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52. 그녀는 내 감각을 일깨웠습니다.
가장 큰 영향이었냐고 하면 ‘글쎄요’ 하지만, 큰 영향을 준 친구가 있습니다. 저를 감각의 세계로 이끌었달까요?
때는 바야흐로 10년 전, 튀니지에서 하얀 천장과 실링팬을 바라보며 1년여를 멍 때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나름의 번아웃에서 회복되기 위해 필요한 무위의 시간. “운동 - 일 - 멍”의 3박자에 저를 맡기고 하루하루 늘어져 있었지요. 틱톡택.
그때까지 “뭘 먹고 싶다! 맛있겠다!” 하는 박력이 부족했어요. 튀니지에서는 한국음식을 사 먹을 수 없으니 밥에 후리카게를 뿌리고 참치와 고추장을 얹어 먹곤 했습니다(여전히 그 조합은 맛있지만요). 전혀 불만이 없었어요. 입맛도 없었고요. 금욕주의자 시절입니다.
그 친구와 저는 바닷가 근처에 살았는데, 가끔 퇴근길에 시간이 맞으면 밥을 같이 먹곤 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해운대 같은 곳에 살았는데, 시장에는 양꼬치나 에그인헬, 샤와르마(케밥과 비슷) 포장마차가 즐비했습니다. 광장시장 느낌이랄까요. 불이 환하고, 냄새가 기가 막히고, 모락모락 김이 나고… 쓰다 보니 군침이 도네요.
아무튼 그 친구와 몇 번 시장에서 밥을 먹다 보니, 식사를 즐기는 그 친구만의 방법을 따라 하게 되더라고요. 일단 눈으로 음식점의 분위기나 음식의 색깔을 보고 그것에 대해 감탄하며 얘기합니다
“우와 여기 분위기 진짜 맛집 분위기다~”
”우와 에그인헬(현지말로는 오짜) 색깔이 어쩜 이렇게 프레시한 빨간색이야-“
그리고 냄새를 한껏 들이마시며 입맛을 다셔줍니다. 따뜻한 온기도 느껴줍니다. 기름의 번들번들함도 한번 쳐다봐주고, 음료수에서 올라오는 기포도 눈여겨봐요. 그리고 중요한 건, 그걸 일일이 칭찬을 해줍니다. 하하 바쁘겠죠? 말하다 보면 점점 텐션이 올라갑니다.
이제 진짜 음식을 입안으로 집어넣고 맛을 보면, 방금 얘기한 그 감각들이 입안에서 만나 상승작용을 일으킵니다. 달콤함 냄새가 달콤하고 새콤한 맛으로 혀와 만나고, 뜨거운 감각이 입안을 달굽니다. 프레쉬한 토마토의 산미가 새삼스럽게 자기주장을 하고, 사이다가 톡 쏘며 입안을 헹궈줍니다.
그렇게 복합적이고 적극적으로 먹으니, 맛에 대해 모르고 살았던 내가 반푼이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먹는 걸 귀찮아하며 영양소만 채우던 나날들이 한심하더군요. 그 친구 덕분입니다. 저에게 신세계를 보여준 그 친구,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요? 궁금하네요. 한번 보고 싶어요.
글쓰기가 나와 세상을 바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