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치킨의 변신은 무죄

'갈로 네로'와 '바르셀루스의 수탉'

by Ciel Bleu


우리의 국민 음식 중 하나 치킨.

'후라이드 반, 양념 반.' 하던 게 이젠 더욱 다양한 메뉴로 우리의 식탁을 점령한 대표 K 푸드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가장 쉽게 보이는 친근한 동물이기도 하다.

수탉의 훼치는 소리에 아침 기상을 하던 이들은 이젠 알람으로 대체한 지 오래고,

어쩌다 수탉의 '꼬끼요' 소리를 들으면 어린 시절 추억 소환을 하는 이들도 많다.


우리에게는 추억의 한 장으로, 이제는 식탁 위의 최애 푸드로 변함없이 우리 곁을 지켜주는 고마운 닭이다.

그러나 이런 친숙한 닭이 국운을 좌지우지하거나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기적의 닭으로 전해지는 곳도 있다.


치킨의 변신은 무죄


처음 와인 병에 그려진 검은 수탉을 보았을 때 도대체 와인 병에 왜 닭, 그것도 검은 닭을 그려 넣었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검은 수탉(Gallo Nero)'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이탈리아 와인 '키안티(Chianti) 클라시코' 와인 병에 그려진 검은 수탉 로고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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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이탈리아 토스카나로 잠시 시간 여행을 가보자.

키안티는 토스카나에 있는 와인 대표 산지로 이곳에는 중세 시대부터 자웅을 겨루는 두 도시가 있었다.

지금도 위세가 당당한 피렌체와 시에나다.

서로 영토와 권력 쟁탈전을 일삼는 오랜 전쟁에 지친 두 도시는 묘안을 내었단다.


그 유명한 '닭' 이야기의 시작이다.

수탉이 울면 각자의 성에서 기사가 출발하여 두 도시의 기사가 서로 만나는 지점을 자신들의 영토의 경계선으로 정하기로 했다.


피렌체는 검은 닭을 굶기고,

시에나는 흰 닭을 잘 먹이고.


결과는 굶주린 피렌체 닭이 밥 빨리 달라고 일찌감치 울어대는 바람에 일찍 출발한 피렌체 기사가 키안티 거의 전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피렌체에서 시에나 까지 거리가 80km 정도인데 피렌체 출발 70km 지점에서 둘이 만났다니 말이다.

이런 역사적 의미로 키안티 와인 로고로 검은 수탉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비록 전해오는 이야기지만 중세부터 검은 수탉이 키안티 지역 도시들의 동맹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는 기록들이 전해진다.


거기다 16세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인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1511-1574)'가 피렌체의 베키오 궁(Palazzo Vecchio) 천장에 검은 수탉이 그려진 '키안티 알레고리'라는 그림을 남겨 이 지역의 검은 수탉 존재감에 쐐기를 박았다.


'키안티 알레고리'가 그려진 방은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대결의 장이 될뻔했던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https://brunch.co.kr/@cielbleu/258 참조)


이 방은 베키오 궁전에 있는 '살로네 데이 친퀘첸토(Salone dei Cinquecento:500인의 방)'라는 피렌체 공화국의 대 회의실로 사용되던 웅장한 방으로 바사리는 천장을 39개의 격자형 프레스코화로 장식했으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미완성으로 남겼던 벽화 자리에도 그의 작품이 걸려 있다.


메디치가의 주문으로 1563년에서 1565년 사이에 그려진 이 프레스코화의 내용들은 피렌체와 토스카나에 영광을 안긴 역사적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다.

sorj7.jpg 살로네 데이 친퀘첸토
Salone dei Cinquecento.jpg

바사리의 '키안티 알레고리' 그림을 보면 그림 속 왼쪽에 젊은이가 키안티 동맹의 문장인 금색 바탕에 검은색 수탉이 그려진 방패를 들고 있다.


수탉의 모습은 중세 시대 키안티 지역 동맹 로고와 아주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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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j4.png 바사리가 그린 '키안티 알레고리'(위)/중세의 키안티 동맹 로고(아래)

그림 중앙에는 키안티의 훌륭한 와인을 상징하는 술의 신 바쿠스(Bacchus)를 그려 넣어 키안티 와인의 우수성을 그때부터 전하고 있다.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 병의 '검은 수탉'로고는 피렌체가 키안티 지역을 차지하고 그곳에서 생산되는 훌륭한 와인을 상징하는 역사적 의미와 와인의 우수성을 아우르는 큰 의미를 가진 상징이었다.


그런데 멀지 않은 곳에 또 하나의 유명한 '검은 수탉'이 있다

sorj8.jpg 전형적인 '바르셀루스의 수탉(Galo de Barcelos)' 모형

바로 포르투갈의 '바르셀루스의 수탉(Galo de Barcelos)'이다.


이 닭은 키안티 수탉과는 다른 사연으로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유명한 닭이다.


이 닭에 얽힌 이야기는 이렇다.


포르투갈의 '바르셀루스'라는 조그만 마을을 지나던 순례자가 있었는데(여러 버전이 있지만 여인숙 집 처자의 연정을 받아주지 않아 여인의 노여움을 사서 누명을 쓰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유명하다.) 그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참수형을 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형 집행을 기다리던 순례자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내게 죄가 없다면 내일 아침 식탁 위에 올라올 요리된 닭이 울 것이다.'라고 예언을 했다고.


그런데 정말 울었다.

이미 요리된 닭이!

기적이었다.

닭이 울어 순례자의 무죄는 입증되었고 그 후로 이 닭은 정의와 무고함을 상징하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진실이 거짓을 이긴다는 뜻'으로 포르투갈에서는 행운의 부적으로까지 여기는 국조(國鳥) 수준의 국민 닭이다.


'바르셀루스의 수탉'이 주로 검은색이나 진한 색의 닭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불에 구워져 요리가 된 닭을 나타내는 것이라 한다.

그 위를 장식하는 화려한 무늬와 하트 모양은 삶에 대한 사랑과 행운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sorj11.jpg 포르투 렐루 서점에 진열된 '바르셀루스의 수탉'

집안에 복을 가져다주는 기념품으로 인기가 많다 보니 포르투갈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으며 포르투갈뿐 아니라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어딜 가나 '바르셀루스의 수탉'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프랑스의 국조(國鳥)가 '수탉(Le Coq)'임은 유명하다.

프랑스가 독수리 같은 멋진 새가 아닌 닭을 국조로 정한 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으니 나라 별로 현지 상황에 따라 만들어지는 상징이나 이야기들이 참으로 다양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그러나 단순히 예쁜 장식 정도로 알았던 것들이 이렇게 긴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나면 하나하나 가볍게 넘길 것이 없지 싶다.


여행을 하다 보면 퍼즐 맞추듯이 풀려 나오는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더 많은 것을 얻게 되고 좁았던 시야가 시원하게 넓어지는 경험을 종종 하게 된다.


이런 멋진 경험을 하게 되면 우리는 다시 미싱 퍼즐 조각을 들고 주저 없이 새로운 여행과 작품을 찾아 나서게 된다.


다음엔 또 어떤 흥미로운 퍼즐을 맞추게 될는지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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