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은영아, 네가 있어 참 좋다...

by 하니작가

어제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 머리가 너무 아프다. '이상하다.. 집이 아닌데.... 어디지? '주변을 둘러보니 유니폼이 보인다. 아... 여긴 은영이 집이다.

" 이제 깬 거야? 너 지금 한 10시간은 잔 거 같은데! 어머님께는 내가 전화했으니 걱정하지 말고! 배고프지? 네가 딱 원하는 거 준비했으니 어여 씻고 나와! 옷은 내 거 아무거나 꺼내 입어. 어딨는지 알지?"

난 은영이를 부르지도 않았는데 내가 일어난 걸 어떻게 안 건지 신기하다. 은영이는 귀가 정말 밝다. 소머즈 귀를 가졌다. 비행을 하면 소음 때문에 귀가 더 안 들리는 경우가 많은데 하여튼 특이하다. 대강 씻고 나와 소파에 풀썩 주저앉는다.

" 영! 어제 우리 뭐 했어? 나 기억이 안 나... 커피 마시고 케이크 먹고 그다음부터는 전혀.. 나 완전 블랙아웃이야. 이런 적이 너무 오랜만이라... 나 어제 아무 일 없었지??

은영이는 멀뚱멀뚱 날 신기하게 쳐다본다.

" 너 어제 정말 웃겼어! 오래간만에 너 때문에 많이 웃었네. 우리 카페에서 수다 떨다가 자주 가는 와인바에 갔는데 거기 매니저님이 우릴 기억하는 거야? 정말 오랜만에 왔다면서 치즈 플래터를 서비스로 주시더라고. 그건 기억나?? 하여튼 네가 와인이 들어가니까 면접 본 것 주절주절 얘길 하더라고. 네가 얘기하고 싶을 때 하는 게 나을 거 같아서 일부러 안 물어봤는데. 나도 정말 놀랐잖아. 네가 그 선배를 거기서 또 만나다니... 정말 질긴 인연이다. 나도 짜증 나던데 넌 어땠을까 싶더라. 그러다가 네가 실성한 애처럼 노래를 부르더라! 그때 진짜 웃겨 죽는 줄 알았다. 뭐 불렀는지 알아?"

" 내가 노래를 불렀다고?? 나 정말 실성했나 봐... 나 거기 이제 어떻게 가냐... 뭐 불렀어.. 미쳤어 진짜... 뭔데???"

은영이의 눈빛을 보니 뭔가 많이 불길하다.

" 설마... 그 노래는 아니지?.. 내가 가끔 술 먹으면 기분 좋아서 춤추면서 부르는 그 노래... 아니지?? 아닐 거야, 제발 아니라고 해줘!"

" 나도 놀랐다니까.. 그 노래는 네가 기분 좋으면 부르는데 보통 이런 날은 너 그냥 술만 먹고 말도 없잖아.... 근데 네가 실성하긴 했나 보다.. 아님 충격을 많이 받아서 갑자기 미쳤거나.... 맞아.. 그 노래...' 떴다 떴다 비행기' 이 노래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불렀는지 알아?? 아주 공연을 해요. 공연을!! 그러다가 너 진짜 날고 싶다고 했잖아!! 창피해 죽는 줄 알았어! 매니저님이 이미 하늘 날고 있는데 왜 이 노래를 이렇게 슬프게 부르냐고 하시더라고. 내가 간단히 오늘 일을 브리핑했더니 힘내라고 와인 값도 안 받으셨어. 다음에 감사하다고 말씀드려! 하여튼 나 너 덕분에 공짜로 먹었다!! "

은영이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내 등을 치며 계속 웃는다.

" 진짜?? 내가? 내가 그랬다고? 나 어떡해!! 나 어제 얼마나 마신 거야? 나 와인만 마신 거 맞어? 내가 와인 마시고 이렇게 취하진 않는데!!"

"그니까 더 놀랐다니까. 너 그때 와인만 먹었어. 와인 먹고 그 노래를 불렀다고! 소맥은 우리 집에서 먹었지!! 아주 강하게 한잔하고 싶다고 그대가 그러셔서.. 내가 그대를 위해 나만의 주조법으로 만들었지! 너 소맥 먹다가 그냥 소주 마셨어. 나 네가 이렇게 술 마시는 거 그때 보고 처음이다... 그 정도로 힘들었나 싶더라.. 하여튼... 지나간 일이니까 잊어!! 지금 기분은 어때?

은영이 얘기를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든다. 내가 와인에 소맥에 소주라니.. 이런 일은 그때 말고는 없는데... 그래도 은영이가 옆에 있어서 다행이다. 이미 지나간 일 빨리 잊고 힘을 내는 방법밖에는 없다.


어묵국과 떡볶이 냄새가 솔솔 난다. 내가 해장할 때마다 먹는 음식이다.

" 떡볶이 일부러 맵게 했어!! 이거 먹고 우리 나가자. 너 거기 알지? 그 카페? 거기 최근에 리뉴얼해서 정말 좋아졌다던데! 우리 거기 가서 찐한 아메리카노에 달달한 초콜릿 케이크 먹자!!"

나를 위해 소중한 오프를 할애하는 은영이에게 고마울 뿐이다. 바로 내일 장거리 비행이라 오늘 푹 쉬어야 하는데 말이다. 은영이가 해준 음식을 먹으니 속이 풀린다. 은영인 요리도 잘해 얼굴도 이뻐 성격도 좋아. 만능이고 배울 점이 많은 친구다. 먹고 나니 살 거 같다. 은영이가 어제 면세점에서 산 립스틱과 아이섀도를 보여준다.

" 우와. 이거 완전 너한테 잘 어울리겠다! 나도 이 색상 좋더라. 이쁘다. 잘 샀네 " 은영이가 눈을 한번 찡긋하더니 똑같은 화장품을 나에게 건넨다.

" 그치? 너랑 나랑 취향이 같잖니? 네 거도 샀지!! 잘했지? 우리 이걸로 오래간만에 이쁘게 메이크업하고 분위기 전환 좀 할까?"

이 기집애 처음부터 끝까지 감동이다... 아프고 힘들 때마다 내 옆에 있어주는 은영이.. 어제의 아픔도 함께 해준 은영이에게 참 고맙다.

"은영아, 나가자! 너 먹고 싶은 거 다 먹어!! 내가 오늘 다 쏜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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