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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e Jun 22. 2024

1억 년 전 꽃이 피기 시작했을 때

기후변화는 인간의 위기이자 생태계의 위기

요즘 한껏 게을러진 몸을 추스르려 아침 산책을 시작했습니다. 해가 일찍 뜨는 통에 6시 전에 집을 나서도 집에 돌아오는 7시쯤이면 태양이 번쩍이며 나뭇잎 사이를 뚫고 들어옵니다. 제가 사는 도시는 서해안의 간척지라 평평한 땅에 남북좌우 격자형으로 50개쯤 되는 아파트 단지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아파트들을 통과하여 크게 정사각형을 그리며 1시간을 산책하는데 조경이 훌륭해서 콧바람이 납니다. 나무 그늘 밑으로 들어가면 일단 시원하니까요. 러닝족들과 강아지 산책족들을 만나도 반갑고 매일 보는 꽃과 나무들의 변화도 반갑습니다.




지구 역사 : 1억 년 전 꽃이 피기 시작했다.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기 전에도 지구는 식물로 가득했습니다. 나무는 4억 년 전쯤에 등장했고, 시베리아 트랩 화산활동으로 페름기 대멸종이 있었습니다. 대멸종 위기를 딛고 공룡이 번성하고, 풀과 꽃 같은 초본식물이 1억 년 전에 등장했습니다. 그 후 한번 더 백악기 대멸종이 있었고, 공룡이 떠나간 자리에 포유류와 조류가 번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산책하면서 꽃을 바라보다, 꽃이 처음 지구에 등장한 1억 년 전을 가끔 상상해 보곤 합니다. 너무 당연하게 바라보는 꽃들이 겨우 1억 년 전에 등장했다는 것이 조금 신선합니다. 지구의 나이 46억 년을 감안하면 상당히 최근까지 지구에는 꽃이 피우는 식물들이 없었다는 게요. 바람에 샤라락 흔들리는 초원도 1억 년 이전에는 없었습니다. 씨를 숨겨놓은 속씨식물들은 새나 곤충의 도움을 받아 수분을 했습니다. 붕붕거리는 벌과 곤충도 훨씬 번성하는 1억 년 전의 들판, 벼와 밀도 이때 출현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자연환경이 만들어진 것이 비교적 최근이라는 게 실감이 납니다.


지구 역사 연대표

46억 년 전 지구 탄생

38억 년 전 생명 탄생

5억 년 전 캄브리아기 생명 대폭발

4억 년 전 나무 등장(겉씨식물-바람에 의해 수분), 양치식물 등장

2.5억 년 전 페름기 대멸종(시베리아 트랩 화산 수천년 동안 폭발) / 2억 년 전 쥐라기 대멸종

공룡 번성

1억 년 전 초본식물(풀, 꽃, 채소/벼, 밀 포함) (속씨식물, 곤충, 새, 바람에 의해 수분)

6천만 년 전 백악기 대멸종

포유류와 조류 번성

3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 등장

1만 년 전 농경시작 (빙하기 끝, 홀로세 시작)

태양계 수명 50억 년 남음




기후변화 : 인간의 위기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한 것은 30만 년 전, 농경을 시작하며 번성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온난한 기후가 지속된 1만 년 전부터입니다. 이때부터를 홀로세라고 합니다. 지구평균온도가 1도 이내에서 유지되는 안정적인 시기입니다. 200년 전부터 땅에 묻혀 있던 탄소를 꺼내 쓰기 시작하면서 그 1도의 범위(생명의 회랑)가 깨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2021년 애리조나 대학에서 한 연구에 따르면 2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 이후 지속적으로 지구평균온도가 상승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우리는 2만 년 동안 온난화를 경험하고 있다'라고 성급한 결론을 내릴지도 모르겠네요. 여기에다가, 더 큰 시간 스케일로 보자면 지구는 초기에는 수천도로 끓다가 한동안 꽁꽁 얼어 있었으며(눈덩이 지구), 주기적으로 빙하기와 간빙기를 경험했다고 덧붙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페름기 대멸종 때는 10도나 평균온도가 올랐고, 생물들의 90%가 멸종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기후변화를 말할 때는 이러한 자연적인, 최소 수만 년에 걸친 장기적인 기후의 변동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 빙하기 후 가파른 온도상승은 1만 년 전에 끝났고, 지금의 기온상승은 4억 년 전부터 묻혀 있던 탄소를 200년 만에 가열차게 꺼내 쓰는 인간의 활동 때문이니까요.




기후변화 : 생태계의 위기


기후변화는 지구의 위기가 아니라 인간의 위기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어쩌면 1억 년 전부터, 짧게는 수십만 년 동안 같이 살아온 풀과 꽃, 곤충, 포유류와 조류들이 그 피해를 같이 입겠지요. 그렇게 생각하니 기후변화에 대한 죄책감이 조금 더 심해집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가 '지구는 멸망하지 않아요, 인간이 멸종할 뿐이죠'라고 말할 때 저 또한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하지만 궤도가 간과하고 있거나 시간이 없어서 말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기후변화는 단지 인간에게만 선택적으로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후변화는 인간이 몸담고 살아가는 곳 - 이 특정한 생태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생태계의 위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태계에 극강의 민폐를 끼치고 있는 것이죠.


기후변화와 관련된 일을 생업으로 하면서도, 기후위기를 에너지와 생산-소비방식에만 초점을 맞추어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기후위기보다 먼저 감지된 생태계 위기를 '옛날이야기'라고 미루어 놓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야 1억 년 전 피기 시작한 꽃과 붕붕거리던 벌을 상상하면서, 그 생태계 안에 인류가 꽉 얽매여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글쓰기가 나와 세상을 바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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