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시간을 허락하다

사랑의 온도

by 하니작가


"아인아,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 그런데 뭐라고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거 같아서."


"휘야, 나 알아들을 수 있게 얘기해 주라. 뭔 말인지 모르겠어... 뭐가 이기적인 건데?"


휘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나를 쳐다봤다.

"아인아, 내가 요새 생각이 너무 많아. 미국에서 태어나고 살았지만 대학은 꼭 한국에서 다니고 싶었어. 난 충분히 내가 잘 해낼 거라고 생각했지만 힘든 일이 많았어. 그때마다 네가 많이 도와줘서 잘 다닐 수 있었어. 아인이 너 덕분에 잘 적응했어. 이제는 내가 여기 한국에서 취업을 할 수 있을까 불안해. 여기 온 지 벌써 4년이 넘었는데도 난 여전히 이방인이야.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난 너한테 너무 많이 기대고 있어. 내가 일방적으로 너한테 도움만 받고 있어. 어쩌다 보니 나는 너한테 부담을 주는 존재가 됐어. 그렇다고 널 붙잡을 수는 없어. 이건 내 문제니까. 이제는 도움 없이 나 혼자 설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


나는 휘의 말을 듣고 안심이 됐다. 우리와의 관계가 문제가 아니라서.

"휘야, 그게 헤어지자는 이유야? 단지 그거야? 네가 원하는 건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거지? 그런데 내가 있으면 자꾸 기대게 돼서 힘들다는 거고... 그런데 날 붙잡기 미안하니까 헤어지자는 거고? 내가 이해한 거 맞니?


"응... 맞아... 이번이 나에게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 이번에도 안되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어."


"그래, 그럼 남은 기간 동안 죽기 살기로 준비해서 너 꼭 취업해. 내가 아직 얘기 안 했지? 솔직히 나 고민 중이었는데 네가 이렇게 얘길 하니까 결정이 쉬워지네. 나 회사 그만두려고. 너는 취업 준비 중인데 난 회사 그만두고 여행하고 싶다고 말하기 많이 미안했거든. 이김에 우리 한번 떨어져 지내보자. 넌 취업 준비에 더 집중하고 난 여행하면서 나에 대해서 생각 좀 정리하면서 그렇게 지내보자. 연락하지 말고. 그리고 우리 6개월 후에 다시 얘기하는 건 어때? 우리가 서로를 향한 마음이 있다면 그때 다시 볼 수 있는 거잖아. "


휘는 내 대답을 듣고 많이 놀란 눈치다. 난 휘에게 한 번도 회사일이 힘들다고 한 적이 없었다. 휘는 내가 회사에 잘 적응하며 다닌다고 생각했다. 난 휘를 최대한 배려하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했다. 그런 배려가 휘를 더 힘들게 했나 보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 그를 잡고만 싶었다. 지금 당장 그와 헤어질 자신이 없다. 이렇게라도 시간을 조금이라도 벌고 싶다.


"아인아, 회사는 언제 그만두는 건데? 여행은 언제 어디로 가는 건데?"


휘는. 갑작스러운 나의 대답에 궁금한 점이 많아졌다.

" 회사일 많이 힘들었어? 왜 나한테 한 번도 말을 안 했어?"


" 참을 만했어. 견딜만했으니까 지금까지 다닌 거고. 그냥 좀 쉬고 싶어서. 많은 곳을 다니기보다는 한 달 살기를 할 거야. 처음엔 태국 치앙마이에 갈 거야. 그리고 다른 곳은 아직 몰라. 여행 다니면서 가고 싶은 곳이 생기겠지. "


휘는 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난 그가 어떤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는지 느낄 수 있다.

"6개월 생각보다 빨리 갈 거야.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다시 볼지 궁금하네. 여행은 사표 수리되는 대로 가려고 해. 2주 후 가 될 거 같아. 휘야, 헤어지잔 말은 안 들은 걸로 할게. 우리 6개월 후에 보자."


휘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나를 꼬옥 안았다.

" 아인아, 이번에도 네가 또 날 이해해 주네. 여행 가서 아프지 말고 건강 잘 챙겨."


언제나처럼 휘의 품은 따뜻하다. 여행하면서 휘가 많이 보고 싶을 거 같지만 서로의 시간을 허락하기로 했다.


이렇게 휘와 대화를 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 덕분에 나도 결정을 빨리 내릴 수 있었다. 집에 가서 할 일이 생겼다. 사표를 쓰고 비행기 티켓을 사야 한다. 서로에게 주어진 6개월 동안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그 누구도 모른다. 뭔가 이날을 기념하고 싶다. 어떤 방법이 좋을까... 한동안 긴 머리를 고수했는데 이김에 짧게 자르는 것도 좋을 거 같다.


집 근처 미용실에 갔다.

" 아주 짧게 잘라주세요."

저번에 내 머리를 염색해 준 선생님이 긴 머리 이쁜데 왜 아깝게 자르냐고 물어본다.

" 별다른 이유 없어요. 여행 가기 전에 시원하게 자르려고요. '


거울에 비친 짧은 머리의 내 모습이 어색하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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