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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별 Feb 27. 2021

세상은 악의로 가득 차 있다

세상은 악의로 가득 차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매일 매일 올라오는 뉴스에 이토록 지치지도, 아프지도 않을것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누군가를 괴롭히고 누군가가 괴로워 하는 이야기가 범람한다. 악의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나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고민이다. 그래도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고 말하며 얼마 안되는 선의를 찾아 나설것인가, 아니면 넘쳐나는 악의에 굴복하고 쓰러져, 그래 어쩔 수 없어 원래 사는게 다 그런거잖아, 라며 인정할 것인가.

뉴스라며 올라오는 이런 저런 사건들을 보다 보면 이 나라에서 여자는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 대상화 된 무력한 존재라는걸 학습하게 된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학습된 결과로 나는 어렸을적부터 언제가 될지 모르는 성범죄의 피해자가 될 것이라는 강박을 갖고 있다. 성폭행, 그리고 살해, 어쩌면 유기까지. 언젠가 그 날이 오겠지. 절대 나는 피할 수 없어. 우산을 갖고 귀가 하는 날이면 오늘 아니군, 우산이 있으니까 이걸로 무기를 삼아 싸워볼 수는 있겠어 라고 생각한다. 집에 있을 때도 어떤날은 계속 긴장될 때가 있다. 현관 문을 열고 모르는 남자가 불쑥 들어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상상은 어쩔땐 현실보다 리얼하다. 언젠가부터 머리 맡에 망치를 두고 지내게 되었다. 가장 안정적이어야 할 집에서 성범죄의 타겟이 된 나를 상상하는 버릇은 아마도 살면서 겪은 각종 성추행과 성희롱에서 비롯된 것일거다.

내가 기억하는 처음은 중학교 때의 일이다. 1학년때 음악선생님이 남자였는데 당연히 음악가가 꿈이었던 나는 음악 과목을 아주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선생님의 이쁨을 얻게 되고 그 이쁨은 ‘너 커서 아주 여러남자 녹이겠다. 아이구 얘 눈웃음 치는거 보게’ 라는 말로 돌아왔다. 시간이 지나 엄마에게 말을 전했더니 그 선생 아직 있냐고, 있으면 학교로 쳐들어가겠다며 화내는걸 보고 내가 성희롱을 당했다는걸 알았다. 방학때 시골로 내려가 사람이 붐비는 마을의 축제 같은곳에서는 누군가 뒤에서 내 가슴을 움켜쥔채 안놔주다가 용기내서 뒤를 돌아보니 그곳엔 나를 만진 사람은 없는듯했다. 사실 무서워서 뒤에 있는 사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물리적인 성추행은 이게 처음이었는데 뭐랄까, 곤란하다고 해야하나 무서웠다고 해야하나. 몸가짐을 잘 하지 못한 죄책감에 혼날까봐 어른들한테 말도 제대로 못한 기억이 있다. 아직도 그 자리에 있던 나의 가족들은 그 날 내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전혀 모른다. 이후에도 숱한 성추행과 성희롱이 있었다. 술취한 지인으로부터의 성희롱, 믿었던 사람이 했던 성추행... 어느날은 귀가 하는 길에 맞은편에서 오던 남자로부터 당한 추행에 분해서 엄마에게 말했더니 그러게 왜 그렇게 늦게 다니냐는 질타를 받았던 기억. 딸 가진 엄마로서 속상한 마음에 튀어나온 말이었겠지만 당연하게도 나는 상처를 받았고 여전히 선명한 마을 축제에서의 성추행 사건을 당시에 어른들에게 말하지 않은건 잘한일이었다는 결론을 한번 더 내렸다.

고작 일인분의 삶을 들쳐봐도 이 정도, 평범하다면 평범하기 이를데 없는 수치의 사건들이다. 아직 경찰서를 드나들지도, 민사나 형사 소송을 하지도 않았으니까. 결과가 너무 극단적이긴 하지만 이런 악의로 가득 찬 세상에서 언젠가 성폭행을 당할것이라는 피해망상은 어쩌면 결국 나 스스로를 돕기 위한 강박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두려움을 자주 느낀다. 너무도 빈번해서 전부 다 뉴스에 오르지도 않는 강간 사건들. 택도 없는 재판 결과와 양형들. 만약 내가 피해자라면, 혹은 내가 피해자의 가족이나 친구라면. 전혀 개연성 없는 상상들은 아닐것이다. 시대를 살아내야 하는 무거움은 도처에 널려있다. 어떤 무거움은 침대 맡에 망치를 갖다놓기도 한다. 그리고 그 풍경은 이제 내겐 아주 자연스럽다. 악의로 가득 찬 세상은 원래 그런건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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