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건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다
치앙마이에 온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난 님만해민 쪽 아이룸에 머물고 있다. 새소리와 함께 아침을 맞는 이곳에서의 삶은 천국이다. 원님만에 있는 나인원 카페에 가서 간단하게 와플과 커피를 먹고 책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원님만 무료 요가 클래스에서 동갑인 은수를 만났다. 은수는 치앙마이에 이미 여러 번 와서 나에게 좋은 곳을 많이 소개해 줬다. 다양한 나라를 다니며 여행 에세이를 쓰고 있는 은수는 나에게 치앙마이에 온 이유를 물었다.
"음..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어. 남자친구와 문제도 있고. 우리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갖기로 했거든. 갑작스럽게 왔지만 이곳이 참 좋아, "
"나랑 여행을 시작한 계기가 같네. 난 남자친구랑 7년을 사겼고 결혼할 생각이었어. 결혼 날짜도 이미 정했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결혼을 하면 행복할까? 내가 한 결정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마음이 너무 복잡했어. 그래서 고민 끝에 남자친구에게 말했어. 우리 결혼 조금만 늦추면 안 되냐고... 나에게 시간을 조금만 더 줄 수 있는지 물어봤어. 그의 대답은 'No'였어. 그런데 지금 이렇게 여행다니며 글을 쓰고 있는데 지금이 너무 행복해. 진짜 나답게 사는 느낌이야, "
은수의 얘기를 들으니 지금은 힘들지만 서로의 시간을 가지며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거 같다.
" 그랬구나, 은수야, 진짜 너 행복해 보여."
그때 은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결혼을 갑자기 왜 그렇게 두려워했을까? 여자는 결혼 전에 생각이 많아진다고 하던데. 단지 그런 이유는 아니었을 거 같은데 말이다.
"아인아, 처음 결정을 내렸을 때는 너무 힘들었어, 정말 많이 울었어. 내가 너무 사랑한 사람이었거든. 그래서 어린 나이에 빨리 결혼하고 싶었던 거고. 그 사람을 너무 사랑하는 데 결혼은 하기 싫은 나를 나도 이해하기가 힘들었어. 나 때문에 울 엄마는 쓰러지시고 난리도 아니었어. 순식간에 난 불효녀가 됐어. 엄마한테 미안해서 그냥 집을 나왔어. 일도 집중이 안 돼서 그만두고 이렇게 여행하면서 글을 쓰고 있어. 그런데 지금 삶이 난 너무 행복해. 처음엔 정말 후회 많이 했어. 남자친구가 너무 보고 싶어서 회사 앞에 가서 몰래 얼굴만 보고 온 적도 있어. 누군가를 그렇게 좋아해 본 적이 처음이었거든, 그러니까 결혼할 생각이었고. 그런데 이렇게 됐네.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더라. 남친은 이미 결혼했더라고. 나랑 헤어지고 일 년도 안 돼서. 결혼 소식 들으니 완전히 정리되더라."
나랑 동갑인 은수는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웠다.
" 은수야,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 그를 잡고 싶어서 6개월이란 시간을 벌었지만 여전히 불안하거든. 어떤 일이 우리에게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니까. 서로를 믿는 수밖에 없으니까. 처음엔 너무 전화하고 싶고 보고 싶었는데 이제는 조금씩 그런 마음이 많이 줄어들었어. 이러다가 감정이 정리될까 봐 무섭기도 해."
이렇게 은수에게 얘기를 했지만 여전히 힘들고 여전히 휘가 그립다. 은수는 내 마음을 이해한다며 처음에는 힘들지만 시간이 다 해결해 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채우는지가 중요하다며 나에게 글을 쓰면서 마음을 정리하는 건 어떤지 물어봤다. 나는 글이란 걸 써본 적이 없다. 난 뼛속까지 이과다. 실험실에서 출퇴근한 내가 글을 쓴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책 읽는 건 좋아하지만 글을 쓰는 건 나에게 무리다.
" 아인아, 글을 쓰면서 너의 하루를 기록하다 보면 네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들여다볼 수 있어. 글 쓰는 걸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써봐. 나는 자신 있는 분야인 여행 관련 정보를 처음에 쓰기 시작했어. 글을 쓰니까 마음이 정리가 되고 집중할 수 있어서 다른 생각은 안 나더라고. 너도 한번 해봐. 그리고 이 말을 기억해. ' 글을 쓴다는 건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다.'스티븐 킹이 한 말인데 난 이 말이 참 좋더라. 글을 쓰는 목표가 명확해지거든. 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일, 멋지지 않아?"
은수는 나에게 글쓰기의 매력을 어필했다. 나는 한 번도 글 쓰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정말 글을 쓰면 내 생각이 정리되고 나만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럼 즐거움과 슬픔이 공존하는 휘와의 추억을 글로 써볼까? 첫 만남부터 지금 우리의 상황을 회상하며 한번 써보자.'
뜬금없이 치앙마이에서 글을 쓰게 되다니 인생 참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