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마르트의 물랑루즈 동명의 영화로도 우리에게 익숙한 물랑 루주(Moulin Rouge)는 1889년에 몽마르트에서 댄스홀로 처음 개장했다. 프렌치 캉캉으로 유명해져 전성기를 누렸으며, ‘물랑 루주’라는 이름은 개관 이래 건물 입구에 거대한 빨간 풍차를 장식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19세기 몽마르트 언덕에는 10여 개의 풍차가 랜드마크처럼 세워져 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빨간 풍차(물랑 루주)의 내력을 짐작해 볼 만하다.
전성기 시절의 물랑 루주는 유명한 댄스홀인 동시에 많은 화가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장소였던 곳이기도 하다.
특히 로트레크(Lautrec: 1864~1901)는 몽마르트에 살면서 물랑 루주에서 활동하는 댄서와 가수, 창부 등을 모델로 수많은 작품을 독자적 화풍으로 그려 냈다.
그의 작품에는 물랑 루주 전성기의 주역들이 여럿 등장하는데, 그중에서도 라 굴(La Goule:1866~1929)과 장 아브릴(Jane Avril: 1868~1943) 은 꼭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다.
물랑 루주의 여왕
<춤추는 라 굴>,로트레크, 오르세 뮤지엄
캉캉 춤의 원조 '라 굴'
라 굴은 우리가 생각하는 치마를 들어 올리고 다리를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들어 올리는 바로 그 캉캉 춤의 원조인 인물이다.
그녀의 본명은 루이스 웨버(Louise Weber), 하지만 본명은 중요하지 않다. 그녀는 ‘몽마르트의 여왕’으로 불릴 만큼 인기가 대단했는데, 라 굴(La goulue)이라는 별명은 그녀가 춤추며 선보인 박력 있고 열정적인 매너 때문에 붙은 애칭이다.
캉캉 춤을 추었던 그녀는 치마를 들어 올려 하트 모양이 수 놓인 속옷을 내보이는가 하면, 한 발로는 남자 손님들의 모자를 걷어차 혼을 쏙 빼놓곤 했다고 한다. 그리고 춤을 추면서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며 탁자 위에 놓인 술잔을 순식간에 마셔 버리곤 했는데 남자들은 이런 그녀의 행동과 춤에 열광했다고 한다.
세탁부인 어머니 곁에서 손님들이 맡긴 고급 드레스를 입어보고 그들의 삶을 열망했던 어린 소녀는 타고난 춤 재주로 파리 주변의 카바레에서 춤을 추다가 우연히 화가 르누아르를 만나게 되고 몽마르트와 인연을 맺으면서 물랑 루주까지 오게 되었다.
비록 어린 시절은 불우했으나, 타고난 춤 솜씨로 얻은 그녀의 명성은 ‘라 굴 = 캉캉 = 물랑 루주’라는 등식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다.
생전의 라 굴 로트레크가 그린 라 굴 공연 포스터
그녀는 명성만큼 돈이 모이자, 1895년 물랑 루주와 결별을 하게 된다. 그녀는 전국을 돌며 물랑 루주에서와 같이 춤을 추는 자기 사업을 시도했으나 큰 실패를 하게 된다. 물랑 루주에 줄을 서서 그녀의 공연 티켓을 사주던 사람들이 타 지역에는 많지 않았던 것이다. 사업에 큰 실패를 한 후 술에 빠져 살던 그녀는 1928년 다시 몽마르트로 돌아와 물랑 루주 근처 길가에서 담배와 땅콩 등을 팔며 연명하다 이듬해에 사망했다고 한다. 당시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는 그녀가 왕년의 캉캉 여왕임을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영화 같은 인생을 그녀의 춤처럼 불 같이 살다 간 캉캉의 여왕이었다. 물랑 루주의 단골 화가였던 로트레크가 그녀의 모습을 많이 남겨 파리에는 아직도 그녀의 한창 시절 모습이 엽서로, 포스터로, 박물관 곳곳 명작의 주인공으로 눈에 띈다. 여왕의 영혼이 몽마르트를 못 떠나는 듯 말이다.
그녀의 묘지는 처음에 팡탕(Pantin)이라는 곳에 있었는데, 후에 몽마르트르 묘지(Cimetière de Montmarte)로 옮겼다고 한다.
찬란했던 몽마르트 여왕에 대한 마지막 배려 이리라.
2대 캉캉 여왕 장 아브릴
<장 아브릴>, 로트레크, 오르세 뮤지엄
장 아브릴은 라 굴과는 대조적인 캉캉 춤으로 캉캉의 맥을 이은 물랑 루주의 또 다른 스타 댄서다. 고급 창녀(Courtesan)였던 어머니와 외국인 귀족 사이에 태어난 그녀는 불안정한 집안에서 학대를 받다가 가출하여 병원 신세까지 진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실연을 겪게 되자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사창가로 흘러간 그녀는 닦치는 대로 일하기 시작했고 물랑 루주 까지 흘러 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그야말로 영화 같은 그녀의 삶은 영화로 만들어진 두 번의 물랑 루주에서 단연 주연으로 조명받게 되었다. 1952년에 만들어진 첫 물랑 루주에서는 자 자 가보르( Zsa Zsa Gabor)가 2001년에 만든 두 번째 물랑 루주에서는 니콜 키드먼이 그녀의 역을 맡았다. 담당 배우들의 면모를 보아도 물랑 루주에서의 아브릴의 무게가 느껴진다. 그녀는 1889년부터 물랑 루주에서 일하기 시작해 1895년에 라 굴의 자리를 이어받았다는데 그녀의 애칭은 '라 멜리니트(La melinite)'였다고 한다. 장 아브릴의 캉캉은 도발적이던 라 굴과는 달리 우아하면서도 우울한 매력을 풍기는 독특한 매너를 선보였다는데, 이 전략이 제대로 통해서 물랑 루주의 새 여왕이 되었다고 한다.
장 아브릴 로트레크가 그린 장 아브릴 공연 포스터
하지만 그녀 역시 라 굴처럼 슬픈 말년을 보냈다. 장 아브릴은 42세에 결혼했으나, 무능한 남편과의 불행한 결혼생활로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1943년, 73세를 일기로 노인 요양소에서 쓸쓸히 사망했다고 한다. 묘지는 페르 라세즈(Père Lachaise)에 있다.
로트레크의 절친, 샹송의 원조,
아리스티드 브뤼앙(Aristide Bruant:1851-1925)
로트레크가 그린 아리스티드 브뤼앙 공연 포스터
몽마르트 화가 로트레크가 그린 포스터는 오늘날 파리 시내에서 엽서나 아트 상품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라 굴이나 장 아브릴을 주인공으로 한 포스터가 많이 보이는데 이에 뒤지지 않게 눈에 많이 띄는 빨간 스카프를 두른 남자의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다. 파리를 여행하다 보면 참 많이 눈에 띄는 빨간 스카프를 한 남자의 그림이다. 그는 바로 샹송의 원조라 불리는 로트레크의 절친 아리스티드 브뤼앙이다.
브뤼앙은 몽마르트에서 직접 나이트클럽을 운영한 가수 겸 배우로, 검은 망토에 빨간 스카프를 길게 두른 모습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는 로트레크가 몽마르트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가까이 지낸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로트레크는 어린 시절 사고를 당한 후 성장이 멈춰버린 큰 핸디캡을 갖고 있었다. 그가 유독 몽마르트의 창녀나 댄서들에게 집중했던 것은 이런 자신의 핸디캡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로트레크에게 창녀들을 소개하는가 하면, 로트레크의 포스터를 업주들에게 권유하고 선전한 사람도 바로 브뤼앙이었다고 한다.
<르 샤 누아>,테오필 스타인렌 샹송 가수였던 브뤼앙은 처음에 몽마르트의 유명한 카페 ‘르 샤 누아’에서 공연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미를리통(Le Mirliton)’이라는 자신의 클럽을 몽마르트에 오픈했다.
브뤼앙의 노래는 프랑스 샹송의 원조로 간주되며, 그가 처음 노래하던 르 샤 누아는 몽마르트의 보헤미안 분위기를 대표하는 나이트클럽이었는데 1881년에 로돌프 살리(Rodolphe Salis)라는 사람이 처음 문을 열고, 그가 죽은 뒤 1897년에 문을 닫았지만 현대식 나이트클럽의 원조로 몽마르트의 랜드마크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은 르 샤 누아가 있던 84번가(84 Boulevard de Rochechouart)에는 여행자들에게 몽마르트 기념품을 파는 기념품 가게가 들어서 성업 중이었다.
몽마르트 미술관
몽마르뜨 미술관 몽마르트 미술관(Musée de Montmartre)에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이곳에서 성공의 그 날을 꿈꾸며 고난의 삶을 견딘 화가들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몽마르트 방문 시 절대 놓쳐선 안될 보석 같은 미술관이다.
지금은 미술관으로 이용되지만, 이 건물 2층은 수잔 발라동의 아들인 화가 모리스 위트릴로의 작업실이었다. 또 르누아르를 비롯한 유명 화가들이 이 미술관 정원을 배경으로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잘 알려진 작품으로 르누아르의 <그네>가 있다. 그림 속의 여인이 타고 있던 그네는 지금도 그 자리에 그대로 걸려 있었다.
나도 그림 속 그네를 그녀처럼 타 보았다. 그넷줄을 잡자, 마치 그림 속의 여인과 손이 닿은 듯 한 전율이 느껴졌다. 그 여인이나 나나 그네를 굴리는 것은 같은데, 나를 그려 줄 솜씨 좋은 화가는 어디에 있을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몽마르트 미술관. 지금도 건물의 어느 창문에선가 르누아르, 드가, 로트레크 같은 미래의 대 예술가들이 불쑥 고개를 내밀 것만 같다.
<그네(La Balançoire, 1876)>, 르누아르, 오르세 <몽마르트 미술관 정원에 있는 그림 속 그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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