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 속 거짓말은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와 맞닿아있다. 요한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소리치지만 귀찮은 아이 취급을 받는다. 요한의 거짓말로 잔인하게 무너지는 수현과 거짓말을 해서라도 내 목숨을 지켜야겠다고 결심한 요한의 이야기는 폭력이 발현되는 학교와 폭력이 일상이 된 가정의 이야기와 겹치면서 거울처럼 서로를 비춘다.
학교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아이와 어른의 진실 공방이라는 조금은 익숙한 구도를 보여주지만, 진실 공방을 미스터리한 관점에서 숨겨두지 않는다는 것이 <양치기>의 다른 점이다. 오히려 송경원 감독은 관객에게 모든 것을 드러내놓고 보여준다. <양치기>는 요한의 거짓말과 그 거짓말이 만들어내는 수현의 비극, 그 어떤 상황도 숨기지 않는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누가 속는지 패를 다 깐 후에도 영화를 끝까지 긴장감을 가지고 보게 만드는 묘한 기운은 대체 요한이 왜 거짓말을 하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질문에서 온다.
영화 속에서 뚜렷하게 설명되지 않지만 현재 인연을 끊은 수현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 수현에게 끔찍한 기억을 준 것 같다. 수현은 자신의 과거를 숨기기 위해, 요한은 자신의 현재에서 달아나기 위해 계속 거짓말을 한다. 비오는 날 우산을 씌워주지 않았다면, 배고프다는 요한을 집으로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폭력에 시달리는 요한을 구하려 하지 않았다면 수현의 비극은 시작되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요한의 거짓말뿐만 아니라 여지를 준 수현의 태도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의심은 진실을 잽싸게 덮어 버린다.
모두가 구경꾼처럼 상황을 방관하고 방치하고 있는 <양치기>의 세상 속에서 눈에 띄는 것은 진짜 어른인 수현의 표정이다. 선의가 배반당하고, 모두가 등을 돌리는 순간에도, 수현은 결국 모든 상황을 스스로 책임진다. 그리고 끝까지 요한을 가해자의 프레임에 가두지 않고 그의 입장을 어른스럽게 받아들인다. 극악한 거짓말 끝에, 살아남기 위해서 가해자가 되어버린 요한의 표정은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우울하고 외로웠다. 하지만 보육원에서 아이들과 뛰어노는 요한의 표정은 처음으로 어린아이의 행복한 표정이다. 수현은 비로소 어린아이가 될 수 있는 요한을 위해 그의 죄를 묻어두어야 할지, 그래도 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할지 선택해야 한다.
한 아이의 미래와 생존에 대한 질문 앞에서 어쩌면 진짜 어른의 표정은 진실이 아니라 삶을 향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잔인하지만 집요하게 <양치기>가 바라는 미래는 아이러니하게도 희망이다. 요한의 미래인 수현, 수현의 과거였던 요한이 서로를 할퀴다가 끝내 서로의 거짓말을 인정하고 품어내는 장면에서 우리는 관망하는 삶의 비극이 아니라, 스스로를 깨친 어떤 삶의 희망을 보게 된다.
글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등단하였다.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으며 영화·문화예술 관련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