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신은 날 버리지 않았다...

by 하니작가

하루하루가 길게 느껴진다. 면접 본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계속 항공사 홈피와 전현차 카페(네이버 전직 현직 차기 승무원 카페)에 들락날락한다. 지금 오후 6시니까 발표까지 하루가 남았다.' 내일이 오긴 올까? 이 시간을 뭘 하면 시간이 빨리 갈까?' 바로 넷플릭스를 켠다. 보고 싶었던 영화와 드라마 중 하나를 정해서 끝까지 보면 시간이 빨리 갈 거 같다. 뭘 볼지 고민하다가가 브래드 피트의 영화 4편 보기로 한다. 가을의 전설, 흐르는 강물처럼, 티베트에서의 7년, 조 블랙의 사랑을 선택한다.


영화를 보려고 하니 배가 고프다. 주문 앱으로 바로 매운 떡볶이와 튀김을 주문하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달달한 게 먹고 싶으니 바로 편의점으로 달려가 녹차 아이스크림을 산다. 이제 떡볶이만 오면 영화 볼 준비가 완벽하다. 30분 이상이 걸리다고 했는데 20분 만에 왔다. 괜히 느낌이 좋다. 뭔가 내가 원하는 데로 잘 진행되는 느낌이다. 3명이 먹을 양이라 지금 먹을 양만 덜어서 다시 냉장고에 넣는다. 상을 펴고 먹을 것들을 펼쳐놓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가을의 전설'이 바로 시작한다. 이 영화는 벌써 네 번째인데도 다시 볼 때마다 브래드 피트의 얼굴에 감탄하고 우수에 찬 눈빛에 치인다. 떡볶이가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몰입해서 보다 보니 벌써 영화가 끝났다. 이젠 녹차 아이스크림을 꺼낸 후 '흐르는 강물처럼'을 본다. 시계를 보니 벌써 저녁 9시다. 영화 초반부터 졸린다. 배불리 먹어서 바로 자면 안 되는데 눈꺼풀은 계속 감긴다. 보다 못한 엄마가 한마디 하신다.

" 이젠 좀 그만 좀 먹고 들어가서 자! 얼굴이 달덩이다!"

하루 종일 긴장을 해서 그런지 배가 부르니 잠이 솔솔 오나 보다. 소화되기까지 기다리긴 힘들 거 같다. 그냥 자자.


아침이다. 아니네.. 벌써 정오다. 12시간을 넘게 잤다. 거울을 보니 보름달이 떴다. 폭식하고 잤으니 얼굴은 탱탱 부었다. 그래도 기분이 좋다. 발표까지 6시간밖에 안 남았다. 퀵 샤워를 하고 바로 커피를 내린다. 커피를 연달아 두 잔을 마신다. 커피를 마시니 빵이 먹고 싶다. 집 앞에 빵집이 있지만 나가기 귀찮다. 주문 앱으로 빵을 마음껏 주문한다. 빵을 고르고 보니 이미 만 원이 넘었다. 괜히 장바구니를 덜어내기 싫다. 괜히 내 행운을 덜어내는 느낌이 들어서.. '빵을 더 담을 걸 그랬나?' 지금 주변의 모든 일은 면접 발표와 연결된다.


시계를 보니 공항버스가 올 시간이다. 매번 내가 타고 다니던 버스다. 괜히 이번에 면접 본 00 항공사 승무원분을 만날 수 있을 거 같다. ' 내가 지금 딱 나갔는데 선배님을 만나면 난 합격이다.' 발표 전이지만 이미 나에게는 선배님이다. 버스정류장 갔다가 빵집에 들리는 게 나을 거 같다. 거의 시간에 딱 맞춰서 오는데 오늘따라 공항버스가 늦는다. 다른 항공사 승무원들은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기다리고 기다리는 선배님은 안 보인다.' 제발 선배님 빨리 오세요'를 마음속으로 외친다. 공항버스가 도착했다.' 아.. 선배님을 못 보나보다' 하고 돌아서는 순간 선배님이 승용차에서 내린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다. 선배님을 두 명이나 보다니 행운이 두 배로 오려나 보다.


기분 좋게 빵집으로 향한다. 아까 선택한 빵들을 하나하나씩 트레이에 담는다. 빵이 너무 사랑스러워 보인다. 빵을 가득 안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조 블랙의 사랑'을 본다. 맛있는 빵을 먹으며 브래드 님의 영화를 보니 빵이 더 잘 넘어간다. 순식간에 영화가 끝났다. 마지막 남은 영화를 보기 전 어제 남은 떡볶이를 데운다. 이 영화가 끝나면 드디어 면접 결과를 알 수 있다. '티베트에서의 7년'이 시작한다. 승무원을 하며 여러 나라를 가봤지만 아직 이곳은 가보지 못했다. 순수하고 평온한 미소를 가진 티베트인들을 보니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다.


영화가 끝났다. 오후 6시 10분 전이다. 컴퓨터를 켜고 회사 홈페이지에 로그인한다. 심호흡을 한다. '좋은 일 있을 거야. 오늘 선배님 두 명이나 보고 빵도 맛있었고 영화도 감동이었으니까'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다 갖다 붙이며 합격을 기원한다. 드디어 운명의 시간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마이페이지로 들어간다. 합격자 확인을 클릭하기 전 목이 탄다.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손이 정신없이 떨린다. 누가 나 대신 확인을 해줬으면 좋겠다. 다시 심호흡을 한다. 클릭하자마자 눈을 감는다. 제발 맨 앞자가 '축하합니다' 이길 바라면서 눈을 천천히 뜬다. 아... 아.. 아... 다시 한번 눈을 떴다 감았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아.. 정말 말문이 막힌다. 내가 다시 비행할 수 있다니 꿈을 꾸는 것 같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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