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53. 석양을 보면 슬프다는 그녀에게.
글쓰기 덕분에 오랜만에 대학 선배 언니에게 안부 연락을 했습니다. 창업한 이후로 내내 바쁜 언니와 무심한 저는 좀처럼 연락을 이어가지 못했어요. 공유하는 시간이 줄어들다 보니 어느덧 서로의 일상과 생각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아지고, 그 무지의 중력이 또 연락을 씹어먹었습니다.
같이 책을 읽고, 데모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산책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심리검사를 하고, 편지를 썼습니다. 굉장히 소녀스럽다고 아니할 수 없네요. (소녀들의 데모) 언니는 제가 했던 이야기, 편지에 썼던 구절을 기억했다가 어느 날 문득 “근데 네가 그랬었잖아..”하고 얘기하곤 했습니다. 정작 저는 깡그리 잊었는데요. 언니는 기본적으로 애정이 가득한 사람이라, 사람들의 말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요.
까마귀 삶아 먹은 제가 기억하는 언니의 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석양을 보면 언젠가 죽는다는 것이 너무나 슬퍼진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진다는 거야. “
석양은 이해가 가지 않아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제게 석양은 지구가 태양이 없는 쪽으로 회전하는 일일 뿐이라서, 석양이 주는 감성을 이해 못 합니다.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런 서글픈 감정을 자주 느껴야 하다니.. 하고 문득문득 안타까워합니다.
책임에 대한 이야기는 살면서 몇 번이나 저를 가이드해 준 말이라 기억합니다. 스스로 결정하지 않고 되어가는 데로 맡겨놓았음을 (그러면서 불행해하고 있음을) 깨달을 때, 선택할 때 느껴지는 두려움을 책임지겠다는 결심으로 잠재울 때 (죽기밖에 더하겠어?), 우리 모두 어른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아직 많이 아이 같다는 것을 느낄 때, 언니의 말을 떠올립니다. 결정을 망설이는 제게 용기를 줘요.
진짜 오랜만에 언니에게 편지를 보내봐야겠어요. 언니는 요즘도 석양을 보면 슬퍼지나요? 얼마나 어른으로 살고 있나요? 궁금해집니다.
글쓰기가 나와 세상을 바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