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32. 그늘진 야외수영장이 있는 더운 나라
제가 원하는 여행은 거의 언제나 그늘이 있는 야외수영장을 구비한 휴양지입니다. 거기서 손발이 쪼글쪼글하도록 수영하고, 책을 읽다 잠이 들고, 먹고, 또 수영하고요. 저녁에는 멋진 선셋을 보고, 해변에서 하는 공연을 구경하는 거지요. 현지 춤은 꼭 배워야 하고요. 가까운 동남아도 좋고 지중해나 카리브해 쪽도 좋습니다. 제일 예쁜 건 태평양이나 인도양의 섬들이겠고요.
물론 실제 엉덩이를 들고 여행을 떠나는 건 다른 얘기입니다. 여행지를 검색하다가도 자꾸 마음이 주저앉습니다. 계획을 짜고(적어도 숙소의 위치를 정하고), 짐을 싸고, 비행기를 타고, 짐을 풀고, 덥고, 눈이 부시고, 일상을 다시 세팅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생각하노라면, 에이 뭐 집이 제일 좋지 하고 결론이 납니다.
여행을 가고 싶은 나와,
여행을 진짜로 가는 나 사이에는
미묘하면서도 거대한 간극이 있습니다.
그 두 가지 사이에는 멋지고 싶은 나의 마음과, 실제 멋져지기 위한 심신단련만큼이나 넓은 골짜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막연한 이미지이고, 다른 하나는 꿈틀거리는 오징어만큼이나 살아있는 것이지요.
여행이든 일이든 사랑이든 미루다 보면, 인생은 차곡차곡 흘러가고, ‘나도 갈려면 갈 수 있었다’는 쭈글한 변명만 남겠죠. 미래의 나와 약속해 버린 셈 치고, 무조건 떠나야겠습니다. 그러면 오징어가 됐든 낙지가 됐든 살아 꿈틀거리는 여행을 만나고, 떠올리면 한번 이상은 피식 웃을 수 있는 그런 기억이 남을 테니까요.
나의 글쓰기가 나 지신을 바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