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쿤
Canta y no llores,
Porque cantando se alegran,
Cielito lindo, los corazones.
울지 말고 노래해요.
노래를 하면 마음이 행복해져요.
아름다운 작은 하늘이여.
-Cielito Lindo 노래 중-
제이와 연애를 시작하고 포르투에 머물기 시작했던 어느 날.
그는 나에게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며 어떤 노래를 들려주었어.
제목은 ‘Cielito Lindo’로 작은 아름다운 하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멕시코의 아리랑과 같은 노래였어.
흘려듣던 노래를 시도 때도 없이 틀던 제이.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나도 모르게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어.
그의 페이보릿 노래는 나의 페이보릿이 되었지.
내 생각에 이건 제이의 빅피처였던 것 같아.
그것도 아주 큰 빅피처.
제이가 Cielito Lindo의 본고장인 멕시코로 날 데려갔거든.
비행기가 멕시코 땅에 닿기도 전부터 아니, 멕시코행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부터 귓가에 노래가 맴돌았어.
한국에서 여행을 계획할 때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아메리카 대륙.
설마 거기까지 가게 될까 했던 곳을 제이 덕분에 가게 되었어.
그것도 함께 말이야.
코가 시리고 손이 시리고 발이 시렸던 런던.
날카로웠던 공기의 런던과 달리 멕시코의 공기는 한없이 묵직했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피부에 와 닿는 여름이라는 계절이 나를 들뜨게 했지.
들뜬 마음을 식히려는지 콧잔등 위에는 송골송골, 인중 위에는 땀 한 줄기가 타고 흘렀어.
으아, 뜨겁다.
입국 수속을 하러 가서도 들뜬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던 모양이야.
치아를 골고루 보여주며 환하게 웃은 나는 말했어.
“Buenas dias! Me encanta Mexico!”
(“안녕! 나 멕시코 줠라 좋아해!”)
“Haha. Buen viaje!”
(하하. 좋은 여행 되길 빌어!”)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가방을 메고 공항 로비로 나왔어.
가장 먼저 한 것은 운동화를 벗고 양말을 벗는 거였어.
그리고는 가방 옆구리에 붙어있는 주머니에 찔러 넣어놨던 슬리퍼를 꺼내 신었지.
두꺼운 점퍼는 돌돌 말아 가방 깊숙이 챙겨 넣었어.
한껏 가벼워진 차림으로 공항을 나섰어.
우리는 찌는 듯이 더운 날씨에 택시를 잡으려고 했어.
여기저기서 “Amigo!”(친구)라며 택시기사들이 친한 척 다가왔어.
사람 좋은 얼굴과 그들의 친근함에 나는 역시 멕시코구나! 싶었지.
제이는 그들과 협상을 하기 시작했어.
사람 좋은 척을 하는 저 놈들은 할머니들한테 약을 파는 약장수들처럼 말도 안 되는 돈을 요구했어.
결국 좋은 가격으로 타협하지 못한 채 택시에 올랐어.
실랑이를 하기에 가방은 너무 무거웠고 날씨는 너무 더웠거든.
후줄근한 택시를 타고 찌는듯한 더위를 달렸어.
손님을 태운 채로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는 택시 기사도,
파란 하늘과 대비되는 먼지가 폴폴 날리는 도로도,
표지판에 적혀있는 스페인어들도,
멕시코에 왔다는 느낌이 아주 느리게 와 닿고 있었어.
우리가 멕시코에서의 여행을 시작한 곳은 칸쿤이었어.
칸쿤은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곳이야.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호캉스야.
올인크루시브를 즐기며 호텔에서 부르주아처럼 보내는 거지.
제이와 나는 돈을 아껴야 하는 배낭여행자였기에 과감히 포기했어.
배낭여행자인 우리가 택시를 타고 도착한 곳은 어느 호스텔 앞이었어.
호텔촌 안에 있는 호스텔이라니.
주변을 둘러보니 많은 커플들 혹은 여행자들이 집이 따수워 보였어.
아, 여기서 집이 따수워 보인다는 표현은 경상도 지역에서 부유해 보인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야.
부내 나는 사람들 사이로 동양인의 배낭여행자인 우리는 돋보일 수밖에 없었어.
벌렁벌렁 신나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어.
호스텔에 체크인을 하고 침대를 배정받았어.
짐을 풀고 조금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칸쿤의 밤거리로 나왔어.
더운 열기로 가득한 낮보다 선선해진 밤이 역시 사람이 많더라.
괜스레 사람 많은 날은 들뜬단 말이지.
우리는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어느 레스토랑으로 들어갔어.
웨이트리스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았지.
그리고 크림 스파게티 하나와 햄버거 하나를 시키고 기다렸어.
음식이 나올 동안 주위를 둘러봤어.
시끌시끌한 음악이 나오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페이스 페인팅을 하고 있었어.
파티 분위기가 물씬 나는 이 곳에서 나도 페이스 페인팅이 하고 싶어 졌어.
레스토랑의 직원 중 하나가 페이스용 물감을 들고 다니고 있었어.
직원이 내게 와서 물었어.
“너도 해줄까?”
“응!!!”
차가운 붓이 내 얼굴을 간지럽혔어.
몇 번을 내 얼굴 위해서 춤을 추던 붓질이 멈추자 내 얼굴엔 멋진 그림이!
엥..?
이게 뭐야.
페이스 페인팅이 완성되자 직원은 내게 돈을 요구했어.
그제야 기억이 났어.
멕시코에 오기 전에 제이가 나에게 했던 이야기가.
“자기야. 멕시코에 가서 멕시코 친구들이 친한 척 ‘Amigo!(친구)’ 한다고 다 믿으면 안 돼!”
“왜?”
“가보면 알 거야.”
그의 말대로 믿지 말걸..
웃으며 “해줄까?” 하는 직원의 선의에 제대로 당했지 뭐야.
눈앞에서 당당하게 500페소를 요구하더라고.
내 얼굴을 엉망으로 만들고..
하하 이 나쁜 년.
웃지도 울지도 못한 표정으로 앉아있는데 또 다른 직원이 다가왔어.
풍선으로 왕관을 만들어준다며 말이야.
나는 의심의 눈초리를 잔뜩 지어 보였어.
“너.. 돈 달라고 할 거지?”
“아니야. 이거 공짜야 공짜! 프리!!”
“공짜야? 헤헤?”
의심의 눈초리는 잠깐이었고 또다시 사람을 믿어버렸지.
그래도 이번엔 진짜 공짜였어.
얼룩덜룩한 얼굴을 한 나는 착잡한 기분과는 달리 맛있는 한 끼를 먹었어.
어차피 돈은 냈고, 얼굴에 한 우스꽝스러운 페인팅에 나도 제이도 어이없어서 웃었으니 됐어.
두둑한 배를 통통 두드리며 레스토랑에서 나왔어.
머리 위에는 우스꽝스러운 왕관이 얹어져 있고 얼굴에는 형광색의 그림이 그려진 나.
지나가는 멕시칸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지.
“이야! 너 되게 멋지다!!!”라고 말하는 그들의 얼굴엔 한치의 거짓말도 보이지 않았어.
또 속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