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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어쩌다 아부다비

바다 위에 지은 미술관

by Ciel Bleu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긴다.

별의 별 일이 다 생길 수 있는 시대라고 생각은 하지만 막상 이런 일이 내게 생기고 보니 역시 인생은 살만하단 생각이 든다.


예기치 않았던 초대.

빛바랜 오랜 기억 속에 친구의 어려운 시절, 그의 곁을 지켜줬던 아련한 추억을 마음속에 꼭꼭 묻어두고 있던 친구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그 덕에 얼떨결에 가게 된 아부다비.

가기를 망설이는 나에게 친구는 나의 뿌리칠 수 없는 약점을 가차 없이 건드린다.

바다 위에 지어진 미술관을 직접 와서 봐야 하지 않겠냐며.


'루브르'

듣기만 해도 가슴 뛰는 단어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데 나는 친구 따라 아부다비행이다.

sorj2.jpg 루브르 아부다비와의 첫 만남. 뮤지엄 입구

세계적 건축가 장 누벨이 사막 위에 인공섬을 만들고 그 위에 철근 돔을 얹고 바닷물을 끌어들여 10여 년의 공사 끝에 2017년 오픈한 루브르 아부다비.

기대가 너무 커서인지 첫인상은 그렇게 감동적이진 않았다.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 1945~)은 서울의 리움 미술관 디자인에도 참여했던 건축가로 워낙 유명인이라 기대가 너무 컸었나 보다.

그러나 섣부른 판단은 언제나 빗나가는 법.

이번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빛을 이용하는 건축으로 '빛의 거장'으로 불리는 장 누벨의 걸작은 루브르 안에서 탄성을 자아내게 했으니 말이다.

sorj3.jpg 입구에서 보이는 루브르의 철제 돔

장 누벨.

그는 건축의 노벨상에 빛나는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 2008년 수상자다.

프리츠커상?

1979년부터 미국의 사업가 프리츠커(Jay Pritzker:1922-1999)가 운영하는 하이야트(Hyatt) 재단(우리가 아는 하이야트 호텔 맞다)에서 수여하는 상으로 역사는 짧지만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건축상으로 알려져 있다.


수상자들의 면모를 보면 루브르 앞의 피라미드를 설계한 이오 밍 페이(Ieoh Ming Pei: 1917-2019)가 1983년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1989년에는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을 건설한 프랭크 게리(Frank Owen Gehry, 1929~ )가,

1995년에는 '뮤지엄 산'을 건축한 안도 타다오(Ando Tadao,1941~ )가 수상.

1999년에는 독일 베를린 국회의사당을 건설한 영국의 노만 포스터(Norman Robert Foster,1935~),

그리고, 반가운 이름 자하 하디드(Dame Zaha Hadid:1950-2016)가 2004년 수상자다.

그녀는 서울의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만들었다.

수상자 명단이 대충 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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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겐하임 아부다비 공사현장(좌)/ 자이드 국립 박물관(매의 날개를 형상화 했다고 한다)(우)

루브르가 있는 지역은 사디야트(Saadiyat) 섬에 조성되는 문화지구로 아부다비 뮤지엄 프로젝트(Abu Dhabi's Museum Project)가 진행 중인 곳이다.

지척에 프랭크 게리의 구겐하임이 완공을 앞두고 한창 막바지 공사 중이고, 또 그 옆에는 노만 포스터의 자이드 국립 박물관(Zayed National Museum)이 멋진 모습으로 오픈을 앞두고 있었다.

그뿐인가?

자하 하디드는 공연 예술 센터(Performing Arts Center)를 디자인했고 안도 타다오도 해양 박물관(Maritime Museum)을 디자인했다고 하니 거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셈이다.


불과 60여 년 전만 해도 사막이었던 곳.(1958년부터 석유가 나오기 시작했다)

페르시아만에서 진주채취가 생업이었던 곳에 이렇게 멋진 건물과 소장품들을 지닌 뮤지엄이 들어서고 있다니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오일머니의 힘이다.

sorj4.jpg 루브르 아부다비 입구

친구는 파리의 루브르를 100여 차례 방문한 나의 전력을 알기에 처음부터 파리와는 비교 불가라고 몇 번씩 강조한다.

그냥 '루브르'라는 단어만 들어도 심장이 뛰니 염려 말라했다.


루브르 아부다비는 '루브르' 이름값으로 2047년까지 30년간 4억 유로(6천억 원)를 지불한다고 한다.

이름값으로 지불하는 금액의 단위는 우리의 한계 밖인 듯하다.

어찌 되었건 우리는 이 멋진 건축물 안에서 최고의 작품들을 관람만 하면 되니 얼마나 다행인가.


뮤지엄 입장을 위한 나의 정규 복장은 편한 신발, 메모지와 볼펜, 뮤지엄 안내 지도, 그리고 물병이다.

루브르 아부다비는 입구에서 물병도 허락이 안된다. 본원인 파리에서도 허락하는 것을.

제지하는 안내원들이 야속할 정도다.

어쩌겠는가.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랬으니.

sorj5.jpg 루브르 아부다비의 첫 전시실

세계 지도가 기하학적으로 그려진 전시실로 시작되는 루브르 아부다비는 뮤지엄으로 갖춰야 할 기본 요소들은 갖춘 듯하나 600여 편의 소장품으로는 아직은 아쉬움이 남는 방문이었다.


루브르 아부다비는 크게 3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 번째가 'Permanent Galleries'라 부르는 상시전시실로 고대(Ancient Worlds:BC10000~AD500), 중세(Middle Ages:AD500~1500), 근세(Early Modern Times:1500~1850), 현대(Modern Era:1850~) 모두 4개의 시대적 구분을 통해 12개의 전시실에 전시품들을 배열하고 있다.


고대관은 기원전 6500년경 작품으로 시작된다.

가장 오래된 인간모형의 조각품 중 하나로 요르단 지역 출토품이라고 한다.

이집트 관도 있고 루브르 파리 소장의 고대 로마 시대 아테나 여신상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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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두상,BC6500,요르단(좌)/ 이집트관(중앙)/아테나 여신상(우)

중세관에 오면 루브르 아부다비 대표 소장품 중 하나인 중국 북제(Northern Qi dynasty) 시대의 작품인 부처님 두상이 전시되어 있다. AD 580년 경 작품이라고 한다.

sorj9.jpg 부처님의 두상, 북제, AD580, 루브르 아부다비

12세기 경 작품인 고려청자도 전시되어 있어 보는 눈이 좋다.

파리 기메(Musée national des Arts asiatiques-Guimet) 박물관 소장 작품이다.

sorj31.jpg 고려청자, 1100~1300, 기메 박물관, 파리

근세관에는 파리 루브르에서 보던 니콜라 푸생의 자화상도 전시되어 있다.

sorj11.jpg 자화상, 1650, 니콜라 푸생, 루브르

현대관에는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의 1928년 작품, 샤갈(Marc Chagall)의 1938년 작품, 이브 클라인(Yves Klein)의 1960년 작품("고유명사로 불리는 특별한 '파란색' < 클라인 블루: IKB >":https://brunch.co.kr/@cielbleu/304 참조)도 있다.

모두 루브르 아부다비 소장품들이다.

보는 눈이 한가할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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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ubmissive Reader,1928, Rene Magritte(좌)/Between Darkness & Light,1938,Marc Chagall(우)
sorj12.jpg Anthropometry(ANT110), 1960, Yves Klein

두 번째는 돔(Dome) 광장이다.

상시전시실 투어를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오면 루브르 아부다비의 하이라이트 돔 광장에 들어서게 된다.


'우아' 탄성이 절로 나온다.

불가능한 일을 이루어 놓은 현장을 보는 것 같아 큰 감동의 쓰나미가 지나간다.

목이 아프도록 천장을 올려다 보다 정신을 차리니 눈길을 끄는 거대한 나무조각이 앞에 우뚝 서 있다.

돔이 막고 있는 강렬한 햇빛을 향해 쭉 뻗어 있는 나무의 모습이 천장의 높이를 암암리에 알려주는 듯 하다.

나무 조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주세페 페노네(Giuseppe Penone:1947~)의 2016년 작품이다.

20241213_122325.jpg Leaves of Light,2016, Giuseppe Penone, Turin, Italy

장 누벨의 건축미를 마음껏 음미하고 누려볼 수 있는 대단한 곳이다.

돔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햇빛은 강렬하다기보다는 은은한 분위기로 더위에 지친 인간을 달래주는 부드러움으로 힐링이 절로 되는 공간이다.

천장의 철제돔은 야자수 잎들이 서로 교차하여 만드는 그늘을 의미한다고 하고 원래 사막이었던 곳에 마치 바다 위에 뮤지엄을 지은 것처럼 보이도록 건설했다는 설명에 지역의 특징을 건축에 가미하는 건축가들의 뛰어난 아이디어와 솜씨에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사막에 바다라.

아이디어만도 기가 막힌데 그것을 실행에 옮긴 건축가는 더욱 대단하고 이것을 이루어내게 한 아부다비의 힘이 부럽지 않을 수 없다.

신선한 공기도 마시고 바다 내음도 마시고 바다와 장 누벨의 건물이 이루는 멋진 조화도 마음껏 감상해 본다.

개인적 느낌일까.

전시실 안 보다 이곳에 관람객이 더 많은 듯하다.

'Dome Steps'라 불리는 계단은 장 누벨의 걸작 아래 잠시 쉬어 가며 차 한잔 하면 딱 좋은 장소다.

Dome Steps에서 바라보는 멋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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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 광장과 돔 천장 확대사진

사진 스팟으로 알려진 Platform에는 대기줄이 길다.

마치 런웨이의 모델이나 셀럽들처럼 맘껏 차려입은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긴 대기줄을 만들고 있다.

멀리서 그들을 보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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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tform의 대기줄(좌)과 '잘 찍으면 이렇게 나온다'는 샘플 사진(우)

돔 광장의 끝 자락에 오니 바로 코 앞에 구겐하임 공사현장이 보인다.

2025년 개관 예정이라는데 아직 공사가 많이 남아 보인다.

뉴욕의 구겐하임에서 아부다비 조감도를 보고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드디어 내가 그 현장에 와 있구나 하니 친구가 말한다.

'꿈은 이루어진다.'

그나저나 다시 와야 할 이유가 생겼다면서 친구가 더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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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아부다비에서 마주 보이는 구겐하임 공사현장(좌)/구겐하임 뉴욕에서 보았던 조감도(우)

다시 힘을 내어 찾은 곳은 돔 광장에 있는 아부다비 루브르의 세 번째 전시실 특별 전시장(Temporary Exhibitions)이다.

sorj35.jpg 돔 광장의 특별 전시장 입구


후기 인상파전(Post Impressionism)이 열리고 있다는 포스터.

상시전시실 이상으로 보고 싶었던 특별 전시다. 25년 2월 9일까지다.

모두 7개의 전시실에 피사로, 쇠라, 보나르, 고흐, 세잔,흐동(Odilon Redon), 고갱 다 모여있다.

아부다비에서 이들의 대표 작들을 자세한 설명과 함께 보게 된 건 기대 이상이었다.

특별 전시장의 신나는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된다.

sorj28.jpg 루브르 아부다비의 후기 인상파전 포스터

여기저기 정신없이 뮤지엄을 누비는 나를 보고 친구가 묻는다.

'아부다비가 무슨 뜻인지 알아?'

'아부'는 '아버지'란 뜻, '다비'는 양의 일종으로 뿔 달린 양 가젤(Gazelle)이란다.

전체의 뜻은 '양을 키우는 자'라는 뜻이 된다고.

고개를 갸우뚱하자.

'아부다비가 섬인 건 알아?'하고 또 묻는다.

18세기, 진주 채취가 생업이었던 육지 사람들이 들리던 섬인데 어느 날 보니 양 떼가 어느 곳에 떼를 지어 모여 있더란다.

이상한 생각에 가보니 샘물이 나오고 있더라고.

섬에서 식수원이 발견된 것. 그전 까지는 이 섬으로 올 때는 식수를 가지고 다녔단다.

그래서 그 자리에 식수원 보존을 위해 성채를 쌓았는데 그게 지금의 '알 호슨 궁전(Qasr Al Hosn)'이 된 거라고.

가끔 뜬금없이 뿔 달린 양이 그려진 마크를 보게 되면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음을 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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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들고 있던 가방에 이미 뿔 달린 양 가젤이 그려져 있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들고 다녔다.

내가 이 친구를 오랜 세월 좋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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