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행복이 얼마나 갈까?

다시 술을 찾는 아버지

by 최일출

아버지의 술 마시는 빈도와 양이 현저하게 줄었다. 아버지 나름대로 노력하는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처음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

우리 가족은 가끔 외식도 했다. 조금씩 정상적인 가정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우리에게도 행복이 찾아왔다. 누나는 블로그를 참고해서 창원의 맛집 목록을 뽑아왔다. 내 생일날에는 아버지가 외식을 하자고 해서 집 근처에 있는 오겹살 식당에 갔다. 나는 오겹살을 처음 먹어보았는데, 고기가 고소하고 쫄깃쫄깃했다. 직원이 멸치젓도 찍어서 먹어볼 것을 권했는데, 고기가 소스에 버무려져 돼지고기의 깊은 맛이 배어 나왔다. 가족들과 함께 이렇게 좋은 분위기에서 음식을 먹기는 처음이었다.

바로 그 순간 아버지가 직원을 불렀다. 아버지는 “이렇게 맛있는 음식에 술이 빠질 수 없지”라며 소주를 1병 시켰다. 한순간 좋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듯 우리 가족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갑자기 정적이 흐르며 초긴장의 상태가 지속되었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고개도 들지 못했다. 엄마가 아버지를 쏘아보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도 이 적막을 깨뜨리지 못했다.

그 순간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여러분! 딱 한 잔만 마실 테니까. 안주가 너무 좋아서 술이 생각납니다. 그러니 가족 여러분,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혼란스럽고 걱정스러웠다. 나만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다들 얼어붙은 채로 아버지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우리의 우려와는 달리 아버지는 정말로 술을 몇 잔밖에 마시지 않았다. ‘아버지가 술을 절제하시다니’ 살면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나는 깨어있는 날에 이렇게 좋은 일이 일어날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식당을 나오면서 누나가 혼잣말을 했다.


‘이런 행복이 얼마나 갈까?’


아니나 다를까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아버지는 술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술병의 개수도, 술을 마시는 양도 나날이 늘어갔다. 나는 그렇게 변한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찾은 행복인데...'


누나는 이런 날이 올 줄 미리 알았는지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누나는 고등학생이었지만, 이미 의젓한 어른과 같이 생각하고 행동했다. 누나에게는 아이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엄마는 다시 집을 나갔다. 나는 엄마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엄마가 나가면 자식들은 누가 돌봐줘야 하는 건지 따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엄마는 누나에게도 말하지 않고 집을 나간 것 같았다.

가끔은 집에 들어오기도 했는데, 집에 있는 날들이 길지 않았다. 엄마의 가출은 습관적으로 반복되었다. 그러다가 연락이 완전히 끊겼다. 우연히 아버지와 누나의 대화를 들었는데, 엄마는 직장도 그만뒀다고 했다. 눈물이 쏟아졌다. 이제는 ‘엄마가 우리를 찾지 않으면 더 이상 엄마를 만날 수가 없다.

그 시절, 나는 친구들과 노는 것도 컴퓨터 게임도 재미가 없었다. 할 줄 아는 게 없고, 딱히 할 것도 없어서 기존에 하던 일을 반복하고는 있지만, 인생에서 재미란 게 사라졌다. 삶에 의미도 사라졌다.


아버지의 음주는 더 이상 조절되지 않았다. 엄마가 집을 나간 것은 반복되는 행동이기에 아버지가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엄마가 직장까지 그만둘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엄마로 인한 충격으로 술을 더 마시는 건지, 아니면 그동안 절제 했던 것 때문에 술을 더 찾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엄마가 없는 날에는 현실에서 악몽이 펼쳐졌다.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누나와 나를 불러서 꿇어 앉히고는 잔소리를 퍼부었다. 아버지는 우리가 말을 안 들어서 엄마가 집을 나갔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가 밖에 나가서 엄마를 찾아오라고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우리의 역할은 아버지의 화풀이 대상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엄마를 찾는다고 밖으로 쏘다녔다. 추운 밤이었지만, 집에서 아버지에게 욕을 먹는 것보다는 밖에서 떨고 있는 게 훨씬 더 나았다. 누나와 1시간 정도 돌아다니다가 집에 들어가면 아버지는 주무시곤 했다.


한 번은 아버지에게 쫓겨난 후에 누나가 눈물을 쏟았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아버지의 괴롭힘이 어우러져서 누나가 울고 있는 것이었다. 누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강하고 의젓하다고 생각했는데, 누나 역시 아이였다.

'하기야 누나 또한 겨우 19살의 나이인데, 어떻게 이 어려움을 혼자서 감당해 낼 수 있을까' 나는 아홉 살이 많은 누나에게 너무 많은 의지를 하고 있었다. 누나의 눈물을 보니 나 또한 눈물이 쏟아졌다. 나중에 내가 크면 누나를 꼭 행복하게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