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76. 보고 싶었던 그를 뉴욕에서 다시 만났다

시모네 마르티니(Simone Martini:1284-1344)

by Ciel Bleu

무엇을 기대하셨는지?

무엇을 기대했건 한 번쯤 만나 볼만한 사람일 것 같다.

700여 년 전 토스카나 산지미냐노(San Gimignano) 출신인 그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 속에 또렷이 남은 작품.

그 후 간간이 기사나 책에서 잠깐씩 짧은 조우를 했던 그림.


시에나의 시그니처 명소 캄포 광장(Piazza del Campo)에 열광하면서 방문한 시에나 시청사(Palazzo Pubblico) 안에서 보았던 프레스코 벽화.

800px-Simone_Martini_-_Guidoriccio_da_Fogliano_-_Google_Art_Project.jpg Guidoriccio da Fogliano at the Siege of Montemassi, 1328, Simone Martini, Palazzo Pubblico, Siena(위키

벽 상단에 그려진 외로이 말을 타고 가는 기사(?)의 모습은 이것이 르네상스 이전 14세기 초에 그려진 작품이라고는 믿기 힘든 그림이었다.

당시 그림의 내용은 성가족이나 성인들, 그들과 연관된 종교적 이야기, 기적 이야기, 신화 등이 주제로 그려지던 시절이다.

아우라를 두른 성인이 아니면 초상화도 못 그리던 시절이었다.

아우라도 없이 말을 타고 있는 이 남성은 시에나에 승전보를 알린 장군으로 자신이 함락시킨 성과 공격 시 사용한 야전 천막과 무기 등을 거느린 기사도 없이 홀로 둘러보는 중이다.


시청사 1층 'Sala del Mappamondo(직역하면 세계 지도의 방)'라 불리는 방에 그려진 '몬테마시 전투의 귀도리치오 장군(Guidoriccio da Fogliano at the Siege of Montemassi)' 벽화다.


주인공은 말을 탄 기사 한 사람이지만 주변의 성곽과 야전 천막, 멀리 전투에 사용했을 법한 중세 무기 등 그림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그림을 그린 화가는 시에나 화파를 대표하는 '시모네 마르티니(Simone Martini:1284-1344)'로 그의 1328년 작품이다.

시모네는 이 벽화로 최초로 성인(聖人, saint)이 아닌 사람의 초상화(secular portraits)와 풍경이 들어간 그림을 그린 시대를 앞선 화가로 미술사에 남았다.


그는 시에나 화파의 대부 두초(Duccio di Buoninsegna:1255,1260–1318,1319)의 제자로 말년에는 프랑스의 아비뇽 교황청에 초빙되어 프랑스와 북유럽 일대의 화단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아비뇽에서 생을 마감한 재능이 탁월한 화가였다.

sorj4.jpg 뉴욕 뮤지엄마일의 시에나전 광고 포스터

그를 뉴욕의 한복판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시에나 전에서 만났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시에나 전시회 소식을 접하고 당연히 그가 오리라 생각했고 역시 전시회의 큰 비중으로 더군다나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오르시니 폴리티크(Orsini Polyptych)가 전시된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었다.

sorj14.jpg Orsini polyptych(전면),1330-1344, Simone Martini
sorj20.jpg Orsini Polyptych(후면), 1330-1344, Simone Martini

14세기 초(1330-1344)에 만들어진 오르시니 폴립티크(Orsini Polyptych)는 중세 로마의 가장 영향력 있는 귀족 가문이었던 오르시니 가문의 나폴레오네 추기경(1263-1342)의 주문으로 만든 폴립티크다.

고정된 폴립티크가 아니라 휴대할 수 있는 크기에다 접어지게 경첩이 달렸던 흔적까지 남아 있다.


이 가문은 실제 예수님의 십자가의 한 부분을 소유하고 있었고 5명의 교황과 34명의 추기경을 비롯 수 없이 많은 종교인과 정치인을 배출한 그야말로 뼈대 있는 로마의 귀족 가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이 갖는 의미는 색채가 풍부하고 스토리가 있는 주제를 그리는 시에나 화풍을 아비뇽으로 가지고 온 시모네가 정교하고 사실적인 프랑스의 고딕화풍과 접목하여 국제고딕(International Gothic) 화풍을 만들었다는 데 있다.


이 작품이 프랑스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증거는 멀지 않은 곳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바로 파리 근교의 아름다운 성 샹티성(Chateau de Chantilly)에 보관되어 있는 ‘Tres Riches Heures du Duc de Berry’다. 직역하자면 ‘풍요로운 시간들’ 정도가 될까?

1412년에서 1416년 사이에 림부르그 형제(Limbourg brothers)가 베리 공(Duke of Berry)을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완성을 못한 채(이들은 모두 흑사병으로 죽었다)로 전해오다가 후에 쟝 콜롬브(Jean Colombe:1430-1493)에 의해 1470년대에 완성된 것이다.

이것은 현존하는 프랑스 고딕 원고( manuscript illumination) 중 가장 유명하고 보존이 잘된 중요 자료다.


이 원고에는 시에나 화풍으로 그려진 그림들이 많은데 그중 십자가를 지고 있는 그리스도 그림의 표현법은 오르시니 폴립티크 내용과 아주 유사한 것으로 평가된다. 림부르그 형제가 실제로 시에나에 갔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최소한 시모네의 이 작품을 본 것은 확실하다는 설명이다.

sorj17.jpg
sorj16.jpg
림부르그형제의 'Tres Riches Heures du Duc de Berry'(좌)/Orsini Polyptych 중 '십자가를 지고 계신 그리스도'

불행하게도 오르시니 폴립티크의 4개의 패널은 부분, 부분 쪼개져 프랑스의 루브르와 벨기에 앤트워프(Antwerp)의 왕립 미술관, 독일 베를린의 게말대갤러리(Gemäldegalerie)에 나뉘어 소장되어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어렵게 한자리에 모은 것이다.


제단화를 열면 앞쪽에는 그리스도의 4개의 수난 장면이 그려져 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루브르 소장의 '십자가를 지고 계신 그리스도', 앤트워프 소장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 내려오신 그리스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베를린 게말대갤러리 소장의 '그리스도의 매장'이 그려져 있다.

두 중앙 패널의 뒷면에는 '수태 고지'가 그려져 있고 '십자가를 지고 계신 그리스도' 뒷면에는 오르시니 가문의 문장이 그려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세 번째 패널 하단에 십자가 아래에 추기경 복장을 하고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오르시니 추기경이다.


sorj15.jpg Orsini Polyptych의 세 번째 패널(무릎 꿇은 오르시니 추기경이 그려져 있다)


소개할 마지막 작품은 그림을 보면서 '시모네. 역시!'라고 생각게 하는 그의 걸작 '성전에서 발견된 그리스도(Christ Discovered in the Temple)'다.

언뜻 보면 전형적인 중세의 성서화처럼 보일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sorj18.jpg Christ discoved in the temple,1342, Simone Martini, Walker Art Gallery, Liverpool

누가복음 2장 41절에서 51절까지의 성경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부모님을 따라오지 않아 걱정에 쌓인 아버지 성 요셉은 타이르는 듯한 제스처를 하고 어머니 성모 마리아는 주의를 주는 듯하고 그걸 듣는 어린 그리스도는 십 대의 약간의 반항기 어린 표정을 하고 있다.

성가족이 아니라 마치 일반 가정의 십 대 청소년과 부모사이처럼 그려낸 그의 시대를 초월한 화법에 빙긋이 웃음이 스치는 작품이다.

이런 이유로 이 작품은 서양미술사의 새 시대를 여는 기점이 되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sorj22.jpg 시모네 전시실의 중앙에 전시된 '성전에서 발견된 그리스도'

시모네는 아시시의 성프란체스코 성당 하부 대성당의 산 마르티노(St. Martino) 예배당의 벽화를 그렸는데 그중 '부활한 아이의 기적' 에피소드에 자신의 모습을 남겼다.

어디에 있을까?

오른편 성곽 앞에 성 마르티노의 기적을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파란 모자를 쓰고 있는 남자.

시모네 마르티니다.

그를 흘깃 바라보고 있는 옆의 남자의 모습도 흥미롭다.

비잔틴 양식과 고딕 양식을 절충하여 자신의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 낸 시모네 자신의 화풍과 어딘지 닮은 모습인 거 같아 역시 '시모네'다 싶다.

그래서 시모네 관련 책자에는 늘 이 그림이 실린다.

50child.jpg 부활한 아이의 기적:1320-25, Simone Martini, San Martino Chapel, Basilica of Saint Francis of Assisi(위키미디어)

시모네의 작품은 당시 화단의 기준으로는 너무 앞선 표현 방식이었다.

르네상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이런 작품들을 남긴 그를 위대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누가 봐도 '시모네'를 떠올리게 하는 대단한 화가로 그의 전시관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또 오랫동안 머물다 간다.


미술에 대한 지식의 많고 적음을 떠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눈길이 가게 하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이.

그가 바로 진정 위대한 예술가가 아니겠는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시에나 전을 더욱 빛내고 있는 시모네 마르티니.

보고 싶었던 그를 뉴욕에서 다시 만났다.

시모네 마르티니 전시실의 관람객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75. 피렌체에 조토가 있다면 시에나엔 두초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