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말씀이 가슴을 울리다
넌 멋진 아이야!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하는 공부는 새로웠다. 공부를 다시 시작하자 기분이 좋아졌다. 원래 내가 있어야 할 자리로 되돌아온 것 같았다. 할 일이 생겨서 좋긴 한데, 앞으로 펼쳐질 미래는 여전히 상상 불가였다. 그것이 나를 답답하게 했다.
공부를 잘하다가도 갑자기 ‘불안’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이번에 또 실패하면 어떡하지, 너무 두렵다’라는 마음에 불안해서 집중이 안 되었다. 하루에도 몇십 번은 마음이 휘청거렸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담배를 물고 밖으로 나갔다.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면 진정이 되었다. 겨우 또 자리로 돌아와서 공부하다가 내 실력으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만나게 되면, ‘이런 것도 못 풀면서 어떻게 대학을 간다는 거지?’라며 나를 비하하고 또다시 불안해진다. 이러한 과정이 무한반복되었다. 아마도 공부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해야 할 것은 너무 많아서 그랬던 것 같다. 대학 진학이 이토록 힘들지는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혼자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서 잡생각을 했다.
‘대학에 진학한다고 하더라도, 군대도 다녀와야 하고 취업도 해야 한다. 대학을 졸업할 때쯤이면, 서른을 넘길지도 모른다. 만약 부산대학에 합격할 점수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지?' 암담한 현실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2022년 8월 31일에 한국교육과정 평가원에서 주관하는 9월 모의고사를 치르기 위해 모교를 방문했다. 졸업 후에 기분 좋게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모의고사 응시 문제로 학교를 방문하다 보니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외향적이고 활달한 성격의 소지자였던 나는 삼수 생활에 지쳐서 위축되었다. 평소의 자신감은 어디로 갔는지 온데간데없고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눈치만 봤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말없이 구석 자리만 찾았다.
‘이런 걸 대인기피증이라고 하나?’
이제는 이런 성격이 편안해져서 원래부터 이렇게 태어난 사람 인양 익숙해져 버렸다. 하기야 내 상황이 절망적인데, 사람들 앞에서 억지로 기분 좋은 척 행동할 수는 없지 않은가? 모의고사를 치러 학교를 방문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모자를 쓰고 땅바닥만 보고 걸었다. 선생님들과 마주쳐도 웬만하면 못 본 체했다.
고사실에 들어가서 주위를 돌아보니 대부분은 재수생들이었다. 나는 조용히 착석해서 시험을 기다렸다. 다행히 처음 보는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시험지를 배부하셨다. 그렇게 시험이 시작되었다. 국어는 이전보다 지문이 더 길어져서 문제를 빨리 풀어야 했다. 안 그래도 국어가 약한데, 시험 경향은 점점 더 어려워져 가는 것 같다. 수학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하면 망할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시간에 편의점에 가서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먹었다.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학교를 몰래 빠져나와서 간식을 사 먹을 때는 정말 맛있었는데, 삼수를 하며 똑같은 편의점에서 똑같은 음식을 먹는데 목에 잘 넘어가지 않았다. 식사 후에 학교 뒷길에서 담배를 피우며 서성거렸다. 딱히 교실에 들어가도 할 일이 없는 데에다, 웬만해서는 학교에 있고 싶지 않았다.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는데, 고 3 때의 담임 선생님께서 지나가셨다. 아는 체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너무 가까이 지나가셔서 인사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은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나를 보며 놀라신 것 같았다. 선생님이 인사말로 “오랜만이네. 성훈아! 잘 지내냐?”라며 안부를 물어보았는데, 나는 그만 “선생님, 힘들어요”라고 말해버렸다. 마음속 깊이 숨겨 두었던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와 버렸다. 어쩌면 나의 힘든 상황을 잘 알고 계시는 선생님에게 작은 위로라도 얻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힘들다고 한 말에 선생님께서 당황하신 것 같았다. 선생님은 내가 안타까우신지 몇 마디를 해주셨지만, 크게 위로되지는 않았다. 갑자기 나타난 제자가 힘들다고 하니, 선생님도 난감했을 것이다. 선생님은 “시험 끝나고 학년 실에 잠깐 들러라”라고 말씀하셨다.
시험이 끝났다. 오랜만에 치는 모의고사인데, 이번에도 점수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 하기야 공부도 제대로 안 하고 친 시험인데 잘 나오면 그게 이상할 것이다. 어쨌든 나는 시험지를 가방에 넣고,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학년 실로 찾아갔다.
오랜만에 담임 선생님을 만나서 고3 때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때가 재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3학년 때는 그렇게도 힘들고 괴로웠던 학창 시절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정말 행복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담임 선생님 앞에서 혼잣말처럼 조용히 고백했다.
‘그때는 공부를 못해서 그렇지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었는데…’
그 말을 받아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너는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이 보기에 ‘성훈이 넌 참 멋진 아이야’”
“아니에요”
“정말이야, 성훈아! 우리 한번 솔직하게 말해보자. 넌 아버지도 안 계시고, 엄마에게 지지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자랐잖아. 공부할 여건도 안 되는 상황에서, 성훈이 넌 꿈을 포기한 적이 없잖아. 그렇게 넌 지금까지 노력해 왔어. 공부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와도 그것을 통제하면서 여전히 도전하고 있잖아. 아버지가 안 계시고, 엄마하고의 갈등 상황에서, 게다가 경제적으로도 힘든 이 상황에서 넌 사고 한 번 안 치고, 가출 한 번 안 하고 이렇게 잘 자랐잖니? 이만하면 잘 큰 거지. 안 그렇니? 성훈아?"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넌, 참 잘 살았어. 성훈아! 넌 참 멋진 아이야. 이렇게 잘 자라줘서 고맙다. 네가 살면서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겠니? 어쩌면 네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어쩌면 기적인 줄 모르겠다.”
나는 눈물을 참으려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나의 상황을 이렇게 잘 아는 사람이 없을뿐더러, 나를 이렇게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선생님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겠니?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상황인데도 너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도, 공감해 주는 사람도 만나지 못했으니… 선생님이 보기에는 네가 공부를 잘하고 싶어도 잘할 수가 없었던 환경이었던 것 같아.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서는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을 거야. 그러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너는 지금도 공부에 진심이잖아.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잖아. 그것 하나만으로도 넌 대단한 거야. 선생님은 네 꿈을 응원한다.”
나의 상황을 이렇게 잘 아는 사람이 없을뿐더러, 나를 이렇게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선생님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넌, 참 잘 살았어. 성훈아! 넌 참 멋진 아이야. 그 어려움에도 가출 한 번 안 하고 묵묵히 견뎌냈잖아. 이렇게 잘 자라줘서 고맙다. 네가 살면서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겠니? 어쩌면 네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인 줄 모르겠다.”
선생님의 말씀이 가슴에 닿았는지 흐르는 눈물을 숨길 수가 없었다. 사실 나는 더 이상 기댈 곳 없는 낭떠러지의 맨 끝자락에 서 있었다. 한 발짝만 더 밀리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 같은 희망도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아무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고,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그런 나를 선생님께서 이해해 주셨고 나의 얼어붙은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 주셨다. 그것만으로도 숨 쉴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