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사고실험, 열세 번째
추석이 지나자 갑자기 공기기 선선해져서, 이제! 드디어!! 가을이 왔나 싶습니다. 멜로망스나 슬픈 락 발라드가 고파져, 헤드폰을 달고 듣습니다.
주말 오후인데, 그늘을 골라 다니면 산책하기 딱 좋을 것 같아서 나섰습니다. 사람들도 상쾌한 얼굴로 산책을 나왔네요. 큰 강아지, 작은 강아지, 모두 마음이 앞서 가고 따라가는 종종 다리가 너무 귀엽네요. 산책로 한켠 한여름을 견딘 비비추 잎이 누렇게 떴는데, 그래도 가을이 드디어 왔다, 휴, 하는 느낌이에요.
신도시의 메타 세콰이어들은 아직 청소년 느낌으로 야리야리하지만, 그래도 힘껏 하늘을 찌르며 발돋움을 합니다. 어린 느티나무가 바람에 살랑거리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플라타너스 잎이 바람에 뒤집어져 있네요.
가을이 되면 왜 노래가 더 좋게 들릴까요? 헤어진 연인의 마음이 너무 절절히 와닿고, 감성이 좋은 스피커처럼 파르르 떨립니다. 다들 그런가봐요. 강아지들도 더 친절해진 것 같습니다. 자꾸 다가와 인사하네요. 아이들은 뜀을 뛰고 여자들은 까르르 웃음을 터트립니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냐면요. 가을이 좋다는 거예요. 저는 가을이 좋습니다. 기분이 좋아요. 행복해져요. 풍부해지고, 너그러워집니다. 이번 여름은 지독히 더웠잖아요. 이러다가 모든 인류가 동굴이나 지하도시에서 살아야 되지 않을까 했는데, 가을이 오니까 그런 걱정은 싹 까먹습니다. 올 겨울 한파도 지독할 거라고, 가을이 오자마자 초치는 소리를 들었는데요, 어이구야 춥겠군 작년도 더럽게 추웠지, 하면서도 지금은 눈앞의 가을에 매혹되어 다른 생각은 안 들어요. 사랑에 빠진 것처럼요.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이라는 소설집에서 그러더군요. 모든 소중한 기억들은 날씨와 관계되어 있다고요. 소중한 사람과 바라보던 석양, 사악사악 소리가 나는 대나무숲, 윤슬에 반짝이는 강물… 그런 것들이 참으로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퍼석하게 말라가는 마음을 적시나 봐요.
가을이 점점 짧아진다는 게 아쉽습니다. 가슴이 저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