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29. 매일 매 순간을 원하고 있습니다.
좀 재수 없게 들릴지 몰라도, 요즘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일들을 해야 하는 날”이 없습니다. 내 인생은 내 선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뭔가 기깔나게 멋있는 일을 하는 건 아닙니다. 제 삶은 젠슨 황도 아니고 스티브 잡스도 아니고 아리아나 그란데도 아니죠. 하지만 제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평범한 일들이지만, 그 모두를 제가 원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희한합니다. 매 순간순간을 내가 원하고 있다는 그 감각은요.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회사 가고, 글을 쓰고, 남편과 고양이와 오붓한 저녁을 보내고. 그뿐이지만, 그 일상을 속속들이 원하고 있습니다. 아마, 사랑에 빠졌을 때 느끼는 그 감각인지도 몰라요. 지금은 내 삶과 사랑에 빠져 있는 거죠.
예전엔 왜 그렇게 일에 몰두했었는지, 과대하게 존재감이 부푼 일도 원망하고, 일상 전체도 시름시름했어요. 왜 그랬을까, 요즘은 왜 다를까 하다 최근에 깨달았어요. 예전엔 생각하기 기능을 일할 때만 사용했었다는 걸요.
“생각해서 바꿀 수 있으면 생각하고, 아니면 생각을 멈춘다.”를 철칙으로 삼고 살아왔습니다. 다행히도 그게 잘 먹혔어요. 마음이 답 없는 고뇌에 묶이는 건 방지할 수 있었죠. 문제는, 저는 저라는 사람, 제 미래는 ‘생각으로 바꿀 수 없다’. 그냥 살아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일할 때만 생각했고, 나머지 시간에는 멍청한 채로 지냈죠. 주로 웹툰을 봤어요.
재작년 겨울, 나 자신이 무엇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할지 선택할 수 있고, 그것으로 내 미래도 선택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 머리를 딱 쳤죠. 뭔가 다른 삶을 바랐던 절실함과 1년이 넘는 내면소통 글쓰기를 통해 그 깨달음이 욌습니다.
“생각하면 나 자신도, 미래도 바꿀 수 있다.”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려갈기듯 딱! 소리 나게 내린 깨달음. 그러고 나니, 잠금 되어 있던 감각과 느낌들이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것이지만 나만의 것인 내 경험, 내 느낌, 내 마음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일상의 모든 것을 선택하고 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동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나만을 위한 하루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보내고 싶나요?”라는 질문은 그래서 제게 이렇게 읽힙니다.
“오늘 무엇을 하고 싶나요?”
매일매일이 나만을 위한 하루니까요. 나의 다양한 선택과 욕구가 하루를 채울 겁니다. 이렇게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어제를 돌아보겠지요. 책을 보고 고양이에게 치근덕거리겠지요. 밥을 먹고 런지를 하고 산책을 하겠지요. 저녁엔 맥주가 마시고 싶은 날도 있고, 팥빙수를 먹고 싶은 날도 있고, 족발을 먹고 싶은 날과 굶고 싶은 날이 있겠지요. 그리고 9시가 좀 넘으면 잠자리에 듭니다. 나만의 하루가 너무 재미없는 거 아닌가 싶어 다시 읽어보지만, 별 수 없네요. 좋아서 이렇게 살고 있으니까요.
글쓰기가 나 자신과 세상을 바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