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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el Bleu Jan 05. 2018

파리에 사는 '자유의 여신' 세 자매

네가 거기서 왜 나와?


파리에 사는 '자유의 여신' 세 자매


뉴욕과 파리의 돈독한 우정


파리에도 뉴욕처럼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는 사실은 아마 꽤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센 강의 유명한 유람선 ‘바토무슈(Bateaux-Mouches)’를 타고 가면서 저만치 에펠의 환상적인 자태를 열심히 사진에 담다 보면 또 하나 깜짝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파리에 남은 ‘자유의 여신상'이다. 파리 한복판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보다니, 여기가 뉴욕도 아닌데 어찌 된 일일까? 처음엔 다 그렇게 궁금하다.  '자유의 여신상'이 인기가 있구나 하고 그냥 지나치는 이도, 왜 그 여인이 거기에 서 있는 걸까 잠시 궁금하다가 금방 사진 찍는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는 사람 등 그 반응은 다양하다.  순간이라도 알아보고 싶은 맘은 누구나 들겠지만 다만 그것을 알아내는 과정이 간단치 않으니 누가 좀 더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냐 하는 정도의 차이 일터... 


그래서 알아보았더니 사연인즉 이랬다. 

프랑스 정부는 미국의 독립 100주년을 축하하는 뜻으로 조각가 바르톨디(Bartholdi)가 만든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을 뉴욕에 기증했다. 

그게 1886년의 일이다.

그 뒤로 3년이 지난 1889년, 이번에는 프랑스에 살던 미국인들이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뜻으로 뉴욕의 여신상과 똑같이 생긴 '자유의 여신상'을 기증했다. 단, 크기는 뉴욕 여신의 4분의 1쯤으로 11.5미터의 크기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파리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자유의 여신상'으로, 그르넬르 다리(Pont de Grenelle) 옆 ‘백조의 섬(Île aux Cygnes)’에 있는 바로 그 여신상이다. 이것이 파리에서 가장 쉽게 눈에 띄는 파리의 첫 번째 '자유의 여신상'이다.


              그르넬르 다리 옆 백조의 섬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좌)과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우):(위키미디어)



이 여신상을 처음 세울 적에는 여신이 엘리제 궁을 바라봐야 한다고 해서 에펠 탑과 마주 보게 세웠었다고 한다. 그러다 바르톨디가 죽기 전에 파리의 여신상과 뉴욕의 여신상이 서로 바라보도록 세워 달라고 유언을 해 지금과 같이 에펠을 등지고 대서양을 바라보며 서 있게 되었다고 한다.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맏언니는 높이 46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이 여신상을 만드는 데는 에펠 탑을 지은 구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도 기술을 보탰다고 하니, 위대한 작품은 쉽게 탄생하는 것이 아니지 싶다.


파리시 17구 샤젤 거리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만들고 있는 모습과 1886년 뉴욕 하버에 세워지는 '자유의 여신상'(위키미디어)


이 거대한 여신상은 1884년에 완성되었고, 이듬해에 350여 개로 쪼개져 뉴욕에 도착했다. 그리고 미국 독립 100주년이 되는 해보다 10년이 늦은 1886년 10월에 뉴욕 하버에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또 다른 자매님들은 어디에?


두 번째 여신상은 파리에 있는 정원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인기 있는 ‘뤽상부르 정원(Jardin du Luxembourg)’에 있었다. 이 역시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고자 만든 것인데, 1900년에 프랑스 상원(Le Sénat) 의회가 여신상을 사서 뤽상부르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가 바르톨디 부인의 요구에 따라 1906년부터 이 공원에 전시했다. 높이는 2.74미터로, 다른 여신상과 비교해 한참 작은 편이다. 그래서 정원을 거닐며 눈여겨 찾지 않으면 쉽게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 여신상은 이제 이 공원에 없다. 

2012년에 오르세 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오르세 측에서는 상당히 오랜 기간 이 동상을 오르세로 가져오려고 애썼으나, 뤽상부르에 자리 잡고 있는 상원에서 이를 허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여신상이 들고 있던 횃불을 도난당하는 등 관리상의 문제가 불거지자 2011년에 상원이 오르세의 제안을 받아들여, 2012년에 보금자리를 옮긴 것이다.


                              뤽상부르 정원에 있다(좌:위키미디어)가 오르세 입구로 옮겨온 '자유의 여신상'(우)


세 번째 여신상은 파리 3구에 있는 ‘기술공예 박물관(Musée des Arts et Métiers)’ 입구에 전시되어 있다. 이 여신상은 1904년 바르톨디가 사망한 뒤, 1907년에 그의 부인이 바르톨디가 뉴욕에 기증한 여신상을 만들 때 최초로 반죽한 석고 반죽(Plaster, 1878년)을 기증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기술공예 박물관 입구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위키미디어)

기술공예 박물관의 여신상은 높이 2.86미터로, 오르세에 있는 여신상과 비슷한 크기다. 이로써 파리에는 자유의 여신 세 자매가 있는 셈이다.


파리에 이 같은 여신상들이 있는 줄 몰랐을 때, 부키니스트(https://brunch.co.kr/@cielbleu/11참조)나 책방에서 파리 시내를 배경으로 그려진 '자유의 여신상' 그림을 보고 의아해했던 적이 있다. 뉴욕에 있어야 할 여신상이 파리 시내 건물들 사이에 떡하니 그려진 것을 보고 합성 그림인가 하는 의심까지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실감케 했던 파리의 세 자매 들이었다.




콜마르(Colmar)에서 만난 '자유의 여신상'


콜마르 입구의 '자유의 여신상'(위키미디어)

콜마르는 알자스(Alsace) 지방의 주도인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 알자스의 또 하나의 동화 같은 도시다. 이 아름다운 마을 입구에서 우리는 전혀 예상치 않은 ‘자유의 여신상’을 만나게 된다. 조금은 생뚱맞기까지 했던 콜마르의 여신상을 보며 파리 시내에서도 여기저기(3곳)에서 볼 수 있으니 아마 프랑스인들은 이 여신상을 좋아하나 보다 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왜냐하면, ‘콜마르’의 ‘자유의 여신상’은 특별한 이유로 콜마르 입구에 서 있기 때문이다. ‘콜마르’는 ‘자유의 여신상’을 만든 조각가 바르톨디(Bartholdi)의 고향이다.






‘자유의 불꽃’과 다이애나


다이애나 사진이 붙어 있는 알마 다리위의 '자유의 불꽃'

파리 시내 알마 다리(Pont de l’Alma) 옆 터널 위에 뉴욕 '자유의 여신상'이 들고 있는 것과 같은 크기의 횃불 조각상(Flame of Liberty)이 있다. 그런데 이 횃불은 '자유의 여신상'과의 관계보다 영국의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더 유명하다. 바로 이 조각상 밑으로 지나가는 터널에서 다이애나가 유명을 달리한 뒤로, 이 조각상을 다이애나의 추모비로 여기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이 횃불은 다이애나의 죽음과는 아무 상관없는 조형물이다. 1989년에 파리의 일간 신문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nternational Herald Tribune)>이 파리에서 영자신문을 발간한 지 100주년 되는 해를 기념하고자 조각상을 제작해 파리 시에 기증한 것이다. 그런데 1997년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사고 뒤로, 본래 취지보다 그녀를 추모하는 의미가 더 두드러지고 있다. 안타까운 죽음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동경에서 만나는 자유의 여신상

Odaiba  '자유의 여신상'(위키미디어)

'자유의 여신상'은 일본 동경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일본과 프랑스의 돈독한 관계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임시로 세워놓으려 했으나 워낙 인기가 좋아 2000년에 영구히 세워 놓기로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음 글은 <2. 명작 속의 바로 그 장소, 그랑자트 섬을 거닐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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