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집 새댁은 3년째 보는데도 데면데면하다.
인사도 잘 안 하고 빤히 보고 그냥 지나간다.
사원아파트 살면서 그러기도 쉽지 않은데
그냥 자기 애가 없으니 남의 애한테도
정이 없어 그런가 보다,
했다.
그래, 느이 앞집에 사는 그 미나 씨가,
글쎄 우리 아파트 아줌마들 보고는
자긴 도저히 그렇게는 못살겠다고
애 안 낳겠다 남편한테 선언했다더라.
...
우리 아파트라 해봤자
새벽에 회사 나가 오후에나 느지막이 들어오는,
그 미나 씨가 본 아줌마라고는
끽해야 나나 2층 하은이 엄마가 다 일 텐데.
하은이 엄마야 애도 다 키우고 이쁘게 꾸미고 다니니..
그럼.. 콕 집어 말 안 해도 나는구나.
'그렇게' 살고 있는 아줌마가 나겠구나.
나도 모르는 사이
남의 인생 중차대한 결정에
그렇게나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다 하니
감개가 무량했다.
나 원 참.
너는 하늘에서 떨어졌는 줄 아니,
애 키우면 다 이렇지 뭘,
너도 늙어서 애 낳아봐라,
온갖 궁시렁을 다 갖다 붙여도 분이 안 풀렸다.
그냥.
정말 많이 속상했다.
들켜버린 것 같아서.
행복한 척, 늘 좋은 척했는데
인사도 제대로 안나눈,
이야기도 한마디 주고받은 적 없는
옆집 깍쟁이에게
못 감은 머리, 늘어난 살에
파자마 입은 모습만 들킨 게 아니라
속마음까지 다 들켜버린 것 같아서
너무 속상했다.
정말이지.
너무 힘들다.
내가 원했던 삶이 이런 거였나?
싶을 만큼 많이 힘들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우울이라는 녀석에게
덜미가 잡혀 버릴 것 같다.
영화 한 편 보고 싶다.
저녁 늦게 친구를 만나
맛있는 꼬지 집에서 생맥 한잔하고 싶다.
주말에 아무것도 안 하고
예능프로 두 개쯤 보고 싶다.
무엇보다.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7시간만 자고 싶다.
정말. 자고 싶다.
이석증으로 머리는 징글징글하게 어지럽고
목디스크 때문에 붙인 파스 냄새가 머리를 흔든다.
남들은 직장이 좋아 팔자 좋게
육아휴직 4년이나 한다고 이야기하겠지만
교육과정의 ㄱ도 기억이 안 나는데
돌아갈 일도 사실 막막하다.
요 조그만 얼굴들 보면서
이 힘든 육아전투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데
그건 마치
한무데기 풀떼기 속에서
네 잎 클로버 찾기 만큼이나 힘들다.
세 잎 클로버라는 행복 속에서.. 뭐니 하는 그 따구 이야기로는 1도 위로가 안될 만큼 힘들다.
세상이 나만 빼고 술술
그대로 흘러가버리는 것 같다.
지금,
내가
행복한지 잘 모르겠다.
그냥.
다만.
그럴 것 같긴 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해도,
시간을 돌린다고 해도,
나는 똑같은 선택을 할 거라는.
머리가 빙빙 돌고
멍하게 하루하루 버티는
오늘 같은 날들이 계속될 거라는 걸 알고도.
너희들이 있으니까.
우리는
'당신은 내게
다른 어떤 누구로도 대체불가능한,
유일무이한 사람이에요.
전적으로 당신을 믿고 의지하고
또 사랑합니다'란
기다란 말을
'엄마'라고 간단히 줄여 말한다.
나는 '엄마'와 비슷한 의미의 단어로
'지아'와 '윤아', '당신'도 갖고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대체 불가능한 존재라서,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
우리에게 서로는 존재의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가 이토록 중요한 누구였는가,를
요즘처럼 절실히 느껴본 적이 없다.
'그 미나 씨'에게 홀랑 들켜버린 것처럼
나는
많이 지치고
인생이 힘들고
삶을 포기한 듯 보이는 아줌마지만
나는,
내 인생의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의 내가 소중하고 귀하다.
나는,
엄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