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앨범을 내고 인터뷰를 하는 도중 기자분이 나의 연애에 대해서 질문을 해왔다. 남자친구는 있냐, 연애 할 때 어떤 스타일이냐 등 음악과는 큰 상관이 없는 질문이었지만 나름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저는 정말 특별할거 없는 연애를 해서 딱히 드릴 말씀이.. 그럼, 몇명이나 만났냐고 되물어왔다. 나랑 동갑인 기자분이었는데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나는 우리 나이에 평범하게 만나면 3~4명 정도 아니냐며 동의를 구했다. 그렇죠 뭐. 뜨뜻 미지근한 대답이 돌아왔다. 대략 20살쯤에 연애를 시작했고 연애당 1~3년의 시기를 보낸다면 십 여년동안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정해져있지 않은가.
자유연애에 대한 나의 편견일지 몰라도 일단 나는 그랬다. 한 사람당 평균 2년정도 만나는 평범한 연애를 했다. 끝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가스라이팅으로 나를 컨트롤 한 사람도 있었고 어느때는 내가 상대방에게 폭력적인 경우도 있었다. 구속이 사랑인줄 알았고 컨트롤이 애정 표현이라고 생각했던 어린 나날들. 안타깝게도 그때는 그게 평범한 연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돌이킨다고 하면 아마 같은 선택을 반복할 연애들이다. 모두 내가 결정한 성장 방식이었으니까. 나는 굳건히 믿는다. 연애는 사람을 자라게 한다고. 이해불가한 상대방의 면모를 발견하게 되고, 싸움을 반복하고 다시 화해하는 과정에서 칼날같은 면을 수 없이 가진 인간이라는 돌은 마모되고 점차 부드러워지며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주고 받는 걸 줄일수 있게 되는것이다. 물론 연애가 아니어도 사람은 자랄 수 있다. 그렇지만 오로지 연애중에서만 찾을 수 있는 성장점이란게 있어서, 연애를 ‘잘’하며 살아온 사람은 여떤면에서는 유복한 집안의 영애가 가진 여유와 비슷한 뭔가가 느껴지기도 했다.
나의 경우는 어떠했나. 정말 최선을 다하는 연인이었다. 어렸을때는 어린대로, 그 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나이 먹고는 또 그 나름의 할 수 있는 바를 다 하는 사람이다. 다만 건강하지 못한 나의 정신상태가 긴밀히 지낸 사람에게는 어렴풋 느껴졌는지 ‘너는 언젠가 사라질것만 같아’ 라는 뉘앙스의 말을 만났던 모두에게서 들었다. 연애에서 제일 아슬아슬한 부분, 영속성의 부재는 나의 연인들을 애태웠고 그럴수록 나는 그들에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 나도 내가 언제 그들 곁에서 사라질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 결과 만났던 모두에게 들었던 두번째말은 ‘너 같은 사람은 처음 만나봐’ 였다. 언젠가 내 곁을 떠날지도 모르는 사람이 해주는 헌신적인 사랑, 그리고 구속하려 들지 않는 사람. 이 외에도 그들에게 있어 어떤면들은 놀랍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했을것이다. 그것은 아주 단순히도 내가 개인주의적 사고를 지니고 있었기 떄문 아닐까. 그러니 구속하는것도 싫고 구속당하는것도 싫다. 연락도 자주 하면 불편하다. 게다가 공황장애 때문에 사람 많은 곳은 피해다니니 자연스레 한적한 곳만 가게 되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그러다보면 이 안정적인 관계에도 변화가 찾아오게 된다. 여유로운 마음 대신 긴장감을 찾게 된다거나 헌신적인것이 당연해진다거나. 물론 연애야 두 사람의 이야기를 전부 들어봐야 하는게 맞는거지만 나는 단언컨데 먼저 변하지 않았다. 여러가지 사정들로 변한 사람들을 기다려주었고 내가 할 수 있는 바에선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보면 사람들은 여기에서 또 당연함을 느낀다. 기다리는 사람 따로 있고 기다리게 하는 사람 따로 있는것처럼. 참을 수 있을만큼 참았을 때,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다고 느껴질때 헤어짐을 고한다. 상대방은 늘 왜 우리의 일상은 변한게 없는데 갑자기 이러는게 어딨냐고 하더라. 찾아온 변화가 우리의 일상을 깨뜨리지 않게 악착같이 잡고 있는 사람은 나였다. 눈치라도 채주었다면 다행이지만 그것도 없이 고마움도 모른채 그대로 관계를 지속할 예정이었다면 미안하지만 여기까지다. 너무 정 없는 사람같을지 모르겠지만 여튼 내가 했었던 모든 연애에서 헤어짐을 고한건 내쪽이었다. 사실 고민이 하나 있는데 단 한번도 이별에서 데미지를 입은적이 없다. 할만큼 했다고 생각해서 그런걸까, 늘 후련했다. 이게 가끔은 비인간적으로 느껴져서 도대체 연인과 헤어지고 느끼는 고통,슬픔,후회 같은것들은 어떤거냐며 친구들에게 묻기도 했다. 너무 자만하고 있는건 아닌지. 언젠가 이런 내게 무시 무시한 고통을 줄 사람이 나타나는 건 아닌지. 기대 반 걱정 반이긴 한데 여튼 나는 그렇다. 늘 롤러코스터처럼 치명적인 연애를 하고 싶어하지만 언제나 안정적이고 노부부같은 연애를 하는 사람, 이게 나의 재미없는 연애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