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43. 안정적인 발걸음을 가진 그
제 남동생을 소환합니다. 삼 남매의 막내 동생인데 위의 누나 두 명을 웃도는 믿음직한 녀석입니다.
아주 어릴 때 3살 터울의 나, 여동생, 남동생이 앞뒤로 나란히 찍은 사진이 있는데, 머리가 겹겹이 쌓여서 귀엽기 그지없어요. 막내가 어디 가서 맞고 오면 강단 있는 여동생이 가서 “누구야 내 동생 때린 게!” 하고 혼쭐을 내주고 왔었지요. 막내는 어릴 땐 편도선이 곧잘 붓는 나약한 녀석이었는데, 자라면서 튼튼해지더니 아프로캔이 되었습니다.
남동생은 중학교 때부터 기숙학교에 살았고, 대학도 다른 도시로 가면서 어린 시절을 떨어져 보냈지요. 그래도 명절 때 가끔 만나 저랑 여동생이 양쪽에서 팔짱을 끼면 팔이 직각이 되어 걸기 쉽게 배려해 주었어요.
미국에서 회사를 다니다가, 아빠가 아프실 때 접고 돌아와 큰일이 있을 때마다 솔선수범해서 부모님을 챙기고, 요즘도 아침저녁으로 엄마와 영상통화를 하는 살뜰한 녀석, 때론 로봇 같고 때론 군인 같은 녀석.
어릴 때부터 컴퓨터만 하고 IT업체에 들어가서 밤낮없이 살길래 결혼도 못하면 어쩌나 했는데, 현명한 여자를 만나 결혼도 하고 작년에는 아빠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통화를 하다 보니, 말투가 부장님이 다 되어 있더군요. 제가 해외 다녀온 3년 사이 남동생은 아빠이자 부장님이 되어 있어서 한참을 깔깔.
내가 생각하는 가장 믿음직한 사람이 남동생인 이유는 단지 가족이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녀석은 제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합리적인 반응을 하거든요.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감정에 휩싸이기보다는 알고리즘을 가동합니다. 할 수 있는 것과 알고 있는 것, 그리고 그 너머를 확실히 구분합니다. 사회성은 좀 부족했지만(이제는 사회성도 레벨업 됐더군요) 사람의 감정에 대해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를 수 있는 것을 사려 깊게 사전점검합니다.
남동생은 느리지도 않고 서두르지도 않고, 포기하지도 않고 과하게 희망을 품지도 않는 것 같아요. 그런 안정적인 발걸음이 좋습니다. 그래서 참 믿음직합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쓰고 보니,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인데 책임감까지 있어서 더 믿음이 가나 싶기도 하네요. 혈연에 이끌린 점을 시인합니다. 그래도 제 원 픽은 그 녀석! 계속 행복하기를 마음속 깊이 기도합니다. 더 잘해줘야겠어요.
글쓰기가 나와 세상을 바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