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0분이 나를 바꾸기 시작했다

by 표나는 독서가

학창 시절, 나를 설레게 하던 오빠가 있었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느라 TV 볼 시간도 없던 나를 위해
엄마는 매번 드라마를 녹화하느라 바쁘셨다.
<사랑을 그대 품안에>.

머리를 곱게 빗어 넘긴, 다부진 몸으로
색소폰을 불며 여심을 흔들던 배우 차인표.
그 시절의 나는
그가 왜 그렇게 멋있어 보였는지
굳이 이유를 찾지 않아도 되던 나이였다.

그로부터 20년이 훌쩍 지났다.
요즘의 나는
설렘보다는 중심을,
동경보다는 기준을 더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고
전혀 다른 이유로 다시 그를 보게 되었다.

그가 발표한 소설이 여러 상을 받고
외국 대학에서 한국학 필수 교재로 채택되었다는 소식.
배우보다 작가로서의 삶이 더 자주 이야기되는 요즘,
하루를 조금이라도 더 성실하게 살아보려 애쓰던 내게
유튜브 알고리즘은 그의 강연 영상을 슬쩍 내밀었다.

영상 속 차인표는
우리 삶의 외부 환경이 아무리 불확실하고 빠르게 변해도
결국 우리를 지탱하는 것은
아주 사소한 습관,
일상의 기본값이라고 말했다.

그 기본값은
한두 번의 큰 성과가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작은 행동으로 만들어진다.
변화를 외부에서 찾기보다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고,
안정적인 삶이란
거창한 계획이나 성취가 아니라
꾸준한 루틴과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다는 이야기였다.

진짜 변화는
드라마틱한 계기에서 오지 않는다.
날마다 반복되는 사소한 결정들이
조용히 쌓여
어느 순간 삶의 방향을 바꾼다.
그는 그 힘을 ‘기본값의 힘’이라 불렀다.

강연의 끝자락에서
그는 요즘 자신이 지키고 있는 한 가지 습관을 꺼내놓았다.
하루 20분, 라틴어 공부.

소설을 쓰며 단어의 어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서양 언어의 뿌리인 라틴어를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어졌다고 했다.
라틴어 성경을 읽어보겠다는 목표를 세운 뒤
매일 20분씩 공부를 이어온 결과,
완벽하지는 않지만
문장을 더듬거리며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잃지 않는 사람.
하루 20분의 힘을 믿는 사람.
꾸준함이 얼마나 위대한지
이미 몸으로 알고 있는 나에게
그의 이야기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 역시 결심했다.
하루 20분, 라틴어 공부를 해보자고.

신화를 공부하는 나에게
라틴어는 언젠가는 반드시 마주해야 할 언어다.
게다가 지난여름,
문현정 작가님의 책방에서
선물처럼 고른 책이
한동일 님의 <라틴어 수업>이었다는 사실까지 떠올랐다.
어쩌면 무의식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를 이 자리로 데려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라틴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루를 살아내는 나만의 기본값이다.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오늘도 내일도 변명 없이 반복할 수 있는 선택 하나.

20분의 시간이 쌓여
언어가 되고,
습관이 되고,
결국은 나를 설명하는 삶이 될 것이다.

나는 이제
‘내가 할 수 있을까?’ 대신
이 질문을 남겨두려 한다.

오늘의 기본값을,
나는 지켰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