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합격이다. 오늘 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진다. 기다린 보람이 있다. 서류접수부터 임원면접과 최종 면접까지 모든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경력직 승무원 공지를 보고 지원할지를 하루 정도 고민했다. 나 자신과 진지하게 대화했다. 내가 정말 비행을 하고 싶은 게 맞는지, 비행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에 지원을 안 하면 후회할 거 같다. '그래 지원하고 보자. 서류가 떨어질 수도 있는 거고. 지원한다고 다 붙는 것도 아닌데. 왜 벌써부터 고민할까? 지원하고 고민하자!' 정말 지원하길 백 번 만 번 잘했다. 이제야 숨을 제대로 쉴 수 있다. 숨을 가다듬고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 주 여사! 엄마 딸 합격했어요!"
" 당연하지! 우리 딸 아니면 누가 되겠어! 엄만 당연히 될 줄 알았는데! 울 딸 많이 많이 축하해!"
엄마와 통화를 하니 합격한 사실이 실감이 난다.
은영이에게는 간단히 문자를 남긴다
" 영! 지금 비행 중이지? 나 합격했어. 네가 많이 응원해 준 덕분이야! 너무 고마워, 나 이제 그대와 시드니에서 만날 수 있어! 서울 오면 연락해!"
전현차 카페에 슬그머니 들어가 본다. 몇 명이나 뽑았는지 경쟁률이 얼마나 됐는지 합격후기도 궁금하다. 그런데 생각보다 떨어졌다는 글이 많다. ' 저 떨어졌어요! 전 외항사 경력 4년이고 영어와 중국어도 가능해요. 면접도 긴장하지 않고 잘 본거 같은데 떨어졌어요! 합격하신 분들 스펙 궁금해요!'란 글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글을 보면 운이 정말 존재한다고 느낀다. 난 이번 면접은 그 선배 때문에 완전히 내려놓고 봤다. 임원면접 때보다 긴장이 되지 않았다. 면접관을 승객으로 생각하고 그분들에게 즐거운 비행을 선사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면접을 봤다. 최대한 밝은 미소와 부드러운 목소리 톤으로 면접 질문에 답했다. 그러고 보니 선배의 결과가 궁금하다.
은영이에게 전화가 온다.
" 역시 될 줄 알았다니까!! 정말 많이 많이 축하해! 우리 같이 비행했던 시드니에서 만날 수 있겠다! 진짜 그날이 오는구나! 아 맞다! 그 선배 소식 알지?"
"아니, 나 아직 몰라. 궁금하긴 하네"
"우리 팀에 그 선배 동기 있잖아. 붙었다던데! 징그럽다 진짜.. 정말 끈질긴 인연이다... 너 괜찮은 거야?"
" 될 거 같았어. 같이 면접 봤는데 워낙 대답을 잘해서... 근데 또 보네.. 진짜 그만 보고 싶은데.. 합격하고도 산 넘어 산이네."
" 근데 뭔 걱정이야? 이젠 같이 입사하니까 선배가 아니잖아? 동기지! 널 설마 힘들게 하겠냐? 게다가 우리 동갑이잖아. 아마 그 선배가 널 대하기 더 힘들 거 같은데! 네가 선배 대접해 주면 계속 바라니까 처음부터 정확하게 선 긋고 행동해. 걱정이긴 하다.. 네가 그렇게 할 수 있을지..."
" 너 알잖아... 내가 비행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이젠 정말 비행을 즐기면서 하고 싶어. 이 항공사에서는 그 선배가 날 제발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뿐이야. 만약에 전처럼 날 괴롭히면 여기에선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거니까! 너 말처럼 거기선 선배고 여기선 동기니까. 네가 있어서 정말 든든하다.. 고마워!"
" 네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진짜 마음 단단히 먹은 거 같은데! 이번엔 믿음이 팍팍 간다! 훈련 언제부터 시작이야?"
" 지금 승무원이 많이 부족한가 봐! 다음 주부터 바로 시작이야. 일주일 정도 남았어. 그때까지 살 좀 빼야겠다. 나 어제 떡볶이를 삼시 세끼 먹었잖아.. 게다가 빵까지.. 일주일 안에 이 살들을 어떻게 뺄지 걱정이야... 우리 항공사 유니폼을 입으려면 살을 빼야만 해요! 합격하니 걱정거리들이 하나둘 늘어나네.."
" 근데 넌 먹는 거치곤 많이 찌는 편은 아니야. 한동안 탄수화물은 좀 자제해. 빵이랑 떡볶이만 끊어도 3킬로는 빠지겠다. 아 그리고 너 저번에 보니까 초콜릿을 아주 입에 달고 살더라.. 초콜릿도 줄여!"
"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해주는 네가 너무너무 좋아! 명대로 하겠나이다. 일주일 동안 잘 지켜서 완전히 달라진 나를 보여주겠어! 나 16일 날 훈련 시작인데 너 15일 날 비행 있어? 그때 보면 딱 좋은데!"
" 나 낼까지 오프고 15일 날 오후 랜딩인데 오래간만에 공항으로 올래?"
" 좋아 좋아! 내가 그대 마중 나가리다, 그럼 15일 날 보자. 그때까지 다이어트 열심히 할게!"
면접 후 폭식과 야식으로 찐 살을 일주일 안에 다 빼기는 힘들겠지만 목표가 생겼으니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이제 그 선배와 훈련을 같이 받으니 마음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일주일간 식단을 잘 지키고 마음 단련도 열심히 해서 은영이를 깜짝 놀라게 해 줘야겠다. 그래도 오늘 하루만큼은 합격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