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디프
떨리는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렀어.
옆집에 살았다고 하는 제이의 소꿉친구인 벤.
혹시나 그 집에 여전히 살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어.
문이 열리고 나온 사람은 아기를 안고 있는 젊은 여자였어.
“누구세요?”
라고 묻는 그녀의 모습엔 낯선 이에 대한 경계가 가득했어.
“나는 22년 전 옆집에 살았던 제이야.
이 집에 살았던 벤과 친구였어.
혹시 벤을 알고 있니?”
제이는 그녀에게 이 집의 초인종을 누르게 된 이유를 설명했어.
말을 하면서도 22년이나 지난 지금 벤이 이 곳에 여전히 살고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어.
제이의 이야기를 들은 그녀의 표정에는 미소가 떠올랐어.
미소의 의미를 우리는 곧 알 수 있었어.
“Ben is my husband.”
(“벤은 내 남편이야.”)
그렇다는 건 그녀의 품에 안긴 아이는 벤의 아기라는 소리였어.
이야기를 하느라 보지 못했던 아기의 얼굴을 보자마자 제이는 깜짝 놀랐어.
22년 전 제이가 기억하는 벤의 모습과 똑 닮았기 때문이었지.
“세상에.. 진짜 내가 기억하고 있는 벤이랑 똑같이 생겼어.”
벤의 집에는 벤의 아내와 둘째 아들과 막내딸이 있었어.
그리고 벤의 처제가 언니의 육아를 돕기 위해 벤의 집에 있었지.
벤의 아내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들은 처제는 연신 신기해했어.
“Oh My…”
영어였기에 그녀의 말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이랬지 않을까.
제이는 한국에 계시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어.
벤의 아내는 벤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지.
두 사람은 서로의 어머니들에게 상황을 설명했어.
그리고 통화 중인 전화를 스피커 폰으로 켰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어머니들의 수다가 시작되었어.
22년 동안 끊어졌던 인연이 다시 닿는 순간이었어.
그의 생에 첫 선생님을 만나고,
그가 다녔던 학교에 가고,
그곳에서 그를 기억하고 있는 선생님을 만나고,
그가 살았던 집에 가고,
그곳에서 그의 소꿉친구의 가족을 만난 여행.
뜻깊은 만남의 연속이었던 카디프 여행을 뒤로하고 우리는 런던행 버스에 몸을 실었어.
런던에 도착해 킹스크로스 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호스텔에 짐을 풀었어.
다음 날 이른 아침에 멕시코로 떠나야 했기에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알차게 쓰기 위해 곧장 밖으로 나갔어.
우리는 공사 중인 빅벤을 지나치며 제이의 추억을 떠올렸어.
그러던 중에 제이가 소리쳤어.
“어! 여기 거기야! 나 어릴 때 사진 찍었던 곳! 여기서 사진 찍어줘:)”
찰칵.
빅벤 앞에서 사진을 찍고 지하철을 타고 타워 브리지로 갔어.
지난번에 혼자 왔을 때 홀로 사진 찍었던 곳에서 그의 손을 잡고 함께 그 순간을 담았지.
찰칵.
우리는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산책하듯 템즈강을 따라 걸었어.
걷다 보니 밀레니엄 브릿지에 다다랐고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리니 세인트 폴 대성당이 눈에 들어왔어.
이미 불도 꺼지고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는 비에 웅장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지.
밤 산책, 밤 데이트는 시간 가는 줄 몰랐어.
시간은 어느덧 12시를 가리켰고 신데렐라처럼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어.
미리 짐을 싸 두고 잠이 든 우리는 해가 뜨기도 전에 눈을 떠야만 했어.
영국을 떠나 멕시코로 향해야 했거든.
공항철도를 타고 도착한 ‘스탠스테드 공항’에서 우리의 영국 여행은 끝이 났어.
제이의 추억여행은 나에게도 뜻깊었어.
내가 모르는 그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고,
내가 궁금한 그를 알게 되는 시간이었고,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