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91. 포르투(Porto)의 아름다운
서점

렐루와 해리 포터

by Ciel Bleu


포르투갈 제2의 도시 '포르투(Porto)'를 방문한다면 방문 순위 1,2위를 다투는 곳이 있다.

'렐루 서점(Livraria Lello)'이다.


서점이 관광 명소라고?


그런데 서점과 '해리 포터'의 연결고리가 생기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해리 포터'의 저자 '조안 롤링'이 이곳에서 영감을 얻어 '해리 포터'를 집필했다더라 하는 소문으로 더욱 유명세를 타는 서점이다.


'얼마나 대단한 곳이길래 그런 대작에 영감을 주었을까?' 하며 기대에 찬 많은 관광객이 전 세계에서 이곳을 찾는 바람에 서점 앞은 늘 장사진(?)을 이룬다.

서점 앞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방문객들

그런데 말이다 이 서점에 입장하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

서점에 들어가는데 무슨 입장료?

몰려드는 많은 관광객들로 서점 운영이 어려울 정도가 되자 2015년 7월부터 시작된 서점의 운영 방침이란다.


그것도 현지에서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인터넷으로 예매를 해야 한다.

입장하려는 날짜만 정하는 것이 아니라 입장 시간대까지 미리 정해야 한다.

서점 방문이 너무 까다로운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원하는 날, 원하는 시간대를 예매하려면 최소 일주일 전에는 예매를 서두르는 게 좋다.

'렐루 서점' 공식 사이트의 티켓 예매 창구

입장료는 방문 유형에 따라 10유로와 50유로 두 종류가 있다.

10유로는 셀프 투어, 말 그대로 자유롭게 서점을 둘러보는 값이다.

50유로는 가이드 투어로 셀프 투어에서는 입장이 안 되는 'Gemma Room:희귀본이 보관된 방으로 책에 진심인 사람(희귀본에 대한 관심이 높거나 투자 가치로 책을 찾는 사람들)들을 위한 방이다.'투어를 할 수 있고 같은 시간대라도 우선 입장의 특혜가 주어진다.

그러다 보니 시간대에 맞춰 가도 기다림은 필수다.

발 디딜 틈 없는 서점 안

입장료로 지불한 금액은 서점 방문 시 책을 구매하면 입장료 금액만큼을 빼준다고 한다.

만약 25유로 책 한 권을 사려면 입장권 가격을 제외하고 15유로를 더 내야 한다.

권당 한 장의 입장권만을 사용할 수 있다.

친구 거 같이 못 쓴다는 뜻이다.

그런데 책값은 대충 25유로 이상이다.

포르투갈어가 아닌 영어나 다른 언어권의 책은 더욱이 선택이 제한적이다.

할인은 꼭 책에만 해당된다.

기념품이나 메모지 같은 책이 아닌 지류는 할인대상에서 제외다.

결국 이 서점에 온 기념으로 책을 한 권 사려면 최소 15-20유로를 더 써야 한다는 얘기다.


'렐루 서점'은 '해리 포터'와 연관이 있다 보니 영어판 '해리 포터'를 많이들 보는데 국내에서 사는 것보다 만원 정도 더 비싸다.

'렐루 서점' 도장이라도 찍혀 있음 기념으로 사고 싶지만 아무 표시도 없고 가격도 국내보다 비싸고 여행 중 짐도 될 테니 많은 이들이 그냥 보는 걸로 만족하는 거 같다.

이층에 전시된 해리 포터 시리즈

아침 9시부터 15분 간격으로 입장되는데 시간당 80여 명으로 인원을 제한한다고 한다.

서점 안이 그다지 넓지 않아 15분당 80여 명이면 한 시간에 320명이란 얘긴데 앞 뒤로 누적 인원까지 생각하면 많은 인원이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일단 입장하면 사람들은 바로 앞에 놓인 빨간 계단 앞을 지나치질 못한다.

바로 호그와트의 움직이는 계단에 영감을 주었을 것이란 유명세를 타는 계단이다.

'렐루 서점'의 아이콘 빨간 계단
이층으로 오르는 방문객들로 만원인 '빨간 계단'

멋지다!

계단 아래에서, 중간에서, 위에서 기념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아마도 이곳을 찾은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 빨간 계단에서의 인증샷인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 순서를 기다리는 먼저 들어온 입장객들로 서점 안으로 진입이 어려울 정도다.

이층에서 내려다본 빨간 계단

책을 사러 온 사람보다 기념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 수가 훨씬 많아 보인다.

마음에 정하고 온 책이 있으면 모를까(그것도 재고가 있어야 살 수 있지만) 책을 사고 싶어도 마음 편히 책을 둘러볼 환경이 안된다.

사람들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이동하기도 힘들다.

인파로 붐비는 이층 서점 안 전경

그런 와중에도 짬짬이 주위를 둘러보면 놓치기 아까운 아름다운 실내 인테리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2016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렐루 서점'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중 하나로 선정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는 내부 전경이다.


지하에는 'Gemma Room'이 있고, 1,2층의 벽장은 온통 책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천정은 스테인드 글라스로 마무리되어 있다.


길이 8m, 폭 3.5m의 대형 스테인드 글라스 중앙에는 서점의 모토인

'Decus in Labore:노동의 아름다움'이라는 라틴어 구절이 새겨져 있다.


주변의 장식은 나무처럼 보이도록 시멘트 위에 칠한 것이라 한다.

어디를 둘러봐도 모두가 포토스팟이다.


이런 데서 여유롭게 책을 고른다면 아마 몇 권은 족히 사고 싶을 거 같은 아름다운 서점이다.

천정의 스테인드 글라스(위)와 1층에서 올려다 본 '빨간 계단'의 뒷 모습(아래)

'렐루 서점'은 '해리 포터'와의 연류설이나 아름다운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갖는 의미도 큰 서점이다.


현재의 렐루 서점은 120년 전인 1906년 1월.

형 '호세 렐루(José Pinto de Sousa Lello:1861-1925)'와 아우 '안토니오 렐루(António Lello)' 형제가 이곳에 처음 문을 열었다.


고딕양식과 아르누보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설계는 한때 포르투의 시장을 지낸 '프란시스코 사비에르 에스테베스(Francisco Xavier Esteves:1864-1944)'라는 건축가가 맡았다고 한다.

1906-fachada.jpg 1906년 오픈 당시 '렐루 서점' 전경(렐루 공식 사이트)
2006-milestones.jpg 렐루 서점의 계단과 천정의 스테인드글라스(렐루 공식 사이트)

렐루 서점 입구 간판에 "Lello & Irmão"라는 사인이 보인다.

'이루마우(Irmão)'는 '형제'란 포르투갈 말이니 렐루 형제가 운영하는 서점이란 뜻으로 안성맞춤 간판이다.

건물 입구에서 볼 수 있는 두 사인

그런데 서점 입구 'Lello & Irmão' 사인 바로 밑에 또 하나의 사인이 보인다.

'Livraria Chardron'.

'샤르드롱 책방'이다.

왜 '렐루 서점' 사인 밑에 또 다른 사인이 있는 걸까?

이걸 설명하려면 잠시 '렐루 서점'의 시발점의 상황을 알아보고 와야 한다.


1858년 포르투로 온 상파뉴 출신의 프랑스인 '에르네스토 샤르드롱(Ernesto Chardron:1840-1885)'은 이곳에서 프랑스 서점을 운영하던 지인의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을 배우고 있었는데 그는 포르투갈어도 잘하고 출판업 분야에도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고 있었단다.


그러던 중 1869년 복권에 당첨되는 행운까지 겹쳐 현재 '렐루 서점'이 있는 자리에 '샤르드롱 서점'이라는 포르투갈 최초의 '국제 서점(해외발간 책을 주로 판매하는 서점)'을 오픈하면서 출판업자로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샤르드롱'은 그런 능력으로 45세란 젊은 나이에 요절했음에도 짧은 시간에 포르투갈과 프랑스 최고의 작가들이 쓴 600여 권에 이르는 많은 책을 출판했다고 한다.

이런 역사적 이유로 현재도 '렐루 서점' 외관에는 이 서점의 시초가 된 '샤르드롱'을 기리는 의미의 'Livraria Chardron' 사인이 남아 있는 것이다.


정리하면,

1869년 현 '렐루 서점' 자리에 '샤르드롱 서점'이 오픈했고

1906년 현재 모습의 '렐루 서점'이 개관했으며

1993년 '렐루 서점'의 복원 작업 중 실수로 갈색이었던 계단을 빨간색으로 칠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히려 좋은 평을 받자 그대로 유지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5년 7월부터 서점의 입장료 정책이 시행되었다.

1993_02.gif 렐루 공식 사이트에 있는 '갈색 계단'이 '빨간 계단'으로 칠해지는 재미있는 영상

그러면 '렐루 서점'과 '조안 롤링'의 관계는?

결론은 '조안 롤링(이하 조안)'은 '렐루 서점'에 와 본 적이 없다고 2020년 그녀의 트위터에서 밝혔다.


그러나 '조안'은 포르투와 인연은 깊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포르투에 살았다.

영어 교사로 일하던 그녀는 1992년 현지에서 만난 저널리스트와 결혼하고,

1993년 7월 첫 딸을 얻었지만 출산 4개월 만인 같은 해 11월 이혼 소송을 시작하게 되었고.


포르투를 떠나 4개월 된 딸과 여동생이 사는 에든버러에 정착했지만 생활고와 우울증에 시달리던 시절이었다.

주당 미혼모 수당 한화 8만원(70파운드)의 궁핍한 생활로 책 쓰는데만 전념하는데 이때 그녀가 자주 들러 집필했던 카페는 에든버러에 있는 '엘리펀트 카페'다.


어려운 시절을 겪으면서 드디어 1997년 '해리 포터 시리즈' 제1편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Harry Potter and the Philosopher's Stone)'출간이 이뤄졌다.

에든버러에 있는 '엘리펀트 카페'(지금은 관광명소가 되었다)


결국 '조안'은 '렐루 서점'에 와 본 적도 없으니 '해리 포터'에 등장하는 서점 '플러리시 앤 블러츠(Flourish & Blotts)'나 호그와트의 계단이 '렐루 서점'에서 얻은 영감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맞지 않는 이야기다.


그러면 이런 이야기들은 왜 만들어지고, 저자가 부인함에도 왜 그 이야기들을 믿으려 하는 걸까?


저자가 포르투에 살았고 서점은 이야기에 영감을 줄 만큼 웅장하고 아름다우니 이런 곳에서 '해리 포터'와 같은 대작의 영감을 찾아보려는, 또는 이미 찾아낸 똘똘한 독자들의 염원이 만들어낸 현상이 아닐까 싶다.


'동 루이스' 다리와 '세하 두 필라르 수도원(Monastery of Serra do Pilar)'의 멋진 야경

포르투의 대표적 명소 '동 루이스' 다리 아래에서 멋진 야경을 감상하는데 어디선가 신나는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검은 제복을 입은 여러 명의 학생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하모니다.

'동 루이스'다리에서 노래하는 포르투 대학생들

그들을 본 순간 머리에 스치는 장면.

'해리 포터'의 호그와트 학생들의 교복이다. 똑같다.

지금 내 앞에 그들이 입고 있는 제복은 포르투갈 대학생들이 입는 '트라제 아카데미코(Traje Académico)'라는 검은색 교복이다.

'조안'이 호그와트의 검은 교복의 영감을 이들에게서 얻었다는 것은 거의 정설 처럼 되어 있다더니

그들을 보고 있는 나도 마치 호그와트 어딘가에 와 있는 것 같은 묘한 분위기에 빠져 든다.


이렇듯 훌륭한 책에서 얻은 감흥이 아름답고 독특한 것으로 연관되고 그러한 것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내고자 하는 '해리 포터'의 열렬한 독자들이라면 얼마든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볼 수 있는 포르투와 '렐루 서점'이다.


굳이 '포터헤드(Potterhead: 해리 포터 시리즈의 광팬)'가 아니더라도 '렐루 서점'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계단과 웅장한 디자인은 많은 방문객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유명세로 입장료를 내기도 하고 서점이라고는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많은 인파로 몸살을 앓기도 하지만 충분히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볼 만한 요소들이 있어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더라도 한 번쯤 방문해 보고 싶은 아름다운 서점이다.


'렐루 서점' 입구를 장식하고 있는 포르투 전경과 두 명물 '바르셀루스의 수탉(Galo de Barcelos)'과 '정어리 통조림'장식이 정겹다.

*포르투갈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바르셀루스의 수탉' 장식은 누명을 쓴 순례자가 자신의 무죄를 구운 수탉이 울어서 증명할 것이라 예언했는데 사형집행 직전 순례자의 예언대로 구운 수탉이 울어 그의 무죄를 증명했다는 유명한 수탉이다. '진실이 거짓을 이긴다는 뜻'으로 포르투갈에서는 행운의 부적으로 여기는 중요한 수탉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90. 비틀즈와 폼페이 모자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