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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1. 요즘 내가 애정하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A31. 나의 애정은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by Jee

지금 살고 있는 이 도시, 이 아파트에는 아직 제가 애정하는 공간에 없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제가 머무는 공간들을 떠올리며 애정이 솟아나는지 아닌지 지켜봤어요. 좋은 공간들이긴 한데, 애정이 솟아나진 않더군요. 애정이 생기기엔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나 봐요.

그래서랄까, ‘요즘의’ 제가 애정하는 공간은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어릴 때 살던 부산집의 주방이기도 하고, 해지는 낙동강이 보이는 옥상이기도 하고, 부산시립미술관의 야외조각공원기도 합니다. 조금 더 가까이는 대학로의 낙산공원에서 내려다보는 성곽의 구불구불함과 창경궁의 소박한 안뜰이기도 합니다. 튀니지의 올리브 나무 구릉지대와 투명한 바다이기도 하고, 정삼각형으로 미끈하게 빠진(그래서 오르는 내내 미끄러지는) 엘살바도르의 젊은 화산이기도 합니다.

한몇 년은 그 속에 머물고, 바라보고, 그 속에서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했던 기억을 품고 있는 공간이라야 비로소 애정이라는 게 생깁니다. 적어도 저는 그래요. 그런 시간과 모순을 품고 있지 않은 공간은 그저 와우하고 지나쳐가는, 유명 연예인 같은 존재입니다. ‘와우’ 할 수는 있어도 볼을 부비며 ‘애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 질문도 제가 너무 멀리 나간 것 같군요. 아마 ‘요즘 새로 생긴 나만의 서재를 애정합니다.’ 같은 답변을 기대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는 지금의 제 서재를 좋아합니다. 저와 서재는 서로 맞추어 나가며 잘 지내고 있어요. 아침 햇살이 너무 강렬해서 암막 커튼을 달아주었고, 커다란 화이트보드도 배치했고요. 늘어가는 책들이 책상을 침범하고 있는 것만 빼면 훌륭한 공간입니다. 물론 짐작하시겠지만, 이 훌륭한 서재는 아직 저의 절친이 될 만큼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네요. 언젠간 친해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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