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선수 였던 고등학교 친구
2025... 서울고, 마산용마고 꺾고 이마트배 우승... 7년 만의 전국대회 우승
"바다위에 흩어져 있는 기억에 섬을 나는 기억에 노를 처어 그 섬들을 찾으러 가려 한다..." 하고 일인칭 주인고 나지막한 대사로 시작 되는 2001년에 영화 가 있었다 - "친구"
야구 선수
"나에 기억에 노를 저어" 한국에서 고등학교 반으로 가보면 기억 나는 친구 중에 하나다.
야구 선수.
내가 다니던 고등 학교는 야구를 아주 잘 했던 학교여서 선수들은 반에 몇명 오전 수업만 가끔 들어 오고 대부분에 시간은 야구 연습으로 나가 있었다. 나는 운동 취미도 없거니와, 고등학교 이전에는 단지 키가 크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달리기 그리고 양궁으로 차출 되어 좀 강도 높은 연습도 받고 했는데 잘 하지도 못 했거니와 고등학교 들어갈 나이가 되어서는 부모님이 아주 나서서 말리는 통에 모두 그만 두었다. 중고등학교 되면 당연히 스포츠는 그만 하는 것이었고, 그리고 내 주변에 운동하는 친구도 없어서 자연히 멀리 하게 되었다.
친한 친구도 아니고 그저 가끔 수업들어 오는. 단지 키가 나와 비슷해서 바로 뒷 번호에.
이 친구는 포수 였는데 키도 크고, 뚱뚱하다고 느낄 만큼 씨름 선수 같은 체격에 운동 하는 것이 어떤것인지 직접 느껴 본 적이 있다. 한번은 100미터 달리기에 같이 뛴 적이 있었다. 나는 운동에 취미는 없다 해도 달리기는 잘 하는 편이었는데 이 큰 덩치가 전력 질주에서 그 짧은 100미터 달리기 중간쯤 추월해서 치고 나오는 근력에 대해서는 '운동 선수'라는 것이 저런 것이 구나 하는 느낌이 아직도 선명하다.
놀기
어울려 다녔다. 야구 모자, 유니폼을 입고 다녔는데, 야구 베트가 몇개 삐쭉 나온 큰 파랑색에 Mizuno운동 가방이 다른 친구들 처럼 참고서로 짖눌린 가방에 어깨 쳐진 다른 친구보다 부럽기도 하였다. (Mizuno는 생각 보다 오래된 브랜드다. 1907년 오사카에서 그리고 1997년 타이거 우즈에 Masters Tournament우승으로이어지는.) 오후 수업이 끝날 쯤에는 야구 연습중인 모습을 보았는데, 포수 기어를 하고 손가락으로 투수와 그 둘만이 아는 사인이 오고 가고, 멋진 포즈로 투구 하고 받고, 큰 던지기로 각 루 마다 공을 던져 주고...
화창한 5월 모의 고사 일정으로 갑갑한 수업 시간 사이 사이에, 운동장 맑은 하늘과 함께 박수 쳐가며 짧은 점심 시간에 관중들이었다.
가끔 한강 건너 시내로 가는 버스에서 야구부 친구를 만나면 유니폼에 커다란 운동 가방 어깨에 메고 우연함을 반가워 하며, 버스 안에 앉아 있는 다른 고등학교 학생에게 "좀 앉자아아~" 하고 덩치들이 둘러 싸면, 그중에는 대학생 같아 보이는 형도 있었는데, 거의 바로 일어나 자리를 비켜 주었다. 늘 나에게 앉으라고 권했다. 우리 끼리 낄낄 거리며 신사동 사거리로, 한강 건너 이태원으로, 명동에 어느 카페로 시내로.
주말에 가끔 방배동으로 놀러도 갔다. 이 친구가 부르는 "형"들 이라는 그룹... 가면 잘 해 주었다. 고속 버스 터미널 건물에 당구장이나, 반포동 세화 여고 근처 어느 촌스러운 카페에서, 대학생인지, 재수생이었는지, 아니면 같은 고등학생인지 알수 없는, 하지만 반갑게 있던 어설픈 화장에, 미니 스커트 여자 아이들과 설레임에 떠드는 것은, 입시 스트레스로 나날이 쩌들어 지나가는 17살에 십대 날들에 잠시 나마 숨통을 쉬게 해주는 정거장이었다. 다시 치열한 학교로, 어두운 도서관으로 올라 타기 전에.
고등학교 2학년은 빨리 간다.
막중한 고3을 앞두고 방학 내내 "자율" 학습 이름으로 묻지도 않은 "자율"이라고 모두들, 수업 이후에 남아서 공부 하고 밤에서야 집에 가면서 추운 겨울이 봄으로 변했다.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 과목들을 돌아 가며, 영조, 정조... 임금님 이름들과 동시에 미적분과 확률... 그리고 둘다 서투른 영어, 독어를 시험에 잘 나올 만한 단어와 역사에 사건을 하루에 낚시하면서, 도서관에서 1938년에 쓰여진 서울 어디 작은 마당에서 '낙옆을 태우면서' 이라는 글 어느 문장에 밑줄 그으라는 국어 선생님에 말 그데로 밑줄 그으면서 겨울을 지냈다.
컴컴한 도서관에서 기어 나오면 어두워진 강남 터미널 앞 포장 마차에서 이미 취해 떠드는 양복입은 회사원들 맨 끝자리에서 떡복기/오뎅 모락한 접시 앞에 "고3"이라는게 무슨 암 병명이라도 되는 것 처럼 다가오는 시간을 재잘 거리면서 고2 마지막 해를 맞이 했다.
친구도 큰 청룡기 시합을 앞두고 있었고 그리고 장래 대학팀, 또는 기업팀에 들어 가기 위해 연습에 몰두 하느라 서로 보지도 못하다가 그나마 수업일수 채우는 것으로 몇번 잠깐씩 수업에 들어와 보면서 여름으로 접어 들었다.
계획
하루는 부탁 할게 있다고 큰 덩치를 움추리고 운동 끝나고 만나자고 했다.
2학년 학기말 고사 준비로 바쁘던 여름이 시작하던 6월에 야구 연습후에 땀에 흠뻑 젖은 유니폼으로 부탁한 것은 학기말 고사때 '컨닝' 이었다.
이유는 단 한번이라도 '수' 맞은 성적표를 부모님께 보여 드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 컨닝 으로 받는 성적표가 무슨 소용이 있겠냐 하고 물었지만 단 한번이라도 학창 시절에 성적표 "수" 보는게 부모님에 늘 소원 이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렇게만 해주면 '아주 최고의 선물'을 준다고 했다. 많이 기대해도 되는.
제일 자신 있는 '국사' 과목을 하기로 하고, 잘못된 효도 이지만, 어린 우리는 비장한 악수를 했다.
계획을 성공 시키기 위해 열심히 책임감 있게 공부 했다. 친구도 돕고, 친구는 부모님께 큰 효도 하고, 그리고 기대 해도 된다는 '아주 최고의 선물'을 위해서.
한창 여름에 기운이 시작 할 6월에 마지막 기말 고사 '국사' 시험에 그 친구는 내 등 뒤에 바짝 앉았고. 내가 겨드랑이 사이로 주는 손가락 사인으로 25개에 답을 전 했다. 포수 였던 친구가 늘 하던 투수에게 야구 선수들 만에 손가락 사인처럼. 우리만에 손가락 국사 시험 답안 사인으로 하나도 안 틀리고 다 전달 되어 적어 둘 다 '수' 를 받았다.
소집품 검사
기대해도 된다는 그 최고에 선물는 가방 하나 가득 찬 '플레이 보이' 메거진 이었다. 묵직한 가방을 들고 자랑 스럽게 건네 주었다. 비싸게 수입된 스페셜 콜랙션이러고. 표지도 넘겨 지지 않은 금발에 여신들이 바라보는 빛나는 프린트. 귀하고 귀하게 절하고 받았다.
몇 옆반 친구와 슬쩍 자랑도 하고 체육시간에 나가기 전에 내 가방 옆에 잘 모셔 두고.
가끔 체육 시간에 학생들 소집품을 주로 제일 성격 안 좋은 무서운 선생님이 손 잡이가 반질한 각목 하나 교실에 들어 와서 뒤져 보는 '소집품 검사'가 가끔씩 있었다.
주로 '담배' 가 주범이었지만 이 체육시간에는 내 자리에는 묵직한 플레이 보이가 가득찬 가방이 있었으니. 나는 체육시간에 나가 있었서 '소집품' 검사가 있었는지도 몰랐는데 슬쩍 자랑하느라고 보여준 다른 반에 친구가 뛰어와서 귓속말로 얘기해 줘서 알았다. '너네 반에 지금 소집품 검사 하고 있어 ‐ 너 완전 딱 잡 혔다" - 남에 불행은 행복 일 수 도 있다. '샘통이라는 살짝 기쁨에 미소와.
아이고... 하필이면 그 귀한 선물 받은 날이냐...
의리+여유
내 자리에는 '플레이 보이' 가득찬 가방 걸렸으니.. 헐레벌떡 겁나고, 창피하고, 다가올 후안에 두려움과 이미 벌어진 일.. 가슴 터질 듯이 교실로 뛰어 가는데 교무실 앞에 이 친구가 오후 연습은 안 하고 유니폼을 입은 체로 두 손을 들고 복도 끝에 무릎 끓고 있는게 보였다.
머리위에는 '플래이 보이' 메거진 올려 놓고 하나는 입에 물고 있었고 다른 선생님들이 지나가면서 "짜슥이 공부는 안하고.."
"벌써 부터.. "
"운동 하는 놈들은 ..."
"꼭..수업 분위기 흐트리는 놈들은.."
플레이 보이 잡지책 올려진 머리를 툭툭 치고들 가셨다. 우리가 얼굴이 마주쳤을때는 찡긋 윙크하고 두손 들고 굳건히 무릎 꿁기 자세를 유지 했다.
잠시후 복도로 들리는 그 체육 선생님에 각목이 야구부 유니폼 엉덩이를 내려치는 퍽퍽..
내려 치는 빳다 소리...
야구부에서 체육 선생님이 소집품 검사가 있을거라는 것을 알고 나서 야구 포수 근력에 100 미터 달리기 실력으로 소집품 검사 전에 뛰어 가서 내자리에 모셔 두었던 '최고에 선물 가방'을 다시 자기 자리에 슬쩍 가져다 놓고 나간 것이었다.
기억
오래전 인데 가끔 생각이 난다.
어디에서든지 자기 자리 지키면서 살고 있을 거다.
내가 누가에게 뭔가 주고 나서 그렇게 다시 가져다 놓고 대신 벌 받을 수 있을까?
나는 그때 교무실 지나 가면서 손들고 왜 같이 무릎 꿇지 못하고, 그냥 지나 쳤나?
대신 벌 받으면서 윙크 해 주는 여유는 나는 있을까?
시간이 지나서
오십대로 넓어진 영역들과 많아진 사람들, 조직 속에서 그렇게 손들지 못하고, 같이 무릎 끓지 않고, 알면서 그냥 지나 치는 것들이.
경제 활동이 만드는 생활 속에 이미 받은 돈, 그리고 나서 책임 지고 묻지 않고 다시 줄 수 있나? 그러한 책임 지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5/8/2025
고등학교 뒤로 2025년 5월 처음
다시 한국에 갔을때
그 운동장 층계 자리에 앉아 보았다.
다른 17살 고등학생들 뒤에.
2025년 신세계 이마트배 전국 고교 야구 대회 우승 분위기도 뒤로 하고
오래전에 야구부 친구들 처럼
연습 함성이 한창이었다.
"서울고, 마산용마고 꺾고 이마트배 우승... 7년 만의 전국대회 우승"
2001년 "친구" - 곽경택 감독
/ 장동건, 유오성, 서태화, 정운택
https://youtu.be/hWNzVr1a0gc?si=LJWbS1xnIuRopsv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