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도착 후 선물을 정리한다. 아까부터 먹고 싶었던 젤리와 초콜릿을 꺼내 먹으며 비행 일기를 쓴다. 항공사를 옮긴 후 유럽 첫 비행이다. 이제는 다른 유니폼을 입고 비행을 하지만 비행의 설렘은 여전하다. 아무 일 없이 첫 비행을 잘 마친 것으로 만족한다. 막상 자려고 하니 아쉽다. 첫 비행을 기념하고 싶어 호텔 바에 간다. 자리를 잡고 와인 한 잔을 주문한다.
" 어, 언제 왔어요?"
" 사무장님! 여기서 뵙네요!"
"오늘 첫 비행이라고 했죠?"
" 네, 그래서 그냥 자기 아쉬워서 간단하게
와인 한잔하려고요!"
" 나도 혼자 왔는데 같이 마실까요?"
" 네, 저야 좋죠!"
사무장님과 이전에 근무한 항공사와 우리 항공사의 서비스 차이점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자연스럽게 사적인 주제로 넘어간다.
" 남자 친구 있어요?"
"아니요. 헤어졌어요. 대학생 때부터 5년을 만났어요. 제가 누군가를 그렇게 좋아해 본 건 처음이었어요. 항공사에서 퇴직 후 자연스럽게 결혼 얘기가 나왔는데 자신이 없었어요. 비행하면서 많이 지쳐서 좀 쉬고 싶었어요. 저를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어요.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먼저 말하고 많이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 놔주길 잘한 거 같아요. 전 계속 방황했거든요. 그래서 혼자 6개월간 여행하면서 생각 정리하고 글 쓰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2년이 이렇게 빨리 갈 줄 몰랐어요. 그땐 비행하기가 너무 싫었는데 지금은 좋아요. 두 번 다시 비행 안 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좋아하는 거 보면 비행 체질인가 봐요!"
" 비행은 중독이죠. 저도 그랬어요. 출산휴가 2년 동안 비행하는 꿈을 얼마나 많이 꾼 줄 알아요? 아이를 키우고 보니 비행은 일도 아니죠! 이렇게 비행하면서 내 생활을 가질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죠. 이제는 비행 계속할 거죠?"
" 그럼요! 저도 사무장님처럼 아이 낳고도 계속 비행하고 싶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
" 그렇죠! 자기만의 커리어가 있다는 게 정말 중요하죠!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그럼 푹 자고 픽업 때 봐요."
" 네, 사무장님, 감사합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방으로 돌아와 욕조에 따뜻한 물을 가득 채우고 들어가니 온몸의 피로가 풀린다. 사무장님과 얘기하고 나니 10년 후에 난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여전히 비행을 하고 있을까? 결혼을 해서 아이가 있을까? 행복한 상상에 미소가 지어진다.
푹 자고 일어 나니 아침 8시다. 어제 갔던 카페에 간다. 아침 시간이라 사람이 많다. 방금 구운 빵 냄새에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아침식사를 주문하니 다양한 호밀빵과 치즈, 소시지, 계란, 딸기잼 그리고 커피가 나온다. 나는 유럽 비행을 가면 조식은 가능하면 나가서 먹는다. 노천카페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음식을 즐기면 마냥 행복하다. 배불리 먹고 나와 주변을 산책한다. 주변 공원에 가니 사람들이 반려견들과 산책을 한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괴테하우스가 있다. 이곳은 이미 여러 번 왔지만 워낙 괴테의 작품을 좋아해서 꼭 들린다. 힘들 때마다 생각나는 괴테의 명언이 있다.
' 당신이 할 수 있거나 할 수 있다고 꿈꾸는 그 모든 일을 시작하라.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용기 속에 당신의 천재성과 능력 그리고 기적이 모두 숨어있다.'
특히 겨울에 유럽을 오면 좋은 점이 있다. 바로 크리스마스 마켓이다. 프랑크푸르트는 뢰머광장에서 마켓이 열린다. 날이 많이 추운데도 사람들이 많다. 역시 크리스마스 마켓은 다양한 먹거리의 천국이다. 나는 한국의 감자전 같은 '카토펠푸퍼'를 주문한다. 모양만 보고 선택을 했는데 다행히도 입맛에 맞는다. 따뜻한 와인인 '글뢰바인'을 마시며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구경한다. 여기에 있으니 12월이라는 게 실감 난다.
내년에도 아름다운 이곳에 다시 올 수 있기를 바라며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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