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프로방스의 독특한 성탄 장식

진흙으로 빚은 인형 '쌍통(Santon)'

by Ciel Bleu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를 여행하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음식 '부야베스(Bouillabaisse)'가 있다.

일종의 생선 스튜인데 항구 도시이다 보니 과거 배사람들이 먹던 음식으로 시작되었던 것이 이제는 마르세유를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


마르세유의 '구 항구(vieux-port)'에는 부야베스를 파는 식당이 많다.

그 가운데 ‘미라마르(Miramar)’는 제대로 된 부야베스를 맛볼 수 있는 식당으로 이미 많은 셀럽들이 다녀간 곳이다.

마르세유 구항구에 있는 부야베스 전문점 미라마르

부야베스가 일반 생선 수프와 구별되려면 4가지 요소가 갖춰줘야 한다는데,

첫째, 지중해산 라스카스(Rascasse:전갈 물고기)가 들어가야 하고,

둘째, 신선한 해산물,

셋째, 프로방스의 올리브 오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향료 '샤프란(Saffron)'이 들어가야지만 제대로 만든 부야베스로 친다고 한다.


가장 비싼 향신료 샤프란이 들어가야 한다고?

아마도 후대에 와서 부야베스의 격을 높이기 위해 첨가된 조건이 아닌가 싶다.

전통 부야베스

큰 프라이팬에 커다란 생선이 통째로 담겨 나온 부야베스는 웨이터가 정성스레 생선 살을 발라 준 덕에 먹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드디어 마르세유 부야베스를 먹었다며 흡족해하던 나에게 친구는 조그만 인형 하나를 손에 쥐어 주며

'어때?' 한다.

부야베스만큼 마르세유, 아니 프로방스를 대표하는 인형이라면서.

쌍통 '기뻐하는 남자'

'그런 게 있어?'

'프로방스 라벤더는 알아도 이런 인형은 처음인데?'

양손을 벌리고 마치 환영하는 듯한 모습을 한 작지만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형이다.


친구가 보여준 인형은 손안에 쏙 들어오는 앙증맞은 크기에도 디테일을 잘 살린 프로방스의 전통 수공예 점토 인형 '쌍통(Santon)'이었다.


식당 근처에 마르세이유에서 가장 유명한 가게가 있으니 구경하러 가잔다.

'에스코피에(escoffier)'라는 집안이 대대로 운영하는 가게로 이름도 'Santons Escoffier'다.


가게 안에 들어서니 진열된 다양한 인형들로 마치 소인국에 온 것 같다.

'Santons Escoffier' 가게 진열장의 크레쉬

'쌍통(Santon)'은 '작은 성인(Little Saint)'이란 뜻으로 프로방스 방언인 '싼토운(Santoun)'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프로방스 지역의 붉은 진흙으로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채색하여 만든 지역 특산으로 프로방스에서도 점토 공예가 뛰어난 '오바뉴(aubagne)'지역이 유명 산지로 뽑힌다.


쌍통의 크기는 대체로 10cm를 넘기지 않는다.

가장 작게 1-3cm부터 최대 10cm 크기로 만든다.

드물게 20cm에 이르는 큰 쌍통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일일이 수작업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만드는 이(Santonniers)'의 창의성과 상상력이 높이 평가되며 각각의 쌍통에는 만든 곳의 사인이 새겨진다.

겨울이면 장관을 이루는 프랑스와 유럽 전역의 수많은 크리스마스 마켓의 인기 있는 단골 성탄 장식이다.

쌍통 진열장(위키미디어)

그런데 이 미니어처 인형의 시작은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 대혁명이었단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교회는 폐쇄되고 공공장소의 대규모 성탄극도 금지되자 프로방스 사람들은 집안에 간직할 수 있는 작은 크기의 성탄 인형을 만들기 시작하였고 'Crèche'(크레쉬)'를 비롯 조그만 성탄 인형들을 소장하는 것이 종교 생활의 한 부분이 되었다.

쌍통 크레쉬(위키미디어)

쌍통 성탄 장식의 핵심인 '크레쉬'는 '아기 예수 탄생 장면(Nativity Scene)'으로 예수 구유(crib)와 아기 예수, 마리아, 요셉 등이 있는 성탄 장식을 총칭한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뮤지엄에 매년 세워지는 크리스마스트리의 장식도 바로 이 '크레쉬'다.

sorj6.jpg 뉴욕 메트로폴리탄의 크레쉬 크리스마스트리(위)와 안내문(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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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성탄절의 장식으로 구유에 있는 아기 예수님과 성가족을 만드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마구간 구유에 누은 아기 예수와 성가족등을 최초로 재현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San Francesco d'Assisi :1181~1226)' 성인이었다.

그는 1223년 성탄절 이브에 동굴 안에 최초의 예수 구유를 인형이 아닌 실제 살아있는 소와 나귀, 마구간으로 재현했다고 전해진다.


그 후 '크레쉬'제작에 금박을 입힌 나무나 유리등을 사용하여 부유층을 겨냥한 고급 사치품으로 만들어지다 18세기 후반에 와서 진흙을 사용한 오늘의 마르세유 쌍통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구유는 프로방스 쌍통 크리스마스 장식의 중심이 되고, 서민들의 삶 속에 자리 잡으면서 이런 성경 장면 속에 성가족이나 동방 박사 외에도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이들이 주인공이 되도록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추가로 구성하다 보니 인형의 종류도 많아지게 되었다.

바로 이 점이 다른 성탄 장식과 쌍통이 차별되는 점이다.


쌍통 샵에 '크레쉬'의 아기 예수, 마리아, 요셉 외에도 빵집 주인, 어부, 꽃 파는 여인, 양치기, 프로방스 전통 의상을 입은 마을 주민 등 프로방스 마을의 일상적인 인물들이 많이 제작되어 있는 이유다.


19세기 초부터 매년 11월 중순부터 크리스마스까지 마르세유, 엑상프로방스 등 프로방스 주요 도시에는 쌍통 시장이 열리고, 수많은 장인(Santonniers)들이 각기 다른 표정과 정교한 디테일의 인형을 선보이는 프로방스의 중요한 겨울 문화유산이라는 자부심 넘치는 가게 주인의 설명이다.


다양한 인형들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선택을 망설이는 손님에게 주인장은 자신이 골라 주면 어떻겠냐고 한다.

sorj7.jpg '바르투미외'와 '마늘 파는 여인' 쌍통

그는 '바르투미외(Bartoumieu)'라는 남자 인형과 시장에서 '마늘 파는 여인(Femme a l'ail)' 인형을 골라 주었다.

남자 인형은 멜빵이 하나밖에 없는 허름한 바지를 입고 있으나 말린 대구와 음식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들고 유쾌함을 주는 마음씨 따뜻한 인물로 만들어졌다는 설명이다.

멜빵이 하나인 것은 가난을 뜻하지만 그의 얼굴 표정은 푸근한 시골 농부의 인자한 분위기를 전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여자 인형은 시장에서 마늘 파는 여인으로 머리에는 전통 레이스 모자인 '코피아(cofia)'를 쓰고 있으며 주황색 긴 드레스가 남자 인형의 모자 색과 잘 어울린다며 골라 주었다.


프로방스의 성탄 장식은 각 가정마다 특색 있는 구유로 장식할 수 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크레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쌍통의 큰 장점이다.


이들의 니즈에 맞추어 전통적인 다양한 인형과 집 모양을 제작하고 있다는 주인장의 설명을 들으며 그들의 상상력 또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며 계산을 하는데 친구가 아까 나에게 보여준 인형을 꺼낸다.


'Voilà~'

인형을 보자 주인장은 감탄사를 연발한다.

아주 훌륭한 선택이라면서.

친구가 가지고 있는 인형은 'Homme Ravi(기뻐하는 남자)'라는 인형으로 행운을 가져다주는 쌍통을 대표하는 인형이란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자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순수한 인간을 표현한 것이라고.


'내게도 진작 알려주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장 프로방스 다운 인형을 고른 것이라는 주인장의 선택을 믿기로 했다.


친구 덕에 부야베스 말고 프로방스의 전통 크리스마스 장식인 쌍통을 알았으니 다음 크리스마켓에서는 나도 '기뻐하는 남자'를 만나기를 기대해 본다.


벌써 기다려지는 크리스마켓이다.

다양한 쌍통들(위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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