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저녁, 아버지는 누나를 불렀다. 누나에게 긴히 할 말이 있다며 방문을 잠갔다. 큰방에서는 아버지의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엄마를 어디에다 빼돌렸냐?”라는 아버지의 고함이 들렸다. 나는 거실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누나를 보호해주고 싶었지만, 나에게는 누나를 구할 힘과 용기가 없었다. 무기력함을 애써 모른척하며 나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TV를 억지로 보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니 아버지는 “엄마가 누구랑 바람이 났냐?”라며 누나를 쏘아붙였다. 점점 분위기가 안 좋은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나는 화가 났다. ‘엄마가 도망간 이유는 순전히 아버지 때문이다. 오죽하면 아이들까지 버리고 도망갔다는 것을 동네 사람들도 다 알고 있는데, 아버지는 이 책임을 누나에게 돌리고 있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엄마가 외도를 하고 있다고 의심까지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책임이라는 것을 모른다. 집 안의 가장으로 가족을 돌보는 게 아니라 당신으로 인해 벌어진 일들을 가족들에게 뒤집어 씌운다.
큰방에서는 아버지가 누나를 더욱 윽박질렀다. 그러더니 누나를 때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TV의 음량을 최대한 올렸다. ‘그래야 저 무서운 소리가 안 들릴 테니까’ 나는 두려움에 떨면서 TV를 보고 있는데, 날카로운 누나의 비명이 들려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게 틀림없었다’
다급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아버지와 누나가 있는 방으로 달려갔다. 문을 열려고 하는데 문이 안에서 잠겨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급한 마음에 어깨로 문을 밀치며 거칠게 손잡이를 돌렸다. 그러자 잠겨 있던 문이 벌컥 열렸다.
나는 씩씩거리며 방에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미지근한 액체가 밟혔다. 피였다. 하마터면 미끄러질 뻔했다. 자세히 보니 검붉은 피가 방바닥에 가득하였다. 누나는 꿇어앉은 채로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고 있었다. 감싸 안은 손 사이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손에는 칼이 들려있었다. 누나의 피와 아버지의 칼은 본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누나 죽일 거면 나부터 죽여.”
아버지는 내가 소리를 질러서 그런지 아니면 갑자기 정신이 돌아왔는지 “미안하다”라고 말하며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누나는 칼에 찔려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었다. 우리는 번갈아 가며 칼에 찔린 부분을 수건으로 꽉 눌렀다. 지혈이 제대로 됐는지는 모르지만, 다행히 피가 멎은 것 같았다. 나는 누나에게 병원에 가자고 말했지만, 누나는 밤이 늦어 병원에 가더라도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누나의 고집에 밀려 병원에 가지 못했다. 실제로 너무 늦은 시간이기도 했기에 진료를 못 받을 거라는 누나 말이 맞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밤늦게 우리가 나가려고 했다면 틀림없이 아버지와 실랑이가 벌어졌을 것이다. 아마도 누나는 그걸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버지는 여러모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딸을 칼로 찌르질 않나 아픈 딸을 방치하지 않나.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