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사제동행 산행

손성훈입니다

by 최일출

고등학교 시절에는 재밌는 일들이 많았다. 그 당시 우리 학교는 정시전형으로 위주로 대학에 진학했었는데,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는 수시전형 위주로 진학체계가 전면 개편되던 시점이었다. 이는 달리 말하면 학교생활이 교사 중심의 일방적인 수업에서 학생 중심의 활동 수업으로 바뀐다는 말로 풀이할 수 있다.

학교 교육과정에서 스포츠 리그가 활성화되었고, 음악감상, 합창대회, 대학탐방, 사제동행 산행, 해외 수학여행까지 다채롭고 재밌는 학교생활이 신설되었다.

제대로 된 학교생활을 처음으로 시작하는 나에게 이와 같은 활동들은 한 줄기 빛과 같았다. 이들은 빡빡한 학교 일과 속에서 달콤한 휴식과 삶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학교 내의 활동들을 통해서 친구들도 사귀었고, 덕분에 힘들고 어려울 것만 같던 나의 고교 생활은 즐겁고 재밌는 생활들로 채워졌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설악산 사제동행 산행이었다.


2018년 7월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던 날이었다. 우리는 사제동행 산행의 일환으로 설악산으로 향했다. 산행은 이른 시간부터 시작되었다. 새벽 5시에 기상을 해서 간단하게 조식을 먹고 도시락을 배급받아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했다. 선생님들은 우리가 산행 중에 마실 물과 음식을 나눠주셨다. 간식이라며 자유시간과 각종 사탕도 두둑하게 챙겨주셨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 준비운동을 하면서 몸을 풀었다. 우리는 등산용 스틱을 꺼내 몸에 맞게 고정시킨 다음, 최종적으로 배낭을 점검하였다. 배낭에는 물이 4개, 포카리스웨트 1개, 도시락 1개, 양말 1켤레, 사탕 및 간식이 들어 있었다. 준비를 철저하게 했는지 배낭이 불룩 튀어나왔다. 배낭이 무거워서 짐이 될 것 같았고 어깨에 메는 것도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산행에 대한 경험도 별로 없는데, 무거운 배낭이 신경이 쓰여 산행을 제대로 못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출발 전에 물 2개를 배낭에서 뺏다. 대신에 사탕을 한 움큼 집어넣었다.

단체로 기념사진을 촬영한 후, 6시가 넘어 산행이 시작되었다. 설악산 입구에는 학교의 지킴이 선생님처럼 부스 안에서 등산을 안내하는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인솔에 나선 선생님들을 멈춰 세웠다. 아저씨와 선생님들은 무언가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뭔가 심각한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고받는 실랑이를 요약하면 ‘날씨가 너무 더운데 가능하면 대규모의 산행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어제도 산행 중에 조난 사고가 있었다. 설악산은 초보자들에게 적합한 산행이 아니니 포기하는 것이 어떻냐?’라는 것이다. 안내하시는 분은 진심으로 걱정하며 우리의 산행을 만류하고 있었다.

선생님들도 굽히지 않으셨다. ‘설악산 산행을 위해 평소에도 학생들과 인근의 산을 오르며 체력을 길러왔다. 게다가 창원에서 설악산 산행을 위해 이곳까지 왔는데,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아이들을 면밀하게 관찰하면서 안전하게 산행을 진행하겠다’라고 말씀하시며 우리의 산행을 독려했다.

학생인 우리도 선생님들과 같은 주장을 했다. 설악산 초입까지 왔는데 이곳에서 포기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선생님들과 한 목소리를 내며 인솔자들의 지도에 철저하게 따르겠다고 다짐하며 산행을 강행하겠다고 고집을 웠다. 입구에서부터 산행에 대한 실랑이가 벌어지는 것을 보고는 ‘이번 산행은 어쩌면 싶지 않을 것 같다’라는 예감이 들었다.


드디어 산행이 시작되었다. 한계령에서 출발하자마자 가파른 계단이 연속적으로 펼쳐졌다. 급경사의 계단이 10분 이상 이어졌는데,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피로가 몰려왔다. 선생님들은 이 코스가 험난하다고 말씀하시며 조금만 더 가면 완만한 코스가 나올 것이니 조금만 힘을 내라며 산행을 독려했다. 친구들은 벌써 지쳤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침내 계단을 벗어났다. 계단을 지나왔지만, 쉬운 길은 거의 없었다. 설악산은 산 전체가 바위와 돌투성이였다. 정말 ‘악’ 소리가 날 정도로 올라가는 게 힘들었다. 발을 혹시라도 잘못 디뎌 미끄러질까 봐 한쪽 스틱을 목표 지점에 먼저 올려놓고 한쪽 발을 바닥에 딛고, 반대쪽 스틱을 안전한 지점에 올려놓은 후에 다음 발을 바닥에 내디뎠다.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옮겨 놓는 산행을 1시간 이상 하고 있었다. 그만큼 집중력도 많이 요구되었고, 산행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한참을 올라가자 산행에 적응이 되면서 발걸음에 속도가 붙었다. 일행 중에 누군가가 ‘우와! 멋지다’라며 감탄하는 친구가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앞만 보고 올라와서 그런지 주변의 경치를 둘러보지 못했는데, 친구의 감탄사로 주위를 돌아보니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산은 잘 모르지만, 설악산은 소문대로 명산이었다. 뛰어난 절경과 산세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산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 이전에는 알지 못했다.

우리는 휴식을 취하며 점심을 먹었다. 산에서 먹는 음식은 간단하지만 특별했다. 배낭이 흔들렸는지 도시락 안에 있던 반찬이 서로 섞여서 자연스럽게 옛날 도시락 메뉴가 탄생했다. 식사 후에는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며 산행을 즐겼다.

중턱에 오르자 우리 조에 속해 있는 친구가 쥐가 났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은 최고기온이 섭씨 36℃까지 올라갔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인 데다가 평소 운동을 잘하지 않는 친구가 험난한 산을 오르고 있으니 무리가 올 만도 했다. 게다가 시험기간 동안 공부하느라 체력도 많이 소진된 상태였다. 친구는 대청봉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산행을 끝까지 고집하였다.

우리는 우선 선생님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면서 친구의 상태를 계속해서 확인하며 틈틈이 휴식을 취하며 속도를 조절했다. 안타깝지만 다리에 쥐가 난 친구는 반대쪽 다리까지 경련이 올라오며 더 이상의 산행은 불가능해졌다. 담임 선생님이 그 친구의 산행을 중지시켰다. 친구는 아쉬워했지만 선생님의 설득으로 천천히 하산을 했다. 담임 선생님도 학생에 대한 책임감만 아니었으면 끝까지 등산을 강행했을 것이다.


사실 나도 종아리가 아파왔다.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올라왔지만 얼마 남지 않은 대청봉을 포기할 수 없어서 조금은 무리라는 것을 알지만 계속해서 산을 올랐다. 선생님들의 격려와 나를 부축해 주는 친구들 덕분에 마침내 정상인 대청봉에 이르렀다.

가슴이 탁 트였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기분이랄까? 힘들게 올라서 인지 대청봉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더욱 장관이었다. 아름다운 설악산 정상에서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간식을 먹으면서 잠깐의 여유를 즐겼다.


‘내가 언제 또다시 설악산 대청봉에 오르겠는가?’


이 순간이 너무 소중했다.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 나도 무엇인가를 해 냈다는 것에 짜릿한 쾌감이 들었다. 내 마음속에 있던 답답한 무엇인가도 내려가는 것 같았다.

부상자로 인해 늦게 올라갔기에 정상에서 여유 부릴 시간이 많지 않았다. 단체 사진을 찍고 우리는 황급히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날씨가 무더워 탈수 현상을 보이는 친구들, 몸이 점점 무거워지며 산행에 지쳐가는 아이들이 생겼다.

나도 걷는 게 힘에 겨웠다. 섭씨 36℃의 무더운 날씨에 무리해서 걷다 보니 체력은 고갈되었고 다리의 통증은 더욱 심해졌다. 가지고 갔던 물도 다 마셔버렸고 우리 조에는 더 이상 남은 물이 없었다. 나를 비롯해 우리 조의 친구들이 탈수, 탈진증상이 왔다. 아침에 물을 두고 온 게 두고두고 후회스러웠다. 그나마 사탕을 많이 가져와서 조금은 도움이 된 것 같긴 했지만, 물에 대한 간절함이 갈수록 심해졌다.

나는 다리를 절며 친구들에게 부축을 받으며 내려왔다. 하산 시간은 등산 시간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점점 주위의 친구들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경과되었기에 쉴 수도 없었다. 어느샌가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어두컴컴 해지니 길을 찾는 것도 어려워졌다. 점점 두려움이 몰려왔다.

산에서 어두움을 만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친구들도 걱정이 되는지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친구들은 엄마들에게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어떤 친구는 엄마랑 통화를 하면서 감정이 북받쳤는지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괜히 우리도 감정적으로 휩쓸려서 두려움과 공포에 할 말을 잃었다. 우리는 스마트폰의 플래시를 켰다. 혹시나 해서 보조배터리를 가져온 게 정말이지 큰 도움이 되었다. 어두운 숲에서는 새들이 펄럭이며 날아가는 소리와 짐승들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 났다. 우리는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에도 촉각이 곤두섰다. 친구들은 거의 울 것 같았다. 나는 다리가 아파서 더 이상 걷지도 못다. 나는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이미 다리에 부상을 입은 친구를 데리고 내려갔기에 담임 선생님은 우리가 하산하지 못한 것을 알고 계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담임 선생님은 우리를 안심시키며 차분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이미 구조대가 급파되었으니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아도 인원 파악을 해보니 하산하지 못한 학생들이 있어서 선생님들이 물과 렌턴을 가지고 다시 산을 올라가고 있다고 하셨다. 그러니 당황하지 말고 천천히 내려오라고 하셨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다시 힘이 났다.


우리는 잠시 쉬었다가 다시 힘을 내서 내려가려고 하는데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담임 선생님 말처럼 우리를 구하려고 선생님들이 물을 등에 짊어지고 산을 다시 올라오고 있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조금만 더 내려가면 목적지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물을 들이키며 젖 먹는 힘까지 짜 내었다. 그렇게 친구들과 스마트폰 플래시 라이트로 불을 밝히며 인솔 선생님과 친구들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하산할 수 있었다. 정말 조금만 더 가면 최종목적지였는데, 어두움과 두려움이 몰려오니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했었다.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하니 119 구조대가 헬기로 조난자들을 구조 중이라고 하였다. 헬리콥터는 친구들을 안전하게 속초종합운동장까지 태워서 날랐다고 했다. TV에 지방의 한 고등학생들이 단체로 설악산 산행을 했다가 구조되었다는 뉴스도 나왔다.

주위에는 기진맥진한 아이들이 넘쳐났다. 담임 선생님은 지친 학생들을 버스에 태워서 회복할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다행히 낙오하거나 크게 다친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음식을 먹이고 버스에서 푹 쉴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산행초보자인 학생들에게 설악산은 다소 무리한일정인건 맞지만 선생님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설악산에서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 우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신 선생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설악산 산행은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힘겹긴 했지만,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에 올랐다는 것은 이후로도 커다란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또한 ‘힘들고 어려운 일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서로 돕고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것을 배웠다. 지금도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을 때는 산행에서 배운 협력과 배려를 떠올리며 '어떻게 어려움에 대처할까?'라는 고민 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처한다.

또한 친구들의 소중함과 협력의 위대함에 대해서도 깨달았다. 친구들이 나를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나 또한 조난을 당했을 것이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친구들과 선생님의 도움으로 끝까지 해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해 낼 수 있었고 함께였기에 포기하지 않았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라는 말을 몸소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산행을 함께 한 친구들과는 가족처럼 친밀해졌고 이들로 인해 학교생활이 더욱 즐겁고 풍성해졌다. 지금도 리는 만날 때마다 산행에 관해 즐겁게 이야기하며 아름다운 동행의 길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