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해도 될까요?

조금 늦을 뿐이야

by 최일출

성훈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선생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혹시 이번 주 토요일에 시간 있으신가요? 선생님이랑 식사 한번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성훈이와 식사를 겸한 술자리를 가졌다. 나는 성훈이에게 교직 생활 20년 만에 제자와 술자리를 갖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성훈이는 “영광이네요”라고 응답했다.

술이 몇 순배 돌자, 성훈이가 속내를 말했다.


“선생님, 저는 늘 답답한 게 있었어요.”

“뭔데?”

“저는 제 삶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의논할 상대가 한 명도 없었어요.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엄마와는 사이가 좋지 않으니 혼자서 고민하고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많았어요. 오랜 시간에 걸쳐 어떤 결정을 해 놓고도 늘 ‘이 길이 맞나?’라고 머뭇거렸고, 혹시라도 잘못 선택한 게 아닌가 하며 제 결정에 대해 의심하곤 했었어요. 그래서 어떤 일을 결정해야 할 때면 오히려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중요한 순간에 뭉그적거리게 되어서 우유부단하다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결정장애'라고 할까요? 게다가 결정에 확신이 없으니 일을 할 때도 추진력이 생기지 않더라고요.”

“그랬구나. 집안에 의논할 어른들이 안 계시니 더 그랬겠구나.”

“선생님, 저는 지금도 어떻게 해야 할지 솔직히,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뭘 모르겠다는 거니?”

“제가 공군에 입대해서 공부한다고 했었잖아요. 그리고 제대해서 수능을 쳐서 부산대학에 입학할 거라고 말씀드린 거요.”

“응”

“정말 해도 될까요? 사실 공군에 입대하는 것도 경쟁이 심해서 입대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게다가 제대하면 벌써 20대 중반인데, 만약 또 떨어지면요?”

“그래. 벌써 두 번이나 실패했는데 걱정이 될 만도 하지.”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선생님, 제가 다시 시작해도 될까요?”


성훈이는 마치 진리를 구하는 듯한 구도자의 눈빛으로 간절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성훈이가 인생의 갈림길에 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성훈아! 앞이 안 보이지?”

“예”

“선생님도 30대에 교사가 되기 위해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데 앞이 안 보이더라. 마치 지하터널에 갇혀서 바깥세상이 어떤지를 알 수 없는 것처럼.”

“맞아요, 선생님”

“지하에 사는 사람들이 1층으로 올라가는 것은 너무 힘들어. 일단 1층에만 올라가면 바깥세상이 보이니까 대응할 방법도 찾을 수 있을 텐데, 지하에서는 그 방법을 도무지 알 수가 없거든. 너무 어둡고 컴컴해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다리를 찾는 게 불가능해 보이거든.”

“그런 것 같아요”

“선생님이 책을 쓰면서 배운 게 많아. 전에도 말했지만, 처음 책을 쓸 때는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시간을 많이 허비했어. 책을 쓴다고 카페에 앉아 컴퓨터 스크린만 바라보다가 집에 온 적이 한두 번이 아냐. 책을 쓰기 위해 책 쓰는 법과 관련된 책을 읽고, 영상도 찾아보고, 검색도 많이 했어. 아무리 책 쓰는 법에 대해 알아봐도 책은 써지지 않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답은 의외로 쉽더라고. 그냥 무작정 쓰는 게 답이더라고. 매번 책을 쓴다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렸어. 그러다가 이래선 글을 한 줄도 못쓰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분량이라도 채워야겠다는 생각에 아무 글이나 썼어. 글의 흐름이나 주제 같은 건 상관하지 않았어. 그렇게 글을 막 쓰다 보니, 전체적인 주제하고 안 맞는 부분이 생기고, 내용도 부실하고, 구성도 엉성하더라. 한 마디로 엉망진창인 거지. 특히 꼭지들 사이에 내용상의 단절이 생긴 부분이 많더라고. 그런데 초판을 쓴 후에는 수정이 가능하더라고. 전체를 먼저 쓰고 부분을 매끄럽게 연결하기 위해 노력했어.

'어색한 부분을 어떻게 연결하면 좋을까?'에 대해 늘 질문하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쓴 부분을 다시 수정하고 고쳐 썼어. 모자란 부분은 채우고 넘치는 부분은 버렸어. 소제목을 바꾸면 앞에 쓴 내용은 아깝지만 버렸어. 그러다 보니 6년이라는 시간이 걸리더라고. 자그마치 6년이나.

아마도 지금 책을 쓰라고 하면, 이제는 훨씬 더 빨리 쓸 수 있을 것 같아. 왜냐하면 한 번의 소중한 성공 경험을 얻었으니까. 다시 말해서 이제는 책 쓰는 법을 아니까.

이건 마치 길을 내는 것과 비슷해. 없는 길을 만들려면 얼마나 힘들겠니? 길을 내다가도 앞에 산이 있으면 터널을 뚫어야 하고, 강이 있으면 교량을 설치해야 하잖아. 힘들다고 중간에 포기하면 결국엔 길은 뚫을 수 없겠지. 결국 모든 일은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는 거야.

성훈이 너도 똑같다고 생각해. 성공하려면 그만큼의 시간과 땀방울이 필요해. 네가 다시 한번 도전하고 싶다면 또 하는 거야. 마음에 미련이 남지 않도록. 하지만 성공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노력해야 해. 포기하지 않겠다는 생각과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결심이 필요해. 그리고 다른 복잡한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선생님이 미련하게 그냥 무작정 글을 쓴 것처럼 너도 이것저것 걱정할 시간에 무작정 공부했으면 해. 공부하다가 의문이 생기거나 방법이 안 맞으면 그때 가서 또 바꾸면 돼.”

"선생님, 이번에도 떨어지면 벌써 4수가 돼요. 곧 군대도 가야 하는데, 저에게는 공부할 시간이 별로 없어요. 그래도 할 수 있을까요?"


"성훈아! 불안하지? 선생님도 책을 처음 쓸 때, '내가 과연 책 쓸 시간을 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 그런데 책을 써 보니까 시간이 없다는 게 거짓말이라는 걸 겠더라.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어떻게든 하게 되더라고. 우리 뇌는 없는 시간도 스스로 만들어 낼 능력이 있어. 선생님은 아침잠이 정말 많은데, 책을 쓰고 싶으니까 새벽에 잠이 깨더라. 알람을 맞추거나 일어나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아닌데.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어. 그뿐 인 줄 아니? 주말이면 스터디카페에 가서 글을 썼어. 놀러 가고 싶다는 생각과 쉬고 싶다는 생각과 싸우면서. 6년 동안이나.

누가 50이 넘는 선생님에게 스터디카페에 가서 글을 쓰라고 말하겠니? 또 누가 강제로 시킨다고 해서 선생님이 그 말을 듣겠니? 이 모든 일은 선생님이 책을 쓰고 싶으니까 스스로 알아서 한 일이야. 그래서 알았지.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라는 것을. 간절하면 시간도 만들어 낼 수 있어. 성훈아! 너도 네 꿈에 간절하다면 분명히 성공할 수 있어.

너는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늦을 뿐이야. 너는 나이가 많은 게 아니야. 열정이 없었던 거야. 늦어도 바른 길을 간다면 무엇이 그렇게 문제가 되겠니?”

“선생님, 감사합니다.”


말은 감사하다고 하지만, 성훈이는 아직도 자신의 결정에 확신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난 한마디를 더 보탰다.


“성훈아! 너, 다시 공부해도 될지 물었지?”

“네”

“아마도 네가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성공에 확신이 없다는 거겠지. 불안한 마음에 선생님의 지지와 응원이 필요한 거겠지.”

“맞는 것 같아요.”

“성훈아, 선생님은 네가 정말 성공하길 바란다. 하지만, 지금처럼 똑같이 공부해서는 성공하지 못할 거야. 넌 이미 3번을 실패했잖아.”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네가 공군에 지원하고 제대한 이후에도 수능을 치고 싶다고 말하니까 선생님이 이런 생각이 들어. 성훈아! 내 말 잘 들어 봐. 지금부터 딱 10년만 고생하자. 요즘 군대는 월급이 꽤 된다고 하더라. 사고 싶은 것도 많을 거고, 하고 싶은 것도 많겠지만, 네 꿈을 위해 그 돈을 적금에 붇는 거야. 네가 공군에 지원한다고 하니, 20개월 동안 매달 100만 원 정도를 적금에 붓는 거야. 그러면 원금만 해도 2,000만 원이야. 이자가 붙고 전역하고 아르바이트도 하면 2,500만 원 가까운 돈을 모을 수 있을 거야. 그 돈을 가지고 시골에 있는 대학으로 가는 거야. 예를 들면, 남해대학이나 거창도립대학 같은 곳으로 가는 거지. 시골이라 방세가 많이 나가지 않을 테니, 그곳에 거처를 정하는 거야. 네 소원대로 독립된 공간을 갖는 거지. 대학교에는 도서관이 있으니, 대학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밥은 학생생활관에서 해결하는 거야. 학교 식당이니 밥값도 저렴할 거야. 그곳에서 1~2년만 죽어라 공부하는 거야. 목표는 부산대가 아니라 서울 시립대로 정하고.”


성훈이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런데 왜 10년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대학 진학까지 생각하면 지금부터 5년 정도면 충분하지. 하지만 대학에 진학하더라도 취업을 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니? 아까도 말했지만, 지하터널에 있으면 바깥세상이 안 보여.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지하터널을 겨우 빠져나와서 1층으로 올라온 밖에 안돼. 물론 지하에 있을 때보다는 훨씬 좋아 보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끝은 아니거든. 대학에 가서 적어도 4~5년은 공부를 더 해야 한다고 봐. 너는 20살의 새내기 대학생이 아니잖아? 남들보다 늦은 만큼 해야 할 일도 많아. 학점관리는 기본이고, 토익 라이선스와 자격증도 따야 하니까. 직장에서도 나이 많은 사람을 원하지 않을 거야. 그렇기에 원하는 직장도 구하고 안정된 생활을 살려면 그 정도는 투자해야 하지 않겠니?”


성훈이가 생각에 잠겼다.


“선생님, 해 볼 만한 것 같아요. 저에게 희망이라는 게 생겼어요.”

“그래, 생각을 좀 더 깊이 해 봐. 그런 다음 마음이 가면 실행에 옮기렴. 중요한 것은 행동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