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연사
Last mile problem이란 어떤 일의 마지막 단계/구간에서 난이도가 급격히 올라가거나 도달하기 어려워지는 문제를 말한다. 예를 들어, 배송에서 물류센터에서 도심 집하지까지는 쉽지만 도심에서 개별가정까지는 도달하려면 더 많은 비용과 인력이 든다. 개발협력 프로젝트를 예로 들면, 사업승인과 시행까지는 비교적 순탄하게 흘러가지만, 주민에게 직접 수혜가 닿고 잘 사용하는 것은 어렵다.
새해의 셋째 날 아침, 평소 때처럼 하염없이 웹툰을 보고 또 보다가, 아무리 샅샅이 훑어도 더는 볼 것이 없어서 꽁꽁 싸매고 달리기를 나섰다. 오래된 포구를 따라 얼어붙은 바닷가를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영하의 추위에 다리와 이마가 얼얼하다. 공력이 초보인지라, 1.5km 정도 떨어진 곳에 보이는 거대한 새우 동상을 목표로 한다. 결코 먼 거리가 아닌데, 아침이라 몸이 굳어서인지, 추워서인지, 쉬이 발이 무거워진다. 다시 리듬을 찾으려고, 내쉬고 들이쉬는 호흡을 가다듬으려고 노력한다. 조금 나아진다. 이 추운 날에도 몇몇이 달리고 있어 마음속으로 "대단하시군요" 찬사를 보낸다.
금빛 새우 동상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겨우 100미터 남짓 떨어져 있다. 다리가 더 무거워진다. 숨이 거칠어진다. 리듬을 되돌리려고 해 본다. 이제 겨우 10미터, 하나 둘 셋넷, 하나 둘 셋넷, 하면 목표에 도달하는데, 이만 멈추고 싶다. 그 어느 때보다 더. 겨우 겨우 새우 동상의 영역에 들어섰을 때 달리기를 멈추고 생각한다. "다음에는 2km를 목표로 해야 (2km를 거뜬히 달릴 수 있어야) 1.5km를 너끈히 달리겠다."
Last mile problem이 이런 경우에도 해당되는 걸까? 마지막 순간에 가장 큰 유혹이 온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 이만하면 됐다는 합리화.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목표의 난이도 하향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늘 내게 충고하셨다. 내 능력의 80%만 써도 달성할 수 있는 곳을 목표로 삼으라고. 난 마음속으로 "그러면 인생에 안주하게 된다"라고 걱정했지만, 돌이켜보니 그건 인생의 구간구간을 성공의 경험으로 채워갈 수 있는 지혜이기도 했다. 큰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작은 단계들을, 적당히 어렵지만 너무 어렵지도 않게,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것.
나는 지금 내 인생의 어느 구간에 있는 것일까?
새해 계획을 세우며 스케치북에 직선을 죽 긋고, 태어난 해부터 100살까지 표시를 했다. 현실적인 고민들이 꼬리를 문다. 몇 살까지 일하면 좋을까, 은퇴를 하면 직장과 상관없이 내가 살고 싶은 곳에 살 수 있겠지, 어디가 좋을까, 월급이 없어도 살 수 있으려면 얼마를 모아서 어떻게 굴려야 할까... 반나절을 끄적여보니,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자녀도 없는 우리 부부가 살아가는데 지금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다.
진짜 대답해야 할 질문은 다른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가치를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가?
나를 진정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꿈꾸는 자아실현의 모습, 내가 바라는 내 가족의 모습과, 일하면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지, 건강하기 위해 내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
내 인생이 만약 마라톤과 같다면, 나는 아직 반환점을 돌기 전 마지막 오르막길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이 만약 등산과 같다면, 나는 지금 정상에 도달하기 전 구불구불한 능선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last mile을 달린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 꿈에도 모른 채, 정상에서 내려온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전혀 모른 채 희희낙락하며 즐기고 있는 것 같다.
2024년만 해도 일이 나를 쫓아오고 나는 간당간당하게 도망가는 느낌, 일에 질질 끌려가는 느낌이 있었는데, 2025년에는 새로운 일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 일과 삶 사이의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2025년에는 테라스가 있는 집으로 이사해서 아파트가 아닌 집이 줄 수 있는 많은 혜택을 누렸다. 집이 텃밭이 되고, 카페가 되고, 펜션이 되고, 내 고양이의 놀이터가 되어 주어 문득문득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많았다. 2025년에는 가족과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들을 집에 초대하기도 하고, 내가 그들 곁에 머물기도 하면서. 일에서 여유를 찾은 덕분이고, 새로운 집의 선물이기도 했다. 2025년에는 이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건강과 여유를 찾는 것에 무엇보다도 집중했던 것 같다. 수영과 달리기를 시작했고, 요가를 병행했다. 연말에 시작한 프리다이빙은 2026년을 더 채울 것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3월까지 독서와 글쓰기를 하다가 흐지부지 되어 버린 것이 마음에 걸린다. 수학공부를 하며 뇌 훈련을 하겠다던 계획도 전혀 실행하지 못했다.
나는 아직 길 위에 있다. 인생의 last mile 같은 건 아주 멀리에 있다. 작게 자른 단계들의 last mile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어렴풋이 알겠다. 내가 걷고 있는 이 오솔길이 감사하고 아름다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