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지 않는 삶

프라이머리 프랙티스 《부력표본》 안경수 개인전

by chae

서울 부암동, 조용한 언덕을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전시 공간 Primary Practice. 이곳에서 열리는 안경수 개인전 《부력 표본》은 수면 아래 가라앉은 감정, 수면 위로 떠오르려는 저항을 끌어올린다. 이번 전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물’은 경계에 선 존재를 비추며 사라진 것과 살아있는 것, 안과 밖, 표면과 심연 사이 경계를 뒤흔드는 회화를 제시한다. 이 전시를 이끌어가는 중심 개념은 ‘폐허’다. 여기서 폐허는 단지 물리적인 잔해가 아니라, 실현되지 못한 미래를 애도하고, 그 틈에 남은 유령 같은 존재를 알아차리는 감각이다. 안경수는 이러한 폐허라는 정서를 침몰이 아닌 부유라는 상태로 옮겨온다. 끝내 가라앉지 않으려는 몸짓, 그 발버둥이 바로 이번 전시 제목이자 주제인 ‘부력’이다.


안경수는 10년 넘게 도시 외곽 풍경을 좇았다. 그는 빈 공터, 컨테이너, 사각지대 등 도시가 밀어낸 부산물을 관찰하고 그리며 ‘교외 사회’ 연작을 그렸다. 《부력 표본》은 김성우 큐레이터와 3년에 걸쳐 준비한 결실로, 물 위와 아래, 그리고 그 경계에서 부유하는 존재를 다룬다. 수면으로 가까스로 내민 얼굴, 가라앉지 않으려 버둥대는 형체는 부력이 존재함을 증명하는 표본이 된다. 팬데믹 이후, 안경수는 개인이 살아가는 일상을 미시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모든 풍경을 모두 반사하지만 왜곡된 형상을 보여주는 전구에서 영감을 받은 개인전 《판타스마고리아》에서 그는 처음으로 멜랑꼴리라는 정서에 발을 디뎠다. 멜랑꼴리는 우울하다는 뜻을 가진 영단어이지만, 안경수에게 멜랑꼴리는 단순한 우울을 넘어 무언가 존재했던 빈자리, 잊어버린 기억, 사라진 장소를 느끼게 하는 감각이다. 이번 전시 《부력 표본》에 이르러, 멜랑꼴리와 폐허 개념은 가라앉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몸짓이 된다. 이 몸짓은 우리 모두가 겪는 불안과 저항을 보여주는 표본이자, 삶이라는 껍질 너머에 존재하는 이야기이다.


입구 왼편 벽면에, 길이 2미터가 넘는 아크릴 회화 <수영 정원>이 걸려 있다. 이 회화는 사라진 것과 살아있는 것, 그 사이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을 포착한다. 빗물이 빠지지 않은 수영장에는 주변 풍경이 비쳐 보인다. 물 위와 아래가 뒤집어져 있는 것 같기도 한 장면은 현실과 비현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듯하다. 화면 한가운데 선 썩은 흰색 나무는 살아있지만 죽음을 연상시키는 이중적인 존재다. 폐허와 부력이 만나는 이 지점에서, 나무는 단순한 죽음이 아닌 아직도 남아 있는 감정, 사라진 듯했지만 여전히 기억 한편에 미뤄져 있는 기억을 환기시킨다. 이처럼 안경수는 <수영 정원>에서, 수면에 잠시 머무는 환영처럼 잊힌 것과 살아있는 것을 동시에 떠올린다. 이중 풍경, 그 불안정한 경계에 선 나무는 바로 그가 말하고자 한 ‘부력 표본’이다.


전시장 한편에는 <둥둥> 연작과 <허우적> 연작이 걸려 있다. <둥둥>은 물 위로 얼굴을 간신히 내밀고 있는 인물 뒷모습을 클로즈업하고, <허우적>은 수면 아래에서 떠오르려 몸을 움직이는 팔다리를 그려낸다. 두 연작은 수면이라는 사이에 두고 위와 아래, 드러난 것과 감춰진 것, 고요한 표면과 불안한 내면이 교차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이는 물에 잠기지 않으려 애쓰는 시도, 즉 부력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이미지는 멜랑꼴리에서 살아남으려는 저항을 그린다. 안경수는 침잠에 머무르지 않고 표면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그린다. 간신히 머리를 내민 사람, 물 아래서 허우적거리는 팔다리, 완전히 잠기지 않고 끝내 부유하는 몸짓은 우울과 무력, 불안이 삶을 집어삼키기 전에 우리가 보여주는 마지막 몸짓을 그린다.


무언가를 잃고 잊었는지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폐허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폐허에서도 삶은 가라앉지 않는다. 안경수는 흔히 가라앉는 감정으로 여겨지는 멜랑꼴리를 떠오르려 애쓰는 ‘부력’으로 바라본다. 그는 떠오르려는 움직임, 헤엄치려는 시도, 수면 위로 내민 위태로운 몸짓을 ‘표본’처럼 기록한다. 여기서 표본은 기억과 시간을 박제하는 멈춰있는 존재가 아니라, 흔들리며 부유하고 살아있는 잔여물이다. 바닥으로 추락하려는 우울과 가라앉지 않으려 애쓰는 힘이 공존하는 이 자리에서, 우리는 흔들리고 있는 저마다의 몸을 마주한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끝내 존재하고자 헤엄치려 하는 부력 표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