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더 이상 마시지 않기로 결심했다. 왜냐하면 술을 마시면 술이 주는 에너지를 아버지처럼 조절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닮아 간다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내가 술을 마시면 아버지와 비슷해진다는 것이 나를 두렵게 했다.
술을 끊자 나에게는 시간이라는 선물이 찾아왔다. 여유롭지는 않았지만, 책값과 독서실에 다닐 비용이 모이자 아르바이트도 그만두었다. 이제는 모든 에너지를 공부에 집중할 시기였다.
그런데 시간이 많아지자 아이러니하게도 공부가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며칠이 지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 소중한 시간을 아무런 대책도 없이 흘려보냈다. 손에는 유튜브를 보기 위한 스마트폰이 놓여있었고, 심심하면 컴퓨터 게임인 LOL을 했다. 밤에는 특별히 하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잠을 자지 않았다.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일어나서 대충 아점을 먹었다. 말 그대로 백수 생활이 시작되었다. 왜 그런지 알 수는 없었지만,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무의미하고 무절제한 생활이 이어지다가 어느새 슬럼프에 빠져들었다.
수능을 망치고 재수를 시작할 때는 '죽기 살기로 공부해야지'라는 마음을 먹었는데 막상 시간이 생기자 어리석은 학창 시절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더니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그저 생각만 하고 몸으로는 행동하지 않는 나태한 인간의 끝판왕이었다.
집에서 빈둥빈둥 놀고 있는 나에게 쏟아지는 것은 엄마의 잔소리뿐이었다. 공부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뿐이었고, 책은 여전히 펼쳐지지 않았다. 엄마와 감정적인 대립이 시시콜콜 발생하여 긴장의 분위기만 고조되었다. 나도 그 시절에 왜 그렇게 시간을 흥청망청 흘려보냈는지 지금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렇게 시간을 낭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재수가 삼수로 이어졌다. 공부를 하지 않는데 점수가 잘 나올 수가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나는 집 안에서도 집 밖에서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누가 보더라도 한심한 존재로 전락해 버렸다. 나는 아무런 희망도 기대도 할 수 없는 어둠의 끝자락에 서 있었다. 내 삶의 바닥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자신감은 완전히 사라졌고, 입시에 대한 두려움마저 생겼다.
이제는 부산대학을 목표로 삼수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가장 익숙한 생활패턴이 백수라서 아무 생각 없이 이 생활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심하지만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이 무엇이 있었을지 모르겠다.
‘나는 왜 공부를 못할까?’
처음으로 나에게 공부와 관련해서 근본적인 질문을 했다. 이미 오래전에 이 질문부터 해야 했는데, 나는 지금까지 나의 자아와 마주하지 않으려 도망 다녔다. 이제는 이 질문에 답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어린 시절에는 공부에 관심이 없지 않았다. 오히려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는데, 성적이 잘 나와서 선생님에게 칭찬받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공부에 관해 떠올리면 실패를 제외하면 떠오르는 게 없다. 공부에 대해서 좋은 경험이나 성공한 경험이 있다면 나 자신을 믿고 꾸준하게 공부해 나갈 수 있을 텐데, 부정적인 경험만 가득하니 아무래도 공부를 잘하는 게 싶지 않은 것 같다.
중학교 때까지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살아도 괜찮았다. 사실 이때는 아빠의 죽음과 누나의 가출이 준 충격이 너무 컸었는지 뭔가에 사로잡혀 살았던 것 같다. 지독한 사춘기를 겪던 시기에 나는 내 삶을 부정하며 허무한 인생에 대해 반항하고 있었다.
누가 공부라는 단어만 꺼내도 ‘공부해서 뭐 하게?’라는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했다. 어쨌든 공부는 내가 세상에서 경험한 가장 재미없고 지겨운 행위였다.
나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처음으로 진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대학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대학이나 전공에 대해, 심지어는 나의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해 본 적도 없었다. 무언가를 생각해 보려고 해도 너무 단편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생각이 잘되지 않았다.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모르는 것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머리를 아프게 했다. 이럴 땐 누군가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 주위에는 나를 이끌어 줄 만한 사람이 없었다.
나는 늘 부산대학이 목표대학이라고 말하지만, 전공할 학과는 아직 결정도 하지 못했다. 어쩌면 나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 부산대학을 목표로 하는 줄도 모르겠다. 모든 게 막연하고 답답해서 숨이 막힌다. 그런 내가 재수를 거쳐, 삼수에, 사수까지 하고 있는 걸 보면 세상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왜 공부를 안 할까?’
재수를 하며 발견한 것인데, ‘공부는 하고 싶은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 날이 많았다.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러나 했는데, 오랫동안 반복되는 무기력은 단순히 피로의 후유증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면서 '혹시 내 안에 나도 모르는 공부에 관한 상처가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의지만으로 극복하기 힘든 무엇인가가 나를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면 이를 상처라는 말 외에 무엇이라고 표현하겠는가?
최정민 작가의 《내 마음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라는 책에는 ‘공부 상처’라는 꼭지가 나온다. 작가님은 초등학교 시절, 무서운 아버지로 인하여 방학 때, 선행학습으로 수학을 매일 10페이지씩 강제로 풀어야 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수학 문제를 억지로 풀어야만 한다’라는 것은 아이에게 공부가 아니라 중노동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작가님은 힘들게 아버지가 내어 준 숙제를 풀어나가다 결국에는 한계에 부딪혔다. 아버지의 꾸중이 두려운 작가님은 전과를 구입하여 답을 보고 베꼈다고 한다. 그렇게 숙제 검사를 받는 것이 작가님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전과를 베끼는 방법으로 위기는 넘겼지만, 아버지의 의도와는 달리 작가님은 수학 과목을 제일 싫어하게 되었다고 한다. 수학 성적 향상을 위해서 시킨 수학 선행이 오히려 작가님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숙제 검사 때마다, 나는 부모님을 속이는 나쁜 아이라는 죄책감의 감정과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린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수학을 잘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던 아버지의 마음과는 달리 나는 수학에 대한 상처만 잔뜩 쌓아가고 있었다.”
나에게도 공부 상처가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아니 처음 몇 번의 시험에서는 전 과목에서 백 점을 받을 정도로 공부에 소질이 있었다. 초등학생들에게 학습에 대한 흥미를 제공하려고 시험문제를 쉽게 출제했던 것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던 원인이었겠지만, 어쨌든 나는 공부에 소질이 있었다.
나는 시험에서 몇 차례 좋은 점수를 받게 되자, 엄마에게 나의 성과에 대해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엄마가 퇴근한 후에 몇 번이나 시험에서 전 과목 백 점을 받았다고 자랑을 했다. 엄마는 처음 몇 번은 들어주더니 어느 날엔가 “문제가 쉬워서 다들 백 점을 받았는데,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매일 같이 떠드느냐?”며 핀잔을 줬다.
그 순간, 공부에 대한 나의 관심은 완전히 사라졌다. 엄마가 했던 그 한마디는 아들의 학습 의지를 완전히 꺾어 버렸다. 더 이상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그 여파로 나는 공부를 걷어차 버렸다. 학교 수업 시간에 혼자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쳤고,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잤다. 일부러 수업을 안 들은 적도 많았다. 드러내 놓고 이상한 아이처럼 행동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산만했고, 골치 아픈 아이로 전락했다.
선생님이 수행평가와 관련한 과제물을 내주면 ‘어차피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데 굳이 집에 과제물을 준비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적당하게 해결했고, 시험이 다가와도 공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다.
‘엄마가 나의 학습을 조금만이라도 인정해 주고 격려해 주었더라면, 공부에 대한 나의 관심은 계속해서 유지되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아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성적은 수직 하강을 그렸고 회복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말해준 사람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누나가 공부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긴 했지만, 당시에는 이미 공부라는 게 내 마음을 떠나서인지 누나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바닥까지 내려간 공부는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았고, 공부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 또한 사라져 버렸다.
결국 내가 공부에 관심이 멀어진 이유는 엄마와의 관계 때문이었다. 아들이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 시절에 나의 엄마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엄마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칭찬받지 못한 서운함을 공부에 풀어내고 있었다. 엄마에게 해야 할 화풀이를 공부에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공부를 부정적으로 대했고, 나도 모르게 멀리했다. 좋은 기억으로 열심히 노력해도 잘하기 힘든 공부를, 화를 내며 무의식적으로 피해 왔으니 어찌 공부를 잘할 수 있겠는가?
나는 최근에 나의 내면에 있는 ‘공부 상처’를 대면하기로 했다. 이를 대면하지 않고는 더 이상 성적상승에 대한 기대도 엄마에 대한 나의 마음도 풀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어린 시절, 내 마음에 상처를 주었던 엄마를 용서하기로 했다. 공부에 대해서도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기로 했다.
그런 차원에서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성훈아! 세상에 화를 내고 미워한다고 해서 네 인생이 바뀌지 않아. 먼저 네가 자신을 돌아보고 너의 아픔을 끌어안았으면 좋겠어. 네가 너를 사랑으로 대할 때 세상도 너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내줄 거야.”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그 말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자아는 여전히 초등학교 때의 힘없고 약한 아이에 머무르고 있었다. 엄마로 인해 화가 난 감정을 아직도 청산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엄마에게 서운한 감정을 표현하는 대신에 애먼 공부에다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엄마와 직접 부딪혀서 나의 속상함을 해결했어야 했는데, 나는 내 마음을 알지도 못하고 나의 화난 감정을 공부에다 쏟아내고 있었다. 이렇게 공부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내가 어떻게 공부를 잘할 수 있겠는가?
이제 나는 내 삶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 긍정적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또한 과거의 부정적이고 연약했던 자아를 성장시키기로 했다. 그러면서 인생의 여러 힘들었던 고비에서 좌절하지 않고 여기까지 걸어온 나를 칭찬하기로 했다.
나는 이제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이 어려움을 극복할 준비가 되었다. 내가 공부하는 이유는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삶과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나는 내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내 인생을 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에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나를 칭찬한다. 나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