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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최재훈 Aug 27. 2024

꿈의 값을 치러 아이들은 자란다

마테오 가로네의 '이오 카피타노' 리뷰

'이오 카피타노' 스틸 컷

※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괴괴한 소동의 시간이었다. 사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낭만적이지도 예쁘지도 않았다. 모두 겪는 일이라고, 다들 그렇게 살았다고 말하는 어른들은 나빴고, 나는 그래서 아팠다. 묘하게도 우리는 죽을 것처럼 아픈 시간을 보냈지만, 막상 죽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주 멀리 있는 나의 꿈을 향해 손을 뻗어보는 시간이 있어서 숨 좀 쉬며 살 수 있었다. 내가 꾸는 꿈은 자면서 꾸는 꿈이 아닌데, 세상은 자꾸 정신 차리라며 어깨를 흔든다. 그래도 두 눈 똑바로 뜨고 우리는, 우리의 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세상 어떤 곳에는 잠들어 꾸는 꿈조차 허락되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정말 죽을 것처럼 아픈 순간, 진짜로 죽을 수도 있다. 


지독한 꿈의 값

세이두(세이두 사르)는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에서 살고 있는 소년이다. 가수가 되고 싶은 그는 사촌 무사(무스타파 폴)와 함께 꿈을 이루기 위해 유럽으로 가려한다. 반대하는 엄마를 속이고 몰래 집을 떠났지만, 두 소년의 여정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힘겹다. 길에서 만난 어른들은 그들을 속이고 위협한다. 여행이 아니라 목숨을 건 생존의 길 위에서도 세이두와 무사는 꿈을 향한 여정을 포기하지 않는다.  

마테오 가로네 감독은 ‘고모라’, ‘리얼리티 : 꿈의 미로’, ‘도그맨’으로 칸 국제영화제에서 3회 수상한 세계적인 거장이다. 그의 작품 세계를 가장 잘 드러내는 ‘고모라’와 ‘도그맨’이 국내 개봉을 하지 않아서 세계적인 명성에 비해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이오 카피타노’는 그의 전작들처럼 삶 보다 더 지독한 생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소년들이 주인공인 만큼 절망보다는 희망의 온도를 조금 높였다.

가수가 되고 싶은 꿈을 안고 유럽으로 향하는 여행. 어떤 사람들에게는 조금만 애를 쓰면 이룰 수 있는 일이다. 결국 이뤄지지 않더라도 당연히 누구나 꿈은 꿔볼 수 있다. 하지만 가난으로 무기력해진 어떤 세상에는 꿈을 꾸는 일 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아버지가 없는 집안의 가장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건설현장의 막노동인  ‘이오 카피타노’의 소년들은 하루하루가 생존이기 때문에 애초에 꿈을 꿀 수 없는 환경 속에서 방치되어 살아간다.

어른들은 소년의 삶을 이끌어주는 나침반이 아니다. 그들은 이곳을 떠나는 삶은 죽음에 가깝다 경고하고 그들을 현실에 단단하게 붙잡아두려 한다. 세이두의 엄마는 세네갈을 떠나려는 사람들은 사막과 바다에서 죽는다고 경고하지만 소년들의 꿈을 막지 못한다. 국경을 넘는 일은 위험하고 고단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세이두와 무사는 꿈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모든 위협을 감수한다. 

마테오 가로네 감독은 세이두라는 캐릭터가 실제 세네갈 소년의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소년은 이탈리아 법에 따라 감옥에 투옥된 상태였다고 한다. 어쩌면 이탈리아에 도착한 세이두 역시 이탈리아에 발을 들이지 못했을 것 같다. 국경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단단한 벽처럼 외지인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현재를 투영하는 일은 공정해야 하기에, ‘이오 카피타노’의 카메라도 선을 넘지 않는다.


인간이라는 존엄함

‘이오 카피타노’는 불법 이민자의 지독한 삶과 상황을 보여주지만, 그것을 지독하게 그리지 않는다. 마테오 가로네 감독은 지옥 같은 삶 속에 여전히 유머와 판타지를 심어둔다. 세이두의 상상을 동화처럼 그리고, 곳곳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이야기를 배치하면서 숨이 턱 막히는 지독한 상황 속에서도 관객들이 숨 쉴 틈을 만들어 준다. 인종 차별, 사기, 협박, 이주민의 현실로 구성된 억센 줄기 사이에 웃음과 쉼, 사람들의 온기를 녹여 넣어서, 물기 있는 감정을 전달한다.

세이두의 꿈이 단순히 가수가 되어 유명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 고단한 여정 속에서 어느 누구도 희생시키지 않고 무사히 이탈리아에 도착하는 것이 될 때, 그리고 결국 이탈리아에 배가 닿아있는 순간 이야기는 단순한 꿈의 여정에서 인간의 존엄함에 대한 이야기로 그 층위가 높이 뛰어오른다. ‘이오 카피타노’는 불법으로 국경을 넘는 난민들을 불쌍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세이두의 선량한 변화를 통해 그들의 삶을 응원한다. 

‘나는 선장’이라는 이탈리아어 제목을 굳이 번역하지 않은 이유는 제목이 영화의 너무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망망대해로 나서서 내 인생 하나 책임지지 못할 것 같던 세이두가 수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나와 타인의 삶을 책임진 순간, 그는 그 어떤 사람보다 든든한 선장이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소년은 단순히 꿈을 꾸는 소년이 아니라, 오롯이 제 삶의 주인이 되기도 한다. 

당연히 가져야 하는 아이들의 꿈이 어떤 아이들에게는 지독한 값을 치르고 생존의 지옥을 겪어야 겨우 꿔볼 수 있는 꿈이라는 사실은 마음에 흉을 지게 한다. 하지만 지독한 여정의 끝에 소년은 자라났고, 세이두가 실제로 살아낼 삶은 명성이나 박수갈채를 쫓는 삶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이끌고 지켜내는 삶이 될 것이다. 그리고 세이두는 이제 누군가의 나침반이 될 수 있다. 그제야 비로소 소년은 온전한 어른이 될 자격을 가진다. 

이탈리아에 도착한 배 안에서 두려움 보다는 희망에 가까운 세이두의 표정과 심장소리를 보여주는 엔딩은 기억에 각인이 되어 쉬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이 미래의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나침반은 험난한 미래와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그를 이끌 것이다. 이탈리아에 도착한 두 소년의 미래가 우리의 미래처럼 마냥 장밋빛이 아닐지라도 여전히 심장은 뛰고 삶은 열려 있다. 


[영화음악 정보 

Andrea Farri / Sony Music

이탈리아의 영화 음악가 안드레아 파리가 작곡한 곡들로 이뤄져있다. 특히 영화가 끝나도 엔딩 크레디트를 다 보고 일어나길 권한다. 세네갈에서 이탈리아까지의 지도를 따라 그려주는 두 소년의 여정을 담은 엔딩 위로 흐르는 근사한 음악이 귀에 익은 것 같다면, 맞다. 초반에 세네갈의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만든 세이두의 거칠던 음악이 근사하게 편곡이 되어 흘러나온다. 마치 세이두의 미래를 응원하는 것 같은 이 엔딩은 음악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한다.    


글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등단하였다.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으며 영화·문화예술 관련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나는 아팠고어른들은 나빴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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