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생

손성훈입니다

by 최일출

나의 거친 반항도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누그러졌다. 내가 다닌 학교는 지역의 사학 명문 학교인데, 학생들의 진학에 최선을 다하는 학교라고 정평이 나 있었다. 그 바탕엔 열정적인 선생님들과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

당시의 우리 학교는 1학년 때부터 야간자율학습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나는 공부하기가 싫어서 웬만하면 야자를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선생님은 그런 학생들을 한 명씩 불러서 상담을 했다. 나는 선생님과 상담하며, 고등학교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수능을 준비하려면 어떤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처럼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도 스스로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살짝 들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공부를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우선은 공부를 안 한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그런 내가 늦은 밤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한다는 게 무리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나의 상황은 책에만 집중해서 공부할 환경이 되지 않았다. 나는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구체적인 생각도 또한 무엇이 되고 싶다는 꿈도 미처 꿔 보지 못한 상태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세상에 대해 불만이 가득했고 여전히 방황하고 있었다.

나는 야자를 하기 싫어서 “기초가 약해서 혼자서 공부하기가 힘들다”라고 핑계를 됐다. 선생님은 “그러니까 기초를 잡기 위해서라도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다시 “아는 게 별로 없어서 학원에서 공부하는 게 좋을 것 같다”라고 주장했다. 사실 난 학원에 다닐 생각도 별로 없는데 에다 엄마가 학원엘 보내줄 형편도 안 되었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학원도 수업도 아닌 스스로 자신의 학습 계획을 마련해서 꾸준히 공부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무리 좋은 학원도 스스로 공부할 생각이 없는 학생을 공부하게끔 만들어 주지 않는다”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사람의 인생을 다른 사람이 바꾸기 힘든 것처럼 공부도 마찬가지다”라고 하셨다. 결국 "스스로 공부할 힘이 없으면 성적은 향상되지 않는다"라고 잘라서 말하셨다. "공부하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학교에서 해결하라. 네가 원한다면 도와줄 사람은 많다”라고 하셨다. 선생님의 말씀을 요약하면 ‘혼자서 공부하는 데까지 해 보고, 궁금한 내용이 있으면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물어보라’라는 것이었다. 끝으로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야 질문도 할 수 있기에 질문을 잘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공부하라.”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완강한 태도에 나는 약간 누그러졌다. 어쩌면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관심을 보여주며 나를 잡아 주길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대부분의 반 학생들이 야간자율학습을 했기에 나는 학교의 분위기와 선생님에게 눌렸던 것 같다. 얼떨결에 친구들을 따라 처음으로 공부를 진지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우리 반 친구들은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많았고 그 친구들을 보며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그 시절에 함께 공부했던 우리 반, 친구들이 서울대 의대를 필두로 경찰대 및 부산대 등 서울과 이 지역의 명문대학교에 많이 합격한 걸로 봐서 우리 반 친구들은 공부에 정말 진심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만큼 학급 분위기도 좋았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나 또한 좋은 반 분위기에 점점 녹아들었다.


나는 학교에 적응하면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학생으로 변해갔다. 점점 안정적인 아이로 변했고 학교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다녔다. 야자를 마치고 밤늦게 귀가할 때면 나는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공부하는 것도 생각보다는 힘들지 않았다. 공부를 하면서 잘 모르는 부분은 선생님 말씀대로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처음에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아 물어보는 게 꺼려졌는데, 자존심을 내려놓고 물어보니 오히려 좋은 친구를 사귈 기회가 생겼다. 사실 처음부터 아는 게 별로 없었기에 자존심이 상할만한 일도 별로 없었다. 공부를 통해서 친구도 사귈 수 있게 되니 그야말로 일거양득이었다. 그렇게 사귄 친구들과 주말에는 독서실도 갔다. 가끔, 노래방에 가기도 하고 PC방에서 놀기도 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공부하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변화된 내 모습에 나도 놀라곤 했다.

극심한 방황과 어른들에 대한 반항도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대학에 대한 꿈이 생겼다. 나는 부산대학교를 목표대학으로 정했다. 부산대학은 국립대학이라 학비도 적을 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서는 제일 좋은 대학이었고, 엄마에게서 독립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학이었다. 게다가 이왕 공부를 시작했으니 실력보다 높은 대학을 목표로 잡아서 도전해야 좀 더 열심히 공부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내가 잘한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공부는 여전히 못하지만, 대학에 가고 싶다는 꿈이 생긴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커다란 변화였다.

나는 그렇게 나의 긴 방황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인생을 향해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