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아까는 전혀 식욕이 없다가 이렇게 유람선을 타니 입맛이 돈다. 매점에 오니 다양한 간식거리는 있지만 내가 먹고 싶은 건 없다. 아까 맥주를 마시지 말고 뜨끈한 라면을 먹을 걸 그랬다. 하지만 그땐 맥주를 마셔야 할 타이밍이었다. 따뜻한 유자차와 달달한 과자를 주문한다. 당연히 배가 차지 않는다. 다시 매점에 간다. 따뜻한 캔커피와 소시지를 산다. 커피와 소시지라니.. 어울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맛있다. 소시지를 한 입 베어 우적우적 씹으며 오늘 일을 생각한다.' 아침에 늦어서 걱정하며 초조하게 갔는데 운이 좋게 면접을 봤어. 하지만 그곳에서 선배를 만나 당황하고 같이 면접까지 봤고.. 난 이렇게 한강에서 혼자 배를 타고 있네'. 아깐 오늘 하루 다 망친 거 같았는데 생각해보니 그리 나쁘지도 않다. 핸드폰이 없으니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이젠 유람선을 타고난 후 나의 계획을 생각한다. 먼저 맛있는 김치찌개를 먹고 배를 채워야겠다. 근처 서점에 가서 보고 싶었던 책을 산후 카페에 가서 읽으면 오늘 하루가 잘 마무리될 거 같다. 그런데 갑자기 걱정이 밀려온다. 이번 면접에서 안되면 난 뭘 해야 하지? 플랜 B를 생각한다. '대학원을 갈까? 바리스타 자격증을 딸까? 제빵을 배울까?' 생각이 너무 많아 정리가 안된다. 항공사를 그만둘 땐 계획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쉬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쉬고 나니 할 일이 없다. 나름 푹 쉬고 돌아오니 내 자리가 없었다. 갈 곳이 없으니 다시 허무해졌다. 지금 난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이다. 감정이 통제가 잘 안된다. 모르겠다. 이럴 땐 생각을 안 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래, 면접 결과 이후에 생각하자.'
시간이 훌쩍 갔다. 혼자 먹으며 생각하다 보니 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 배에서 내린다. 계획을 급변경해서 그냥 집에 간다. 계획은 바꾸라고 세우는 거니까... 역시나 엄마가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엄마를 보자마자 눈물이 나온다. 엄마는 말없이 나를 안아준다. 펑펑 울고 나니 기분이 좀 나진 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맛있는 김치찌개가 준비되어 있다. 역시 엄마와 난 통하는데 가 있다. 엄마와 마주 보고 함께 먹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역시 집 밥이 최고다. 엄마는 궁금한 것들이 많을 텐데 내가 말할 때까지 어떤 질문도 하지 않는다. 엄마는 그저 울던 딸이 밥을 잘 먹어서 만족하시는 눈치다.
" 딸, 또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먹고 싶은 거 말만 해! 엄마가 다 만들어 줄게!"
"엄마 나 떡볶이랑 김밥 먹고 싶어." 엄마는 바로 냉장고를 여시고 재료들을 분주히 꺼내신다. 엄마가 준비하는 동안 핸드폰을 확인한다. 오늘 면접 잘 보라고 항공사 동기와 친한 선배가 보내준 응원의 카톡들과 걸려온 전화를 보니 또 서글퍼진다. 면접 망하고 왔는데 뭐라고 답장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간단히 답장을 남긴다. 거실로 나가 티브이를 켠다. 좋아하는 예능 프로를 찾아 엄마가 해주신 음식을 먹으며 신나게 본다. 역시 아무 생각 없이 이렇게 먹고 웃으니 기분이 훨씬 나아진다.
" 딸 전화받아!" 엄마가 폰을 건네준다. 발신자를 보니 동기 은영이다.
" 응,,, 나야..."
" 머야!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집에서 뭐해? 나와! 방금 나도 비행 끝나서 집에 가고 있으니까 카페 씨엘로에서 한 시간 후에 보자, "
"나 지금 피곤해.. 그냥 티브이보다 잘래."
" 뭔 소리야? 너 카톡 보니까 네가 지금 어떤 상탠지 딱 알겠던데.. 나오세요! 좀 이따 보자! 너 안 나오면 죽어!"
무지막지하게 전화를 끊어버리는 내 친구... 나를 너무 잘 알아서 가끔은 무섭기까지 하다. 면접 얘기는 꺼내지도 않은 친구의 마음이 느껴진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나갈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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