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사고실험, 여섯 번째
예전에는 이슬람 국가들만 라마단을 지켰습니다. 라마단 기간은 대개 아주 더웠는데, 사람들은 낮에는 음식도 물도 먹지 않고, 덜 일했습니다. 해가 떨어지면 하루의 첫 물을 마시고 밤늦게까지 먹고, 친척집을 방문하고, 친구들과 시내에 나가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라마단이 생긴 종교적인 이유가 있었겠지만, 저는 아무래도 더워서 모두 다 다 같이 쉬자고 결정한 것 아니었을까 추측합니다. 낮에 먹지 않는 이유는, 누군가가 먹으려면 누군가가 낮에 일을 해야 하니까요. 4-50도를 넘나드는 더위에 요리를 하다가는 사람 잡겠다 싶지 않았을까요?
라마단이 국제적인 휴일 표준으로 자리 잡은 것은 여름철 이상고온이 일상이 되고 나서부터입니다. 어디는 45도까지 올라갔다더라, 어디는 잠깐이지만 50도를 넘었다더라 하는 국제면 기사가 종종 들리더니, 어느덧 한국도 여름철 기온이 40도를 넘는 일에는 더 이상 놀라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일하기를 멈추고 점점 더 긴 여름휴가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더운 한낮에는 북적거리는 피서지로 떠나는 것도 고역이 되었고, 잠잠히 집에서 피서를 하는 사람들도 늘어났습니다. 텅 빈 것 같은 도시의 가게들도 긴 휴가를 떠났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어요.
예전에는 여름휴가하면 좀 더 활동적인 느낌이 들었었어요. 푸르른 파도, 해변을 뛰어다니는 활력, 청량한 계곡 물소리... 건조하고 햇빛이 이글거리는 여름이 길어지자 여름휴가는 뭔가 고요한 것을 닮아갔어요. 동굴에 들어가서 숨을 죽이고 극한 날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동물처럼, 사람들은 숨죽이고 활동을 최소화하면서 여름의 한 낮이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다 밤이 되면 밖으로 나와 먹고 걸었어요. 도시는 밤에 깨어났습니다. 라마단처럼요.
어린 시절 바닷가 옆에 텐트를 쳐놓고 지내던 여름휴가가 그립습니다. 바다 위로 잔잔한 비가 내리면 수면이 얕은 곳에 걸어 들어가 비를 맞으며 수영을 했었습니다. 지금은 냉방이 되는 실내 수영장이나 대형 쇼핑몰이 아닌 진짜 자연을 즐기는 것이 꽤나 귀한, 그래서 사치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VR 고글을 끼고 메타버스에 구현된 관광지나 박물관을 구경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시절 흙냄새와 물소리가 그립긴 하네요.
20년 후 기후변화로 달라질 여름휴가 풍경을 상상하니, 문득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김기창)'이라는 소설이 떠오릅니다.
가장 좋은 것들은 날씨와 관련된 것들이었다고, 한낮의 햇살과 선선한 바람, 빛나던 윤슬, 그 곁에 사랑하는 사람의 온기, 그런 것들이었다고
기후변화로 나의 일상이, 여름휴가가 어떻게 바뀌게 될지,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상상하려고 합니다. 가장 좋은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상상하려고 합니다.
글쓰기가 나와 세상을 바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