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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신화가 전해지는 그곳에는

프로메테우스와 조지아 카즈베기 산

by Ciel Bleu

프로메테우스의 고난, 카즈베기 산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는 인간에게 신들의 전유물이었던 불을 훔쳐다준 신이다.

그로 인해 그는 코카서스의 깊은 산속의 절벽에 묶여 밤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고통을 무려 3,000년 동안 받게 되고.


그가 묶여 있던 코카서스 산 이 바로 조지아에 있는 해발 5,047m의 '카즈베기(Kazbegi)' 산이다.


코카서스 산맥은 유럽 최고봉인 '엘부르스 산(Elbrus. 5,642m)'을 포함하여 해발 5,000m가 넘는 산들이 많은 험난한 산악 지역이다.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신화의 배경으로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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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훔치는 프로메테우스, 1636, 루벤스, 프라도 미술관(좌), 고통받는 프로메테우스, 1611, 루벤스, 필라델피아 미술관(우)

그는 '회향(fennel)' 가지를 이용해 제우스의 벼락 불씨를 훔쳤다고 한다.

'회향'은 '펜넬'이라고 하는 남유럽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식물로 향신료로 주로 사용된다.

대로한 '제우스'가 '제우스'의 상징인 벼락으로 그를 죽일 수도 있었지만 고통스러운 벌을 내린 것은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에 관련된 무척 흥미로운 예언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그걸 듣고 싶어서 죽이지 않고 고통만 주었다는 이야기다.

카즈베기 산과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교회(위키미디어)

예언의 내용은 '제우스'가 아버지 '크로노스'를 제거했듯이 그도 아들에 의해 제거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는데 여러 여신들과 여인들을 거느린 그였기에 그게 누구의 아들인지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고통받던 '프로메테우스'를 독수리의 공격에서 구해낸 것이 바로 '헤라클레스'다.

'헤라클레스'도 '헤라' 여신이 내린 '12 과업'을 수행하느라 힘든 시기였는데 마침 그가 해야 할 과업은 그중에서도 가장 어렵다는 '헤스페리데스(정원의 님프들)'가 지키는 황금 사과나무의 사과를 따오는 것이었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헤라'에게 선물한 이 사과나무에는 불멸의 황금 사과가 열리는데 머리가 백개 달린 잠들지 않는 용이 지키고 있으며 어디 있는지 조차도 확인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헤스페리데스'가 '아틀라스'의 딸이란 것을 알고 있던 '제우스'는 '헤라클레스'에게 '헤스페리데스'와 '아틀라스'의 관계를 알려주고 대신 '헤라클레스'가 '프로메테우스'를 괴롭히는 독수리를 죽이고 그가 알고 있는 예언의 내용을 알아오도록 했다.


그냥 직접 알아내도 될 듯한데 신화는 늘 이렇게 다양한 방법을 취한다.

이것이 신화를 읽는 재미이기도 하지만.


예언의 내용은 '제우스' 자신을 제거할 아들을 낳을 상대가 바로 바다의 요정 '테티스(Thetis)'라는 것이었다.

Júpiter_y_Tetis,_por_Dominique_Ingres.jpg 제우스와 테티스 여신, 1811, 그라네(Granet), 그라네 미술관(엑상 프로방스)

그렇잖아도 '테티스'의 미모를 흠모하고 있던 '제우스'는 예언의 내용을 알고 난 후 '테티스'를 인간 영웅 '펠레우스'와 결혼시켜 아예 불씨를 없애려 했다.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은 트로이 전쟁의 화근이 된 '파리스의 심판(Judgement of Paris)'으로도 유명한 결혼식이다.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라고 쓰인 사과 하나를 던져 놓는 바람에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으니.


이 사과는 자기 것이라고 막강한 세 여신(헤라, 비너스, 아테네)이 서로 우기는 바람에 어느 누구도 감히 사과를 건드리지 못하고 있는데.

어리숙한 양치기 '파리스(그는 사실은 트로이의 왕자다)'가 사과를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 주도록 했다.


세 여신은 거부하기 힘든 어마어마한 제안들을 하고.

'파리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다'는 '비너스'의 제안에 사과를 냉큼 '비너스'에게 주고 말았다.


'비너스'의 약속대로 그는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얻게 되지만 결국 그로 인해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1280px-Rubens_-_Judgement_of_Paris.jpg 파리스의 심판, 1632, 루벤스, 내셔널 갤러리(런던): 아테네, 비너스, 헤라, 헤르메스, 파리스(좌로부터)

이 결혼으로 '테티스' 여신은 인간과 혼인한 유일한 신이 되었는데 '테티스' 여신의 아들이 누구냐 하면 바로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스'다.


반은 신이고 반은 인간이라 영생을 못 가질 것을 염려한 '테티스'는 아들에게 영생을 주기 위해 저승의 '스틱스(Styx)' 강에 아기를 넣었다가 뺐는데 그만 잡고 있던 발목엔 강물이 묻질 않았다.


트로이 전쟁에서 하필 그곳에 화살을 맞아 '아킬레스'는 영생을 못하고 죽었지만 우리의 발목 뒤에는 그 아킬레스 건이 남아 있다.

'프로메테우스'에서 시작한 신화는 돌고 돌아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스'의 죽음으로 일단락을 맺지만 신화는 이래서 늘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해발 5047m의 '카즈베기' 산은 안개에 싸여 있는 날이 많아 모습을 쉽게 보여 주지 않는다.

신비주의 코스프레를 하는 날이 많아 '카즈베기' 산을 만나는 것은 여행자의 운이다.

조지아를 방문하는 방문객들은 주로 '카즈베기' 산을 조망할 수 있는 해발 2200m의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Gergeti Tsminda Sameba)' 교회를 방문한다.


난공불락의 위치에 15세기에 지어진 이 교회는 조지아가 전쟁에 처할 때마다 정교회 성모상을 피신시키는 매우 중요한 교회다.


압도적인 '카즈베기' 산의 위용도 대단하지만 '샤니 산(4,451m)'과 어우러진 '츠민다 사메바'교회의 모습이 또한 장관이라 조지아를 대표하는 사진으로 많이 나온다.

'프로메테우스'의 '카즈베기' 산은 '샤니' 산의 반대쪽에서 가끔씩 모습을 나타내곤 한다.

Kazbegi-5.jpg 츠민다 교회 뒤로 병풍처럼 서 있는 샤니 산

조지아의 자연경관이 보여주는 장엄함과 위용은 보는 것만으로도 입틀막인데 거기에 흥미로운 신화까지 곁들여지니 어디선가 '프로메테우스'의 비명 소리가 들리는 건 아닌지 은근히 걱정도 되는 여행이었다.



다음 이야기는 구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다.

조지아의 이웃나라 아르메니아에는 노아의 방주가 멈추었다는 유명한 '아라랏트(Ararat) 산'이 있다.

해발 5137미터의 아라랏트 산 전경

지금은 터키 영토가 된 산이지만 아르메니아 인들은 아라랏 산을 그들의 영산으로 여긴다.

이 동네 신화의 끝은 어딘지 보는 장면 하나하나가 특별히 다가오는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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