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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면씨 May 30. 2019

다합 살이

다합

하루 이틀, 일주일 이주일.

나는 그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참 힘들더라.

하지만 다합에 온 후로는 외로움이 많이 사그라들었어.

사람들과 함께 북적이며 살아서일까.

사실 이 무렵 그는 그의 어머니와 이모님들과 함께 여행 중으로 매우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어.

나와의 연락은 자연스레 뒷전이 되었지.

내가 뭘 하고 지내는지 알려주고 싶었는데 알려줄 시간이 없으니 불만이 쌓여갔어.

뭐가 문제인지 알기 때문에 다툼의 원인이 될 만한걸 방지하려면 어떡해야 할까 고민했어.

그래서 매일 밤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담은 일기를 적어서 그에게 사진 찍어서 보냈어.

매일매일 지루할 틈 없이 사람들과 재밌는 시간을 보내던 나는 일기장에 빼곡하게 글을 썼어.

나는 아주 잘 지내고 있다고 말이야.

매일밤 그에게 쓴 일기는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


다합에서는 포르투에서보다 한식을 더 잘 챙겨 먹었어.

집에 사는 사람들과 공금을 거둬서 함께 밥을 해 먹었는데 요리는 주로 내가 담당했어.

요리하는 게 즐겁고 내가 요리한걸 맛나게 먹어줄 사람들이 많아서 좋았어.

가장 더운 낮에는 바다에 몸을 담그고 오후엔 아쌀라에 장을 보러 갔어.

장 봐온 것들로 요리를 하고 어깨를 부딪혀 가며 함께 밥을 먹었지.

다들 물에 다녀온지라 밥 두 공기는 거뜬히 먹더라고.

밥을 먹고 나서는 후식을 가운데 두고 이야기를 나눴어.

주로 프리다이빙이나 여행에 관한 이야기들이었어.

가족이 있는 한국이 아닌, 그가 있는 포르투가 아닌, 온전히 나 홀로 있는 다합에 가족이 생긴듯한 기분이 들었어.


다합의 가족 중에는 완이도 포함이었어.

완이는 내가 떠나기 몇 주 전부터 나와 룸메이트가 되었어.

여러 나라에서 몇 번이고 만난 덕에 내게는 참 친오빠 같은 친구였어.

나랑 완이는 다합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장난을 쳤어.

김현.

김완.

우리는 남매라고 말이야.

하필 둘 다 김 씨에, 외자인 데다가 하고 다니는 행색이 히피스러워서 모두들 속아 넘어갔어.

[마쉬라바] 완이는 내 여행이 외롭지 않게 해 준 고마운 친구다. 

어떤 날은 다합의 가족들과 몇몇 분들을 더해 ‘라스아부갈룸’이라는 곳에 1박 2일 캠핑을 갔어.

블루홀에서 보트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폰도 터지지 않는 외진 곳이었어.

그에게 미리 1박 2일 동안 연락이 안 될 거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보트에 올랐어.

투명하게 비치는 물을 가르고 청량한 바닷 공기를 맡다 보니 어느새 라스아부갈룸에 도착했어.

2018년 8월 12일 일요일, 이날 우리가 이 곳에 온 이유는 밤이 되어서야 알 수 있었어.

그건 바로 테세우스 유성이 떨어지는 날이었거든.

밤이 되고 레스토랑에서 기다란 매트를 끌어다 바다 앞에 깔고 누웠어. 

모로코 사막에서보다 더 많은 별들과 은하수가 선명하게 펼쳐졌어.


떨어지는 별을 보며 소리쳤어.

“우와! 별똥별이다! 우와아아아!!!”

처음엔 그 개수를 세다가 나중엔 포기했어.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떨어졌거든.

별이 떨어지기 전에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길래 나도 도전했어.

넋 놓고 떨어지는 별을 기다리다가 막상 별이 떨어지니 놀라서 “엇 씨바- "라고 소원을 빌어버렸지.

부들부들.

다행히도 떨어지는 별이 하나 둘이 아닐 만큼 많았기에 소원을 나눠서 빌었어.


별 하나에 “제”

별 하나에 “이”

별 하나에 “랑”

별 하나에 “오”

별 하나에 “래”

별 하나에 “도”

별 하나에 “록”

별 하나에 “사”

별 하나에 “랑”

별 하나에 “하”

별 하나에 “게”

별 하나에 “해”

별 하나에 “주”

별 하나에 “세”

별 하나에 “요”

[라스아부갈룸] 별을 보며 노숙을 한 곳. 새벽에 입 돌아가는 줄 알았다.

또 다른 날은 다합을 벗어나 고져스하게 샴엘셰이크에 호텔 올인크루시브를 즐기러 갔어.

멤버는 완이, 명근 오빠, 소리 언니, 재상 오빠, 지윤이, 인선 언니였어.

포르투갈-스페인-모로코에 이어 이집트에서 또 만난 완이,

포르투에서 제이와 먼저 만나고 나와는 다합에서 만난 부산 사나이 명근 오빠,

20년 지기와 함께 여행 중이라는 소리 언니와 재상 오빠,

명근 오빠랑 톰과 제리였던 타짜 지윤이,

내 룸메이트였던 인선 언니.

모두 노는 거 좋아하고 시끌벅적한 사랑스러운 사람들이었어.

이 멤버 리멤버라고, 우리가 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건 안 비밀.


완이가 여기저기 전화해서 발품 팔아 준 덕분에 가성비 좋은 올인크루시브를 갈 수 있었어.

택시를 타고 여러 호텔들이 모여있는 샴엘셰이크로 향했어.

꼬불꼬불한 산길을 타고 붉은 산들을 지나 도착한 샴엘셰이크의 어느 호텔.

여행을 시작한 이래 누린 첫 호강이었어.

매번 조금이라도 싼 곳을 찾아다니던 날을 뒤로하고 2박 3일 동안 호사를 누리게 된 거지.

샴엘셰이크가 유명한 이유 중에 하나가 저렴한 가격의 올인크루시브였어.

이집트까지 와서 안 하면 섭섭하잖아.


점심 저녁으로 뷔페를 먹고 더운 낮에는 호텔과 연결된 바다에 스노클링을 하러 갔어.

첫째 날 밤에는 해변에 위치한 비치 클럽에, 둘째 날 밤에는 카지노에 놀러 갔어.

매일 즐길 수 없기에 특별했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지낸 시간이 소중했어.

돈이 아깝지 않게 본전 뽑은 올인크루시브.

언젠가 그와 함께 이런 호사를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굳이 이집트가 아닌 어디서든.

[라이트하우스] 우리는 다음 해 서울에서 만나게 될 줄 알았을까?
[샴엘셰이크] 카지노에서 일확천금을 노린 우리는 그지가 안된 게 다행이었다.

시곗바늘이 흐르고 흘러 40일이라는 시간이 흘렀어.

다합을 떠나기 전에 가현 언니와 지훈오빠에게 이벤트를 해주고 싶었어.

나라는 사람이 이 곳에 머물렀다는 흔적보다는 기억을 남겨주고 싶었거든.

내가 떠나기 며칠 전부터 다합엔 “Red Sea Cup”이라는 대회가 있었어.

한국 기록 보유자인 지훈오빠가 이 대회에 출전하기로 되어있었어.

그리고 난 아주 멋들어지게 지훈오빠를 응원하려고 준비에 돌입했어.


집 근처 천 가게 겸 수선집인 곳에 가서 하얀색 천을 사 왔어.

파리가 윙윙 날리는 문방구에 가서 페인트 마카도 색깔별로 사 왔지.

커다란 천에 지훈오빠를 응원하는 문구를 커다랗게 적었어.

요즘 초등학생들이 한 환경미화보다도 못한 실력이지만 이렇게라도 하고 싶었어.

만든 응원 플래카드를 블루홀 안에서 펼쳐 보였어.

물속이어서 소리 내 응원할 수 없었지만 최선을 다해 응원했어.

“읍읍읍 읍! 읍읍읍~!”

완이가 플래카드 만드는걸 도와줬다. 이날 완이와 나는 새벽까지 잠들 수 없었다.
[블루홀] 정말 제대로 응원했다.

그렇게도 가고 싶었던 포르투인데.

짐을 싸는 내 손길이 느릿느릿했어.

아마도 정든 집과 정든 사람들과 정든 풍경을 떠나는 게 아쉬웠던 모양이야.

떠나는 날 아침 가현 언니와 작별을 인사를 나누고 카이로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어.

카이로 공항에 도착하기까지 40일 동안 머문 다합에서 생활을 정리했어.

그리고 포르투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그와 떨어져 지낸 3개월간의 여행을 정리했어.


3개월이라는 시간은 한 여름밤의 꿈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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