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금 한말, 진심이야?"
면접장을 나오자마자 선배가 팔짱을 끼며 묻는다.' 선배도 진심 아니면서 제가 한 말은 진심이길 바라나요?' 이렇게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내 상황이 안쓰럽다.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서있다. 이미 면접은 끝났지만 난 선배와 또 다른 면접을 보고 있다.
" 난 너 잘 되라고 좋은 말 만들어내느라 고생했는데 너는 진짜 짧게 하더라. 그것도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저 좋으라고 그렇게 한 거예요? 아니잖아요.. 착한 선배 코스프레한 거잖아요! 그래야 좋은 평가받을 수 있으니까.'
내 마음은 계속 대답하지만 선배는 알 리 없다. 그냥 이런 어색한 상황이 싫다. 서로 진심이 아닌 거 아는데 어쩜 거짓말을 저렇게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지 모르겠다. 난 그냥 이 자리를 빨리 피하고 싶을 뿐이다. 집에 가자 빨리...
" 선배님 면접 보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인사하고 뒤돌아선다. 그러자 선배가 다시 내 이름을 부른다.
" 너 아직도 그쪽 사니? 내가 태워줄게." 지금 이렇게 같이 있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왜 갑자기 착한 적 하는 건지 난 대체 이해가 안 된다.
"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저 이 근처에서 친구랑 약속이 있어서요. 조심히 가세요, "
이제 해방이다. 바로 화장실로 가서 면접 복장을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역시 청바지가 편하다. 올림머리를 푸니 살 거 같다. 이 머리로 어떻게 장거리 비행을 했을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비행을 그만둔 지 벌써 일 년이 됐다. 비행을 그만두고 한동안은 행복했다. 사람에게 치이지 않고 남들 비위 맞추며 살지 않아도 됐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자유롭게 살 수 있었다. 퇴직하기 전 여행하고 싶은 도시 항공권을 구매했다. 승무원은 비행기 티켓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혜택이 있다. 대신 모든 승객이 탑승 후 남는 좌석에 탈 수 있기 때문에 매번 스탠바이를 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컨펌 티켓이 아니기 때문에 여행 갔다가 다음 비행 스케줄에 못 올까 봐 불안하다. 불안하느니 안 가는 게 낫다. 솔직히 비행 스케줄상 티켓을 이용하기가 힘들다. 이제는 자유의 몸이니 비행이 아닌 여행을 할 수 있다. 6개월간은 힐링여행을 나에게 선물을 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난 삶을 온전히 즐겼다. 5개월은 스페인어 학원을 다녔다.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후 그 나라의 매력에 흠뻑 빠져서 재밌게 배우고 있다. 퇴직 후의 삶은 나를 비우며 채우는 시간이었다. 무작정 그만두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공허함이 밀려왔다.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네가 평생 이렇게 여행하며 공부만 하며 살 수 있을까? 이제 퇴직금도 별로 남은 게 없는데.. 이제 나 뭐 하며 살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생계를 고민하게 되면서 일자리를 찾기 시작한다. 승무원 외에 다른 직업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비행이 진절머리 났는데 난 아직도 승무원 카페에서 채용공고를 애타게 찾고 있다.
감사하게도 하반기 채용이 연달아 났고 몇 번 떨어진 끝에 오늘 면접을 봤다. 일 년 만에 다시 비행을 하고 싶어 이렇게 안달이 날지 몰랐다. 이런 내가 나조차 어색하다. 그렇게 바라고 바란 면접인데 선배를 만나 면접을 망치고 나온 지금 기분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 인생 참 어렵다.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고 세상은 절대 내 편이 아니란 걸 다시 한번 확인한 오늘이다. 인생 공부 제대로 했다. 한강에 뛰어들고 싶은 이 찝찝한 기분. ' 아. 맞다...' 내가 사는 곳이 한강 고수부지 근처인데 난 비행을 그만두고 한 번도 그곳에 간 적이 없다. 한강 따위에 갈 시간이 없었다. 난 그 당시에 너무 행복해서 하늘을 둥둥 떠다녔으니까. 이젠 나에게 그런 행복이 없다. 비행할 수 있을 거라는 일말의 희망마저 사라졌다. 이번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면접이라는 생각이 자꾸 나를 괴롭힌다. '한강이 보고프다. 그냥 정처 없이 흘러가는 물을 보면 마음이 편해지려나... 그래.. 한강에 가자... 힘들고 지친 마음을 그곳에서 위로받아야지.'
*픽션과 논픽션의 만남!!!! 경험을 바탕으로 상상력 첨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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