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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el Bleu Jan 10. 2018

명작 속의 바로 그 장소,
그랑자트 섬을 거닐다


거장의 작품 속을 거닐었네



조르주 쇠라,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A Sunday Afternoon on the Island of La Grande Jatte,1884)>, 시카고 현대 미술관


동명의 타이틀을 건 연극 작품도 있어 꽤 친근한 이 작품은 내가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인데, 그림의 배경이 된 그랑자트 섬이 집에서 멀지 않음을 알고 나는 가벼운 흥분에 빠졌다. 마음은 바빴지만 나는 일요일을 기다리기로 했다. 이왕이면 그림 속 분위기를 그대로 느껴 보고 싶은 작은 욕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100여 년의 시간차를 간과한 나의 착각이란 걸 곧 깨닫게 되었지만. 강산이 10번도 더 변할 시간차를 난 한치의 의심도 없이 굳게 믿었으니 그것은 파리가 뿜어내는 묘한 시간 불변의 법칙에 나도 걸려든 셈이었다. 중세와 현재가 공존하는 세계 최대의 도시 파리에서는 누구나 한 번쯤 걸릴 수 있는 증세이니 그저 웃어넘길 수밖에..


그랑자트 섬까지는 에투알 개선문에서 차로 20분쯤 걸린다. 파리의 교통 체증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나 차를 타나 걸리는 시간은 거의 대동소이하다. 위대한 작품이 탄생한 현장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다니 정말 이 도시는 캐도 캐도 끝없이 쏟아지는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나를 늘 바쁘게 만든다. 그러나 전혀 불만은 없다.


사진 가운데 섬이 그랑자트 섬이다.(위키미디어)


그랑자트 섬은 길이 2킬로미터, 폭 200미터로 기다란 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림의 배경이 된 곳은 섬의 중간쯤에 있는 다리 위쪽에 있었다. 마침 내가 찾아간 날이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이어서 섬의 정취는 그림 속 풍경보다 더 아름다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섬에서 ‘쇠라’라는 이름을 본 순간의 감동은 마치 내가 그의 그림 속의 인물이 된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 했다.


쇠라는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1884년부터 1886년까지 약 2년에 걸쳐 완성했다고 한다. 긴 세월이 흐른 만큼 그림 속 풍경과 지금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너무나 달라진 모습에 솔직히 쇠라가 이 작품을 그린 곳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없었더라면 그곳이 어디인지 못 찾았을 수도 있다. 허기야 100여 년의 세월의 흐름을 간과하고 그림 속 경치를 상상한 내가 무리였다. 표지판의 도움으로 그 장소를 찾았을 때, 나는 쇠라와 함께 같은 장소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 감동받고 만족하기로 했다.


                                                                만추의 그랑자트 섬


                                                    쇠라가 그림 그린 곳을 알려 주는 안내판


그림 속 그랑자트 섬의 현재 모습(위키미디어)



파리 여행의 특별함은 늘 나 자신을 당시 상황으로 빠져 들게 한다는 것이다. 몽마르트 뮤지엄에서도 같은 느낌(https://brunch.co.kr/@cielbleu/29 참조)을 받았었는데 이 곳에서도 마치 쇠라가 이젤을 들고 어디선가 걸어오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으니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나는 오로지 쇠라 한 사람만 생각하며 이 섬을 찾아갔는데 그곳에는 뜻하지 않은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19세기 파리 소시민의 휴식처로 사랑받던 그랑자트 섬에는 쇠라뿐 아니라 모네, 시슬리, 고흐 등 여러 가난한 예술가들이 찾아왔던 단골 장소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랑자트 섬 안내판에 쓰인 대가들의 이름

대가들의 이름이 적힌 안내 표지판을 보면서 섬을 한 바퀴 돌면서 그들이 섰던 자리에 서보니 마음이 부자가 된 듯하다. 그 사이 어느덧 짧은 가을 해는 저물고 있었다.








그림에 담긴 인고의 시간을 보다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가 유명한 이유는 무엇보다 쇠라가 선보인 점묘법(Pointillism) 때문이다. 쇠라는 인상파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화가로 평가되는데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그가 1886년 마지막 인상파 전에 출품한 작품이다. 당시 그가 선보인 점묘법은 전에 없던 새로운 기법으로, 폴 시냑( Paul Signac:1863-1935)과 함께 현대 미술의 이정표를 찍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1859~1891)

그런데 당시로써는 획기적이었던 그 기법도 흥미롭지만, 그림이 담고 있는 내용은 더욱 재미있다.

1800년대 그랑자트 섬은 서민들의 휴식처로 귀족이나 부유층 사람들은 이곳에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림 속에는 마치 귀부인처럼 말쑥하게 차려입은 여인들이 보인다. 사실 이들은 정숙한 귀부인이 아니라 창녀들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오른쪽 맨 앞에 선 여인 앞에는 원숭이가 있는데, 바로 이 원숭이가 창녀를 상징한다고 한다. 얼핏 보기에는 한가한 일요일 오후의 여유와 평화로움이 가득한 그림이지만, 그 속에는 고된 삶이 녹아 있었다.






쇠라는 다른 가난한 예술가들처럼 파리 시내의 클리시(Blvd de Clichy)라는 곳(https://brunch.co.kr/@cielbleu/28 참조)에서 가족들 몰래 연인 마들렌과 동거를 했다.

 

조르주 쇠라, <분을 바르는 여인(Jeune Femme sePoudrant, 1890)>. 연인 마들렌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는 쇠라의 모델일을 하던 여인으로 쇠라의 가족들이 환영할리 없었다. 항상 그렇듯 축복받지 못한 연인들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쇠라는 원인 모를 병에 걸렸는데, 병명을 알기도 전에 갑자기 사망했다. 그의 나이 31세였다. 그의 불행은 아들에게도 전해져 쇠라가 숨을 거둔 뒤 2주 후 어린 아들도 같은 증세로 사망했다. 또한 명의 천재가 채 피기도 전에 이렇게 요절하는 불행이 예외 없이 쇠라에게서도 일어났다.

오늘날 우리가 오르세 미술관에서 감상하는 쇠라의 <서커스>는 미완인 채로 남겨진 그의 유작이 되고 말았다.





조르주 쇠라, <서커스(Le Cirque, 1891)>,오르세


더러는 쇠라의 점묘법을 대단하게 평가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데, 다른 건 몰라도 작품을 위한 그의 노력과 인고의 시간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가 이 그림에 찍은 점의 개수가 요즘 내로라하는 디지털카메라의 픽셀 수보다 많다고 하니, 정말이지 보통 노력과 끈기로는 해내지 못할 위업이 아니었나 싶다.


그랑자트 섬을 한 바퀴 돌고 나오는 입구에 음식 맛이 꽤 괜찮은 레스토랑이 있다. 전에도 언급한 '르 프티 푸세'다. (https://brunch.co.kr/@cielbleu/6 참조) 피곤한 몸도 쉬어 갈 겸 소박하면서도 입맛에 맞는 그들의 음식은 그 후로도 몇 차례 더 나를 이 곳으로 오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나름대로 인상파 화가들과 같은 장소에서 하루를 즐기며 파리 시내에서 가볍게 다녀오기에 썩 괜찮았던 그랑자트 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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