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프릭 컬렉션으로
뉴욕을 방문한다면 'must see museum'중 하나인 '프릭 컬렉션(The Frick Collection)'이 3년여의 긴 리모델링을 마치고 지난 4월(2025년) 재개장했다.
워낙 주옥같은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던 곳이라 리모델링 기간 동안 바로 옆 매디슨가로 옮겨 '프릭 매디슨'에서 전시를 이어갔지만 전시장 분위기는 사뭇 달라 작가에게는 이번 재개장이 마치 친정으로 돌아온 며느리 맞는 기분이 이럴까 싶다.
다시 돌아온 뉴욕 뮤지엄 마일의 명소 '프릭 오픈'은 뉴욕으로 가는 긴 여정을 한결 가볍게 만들어 준다.
긴 기다림 끝의 재회라 마치 소풍날을 기다리던 어린 시절의 철없는 아이 같은 마음이다.
'뮤지엄이 뭐 거기서 거기지 큰 차가 있겠나?' 하겠지만 '프릭'을 얘기하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이미 수 차례 방문 했음에도 '프릭' 만이 주는 독특한 매력은 많은 이들이 망설임 없이 다시 찾아오게 만드는 이유 이기도 하다.
바로 옆에 세계 3대 미술관에 뽑히는 거대한 '메트로 폴리탄'이 자리하고 있지만 '프릭'은 자신만의 유니크한 분위기로 우리를 맞이해 준다.
마치 내가 그곳의 주인이 된 거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드니 말이다.
어마어마하진 않지만 훌륭한 명작들이 여유롭게 전시된 조용하고 정갈한 전시실과 아름답게 가꾼 실내 정원, 실내를 장식하고 있는 고가구들과 함께 적재적소에 배치된 조각품들은 마치 나의 저택인 거 같은 전혀 기분 나쁘지 않은 착각이 들게 한다.
자, 그럼 우선 '프릭 컬렉션'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간단히 '프릭'으로 부른다.
'프릭'은 20세기 초 '카네기'와 같은 철강업을 하던 대부호의 이름이다.
'헨리 클레이 프릭(Henry Clay Frick:1849~1919)'이 그의 정식 이름이다.
펜실베이니아 출신으로 카네기와 함께 미국의 철강계를 좌지우지했던 인물 중 한 명이다.
그가 활약하던 시절, 철강왕 '카네기(1835~1919)', 철도왕 '밴더빌트(1794~1877)', 석유왕 '록펠러(1839~1937)', 금융왕 'J.P. 모건 (1837~1913)'등은 우리에겐 익숙한 이름들이다.
혹 '강도 귀족(Robber Baron)'이란 단어를 들어 본 적이 있는지.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에 막대한 부를 축적한 미국의 대부호들을 부르는 말이다.
앞에 언급한 각 분야의 왕들이 바로 그들이다.
지금도 뉴욕에는 학교, 빌딩, 문화재 건물, 음악당등 이들의 이름을 건 명소들이 즐비하다.
'강도 귀족'이란 단어에서 감 잡았겠지만 이들은 축재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쌓았던 것으로 유명한데 '프릭'도 노조와의 분쟁으로 두 번이나 암살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어째 고고한 예술작품과는 어울리지 않을 거 같은 뒷 이야기 들이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가격을 치르면서 이런 예술작품들을 모을 수 있었던 것도 결국 그들의 재력이었으니 그 덕을 후대의 우리가 누리는 것이라 생각해야 하는 건지 아이러니하긴 하다.
그는 이렇게 모은 돈으로 예술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1880년, 우리에게는 생소한 '루이스 히메네스 아란다(Luis Jiménez Aranda:1845-1928)'라는 스페인 화가의 작품을 시작으로 1890년대 중반부터 대량의 그림을 구매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미국에 인상파를 소개한 것으로 알려진 설탕 산업의 대부인 '헨리 하베마이어(Henry Osborne Havemeyer:1847~1907--그는 모든 수집품을 메트로 폴리탄 뮤지엄에 기증했다.)', 'J. P. 모건'등과 등과 함께 미술품을 수집하는 여러 저명한 미국 사업가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Morgan Library & Museum https://brunch.co.kr/@cielbleu/289
현재 '프릭'이 있는 뉴욕 어퍼 이스트 70번가의 저택은 철강 업종에서 늘 카네기에게 밀렸던 그가 카네기를 압도해 보겠다고 '카네기의 집(91번가의 현재 Cooper-Hewitt Museum이 있다.)' 근처에 땅을 사서 1914년에 완공되었는데 처음부터 그의 많은 컬렉션 보관을 염두에 두고 설계했다고 한다.
'프릭'은 1500여 점에 이르는 14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유럽 회화와 유럽의 순수 미술 및 장식 미술품등을 소장하고 있는데 취향이 매우 까다로웠다는 그는 평생 동안 작품 수집에 약 1,000만 달러를 썼다고 한다.
'프릭'의 전시실 중 으뜸으로 꼽히는 '프라고나르 방 (The Fragonard Room)'도 금융왕 'J.P. 모건'에게서 구입한 것이다.
다른 대부호들이 80대, 90대의 장수를 누릴 때 '프릭'은 1919년 12월 69세의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두 번의 암살 위기와 타이타닉(우리가 아는 그 타이타닉 맞다)호 승선 직전 아내의 발목 부상으로 승선을 취소할 수밖에 없어 화를 면했던 그였지만 심장마비는 피하질 못했다.
70번가의 이 저택은 1935년 12월, 그의 유언대로 공공에 오픈되었으며 매년 30여만 명이 방문하는 뉴욕의 알토란 같은 뮤지엄이다.
프릭은 전시실 촬영을 금하기 때문에 일일이 소장품을 기억하기는 어려우나 재방문 시에 꼭 다시 보고 싶은 몇 개의 작품이 있다.
우선, 세상에 3편밖에 없는 '피터 브뤼겔 디 엘더(Pieter Brueghel the Elder)'의 '그리자유(grisaille)' 작품이다.
그중 하나.
'The Three Soldiers'다.
이 작품은 한때 영국왕 찰스 1세가 소장하기도 했던 작품으로 세명의 '란츠크네히트(Landsknecht)'를 그리고 있다.
'란츠크네히트'는 15,6세기 용맹을 떨치던 스위스 용병에 비교되던 독일 용병으로, 역사에 남은 1527년 '로마약탈(Sacco do Roma)'을 주도한 용병들이다.
특별한 회화 기법: 그리자유(Grisaille) https://brunch.co.kr/@cielbleu/311
다음으론 지난번(2024년) 메트의 특별전에서 보았던 시에나 화파의 대부 '두치오(Duccio di Buoninsegna)'의 작품을 다시 보고 싶고,
미술사에 영원히 남은 거장들 https://brunch.co.kr/@cielbleu/318
얼마 전 호암 미술관에서 특별전을 했던 니콜라스 파티(Nicolas Party:1980~)의 뉴욕 전시회에서 보았던 파스텔 화의 대모 '로살바 카리에라(Rosalba Carriera:1673-1757)'의 작품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젊은 화가의 독특한 전시회 '더스트' https://brunch.co.kr/@cielbleu/314
그리고,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치마부에(Cimabue)'와 '프릭'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주 언급되는 '브론치노(Bronzino)'와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의 작품들과 초상화의 대가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the Younger)',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빛의 화가 '버미어(Johannes Vermeer)' 그리고 프릭 당대 미국의 대표 화가였던 '휘슬러(James McNeil Whistler)'에 이르기까지 기억 속에 남아있는 작품들만 생각해도 한 가득이다.
이미 새로 단장한 '프릭' 앱과 도록을 다시 보았지만 보면 볼수록 직접 봐야겠다는 생각이 커진다.
리모델링으로 실제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새로 전시되는 작품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한 게 많다 보니 소풍날 기다리는 어릴 적 감성 모드로 돌아가는 건 어쩌면 당연하지 싶다.
이번엔 '메트'보다 '프릭'이다.
뉴욕 일정 중 제1 순위로 올려놓은 '프릭 컬렉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