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동네서점 산책

낭만이 있는 속초 동네서점 당일치기 여행

by 정제이

작년 이맘때 지인들과 떠났던 강릉과 속초여행.

강릉이 커피와 바다로 유명하다면,

속초는 생선구이와 문우당 서림으로 유명하다.(지극히 주관적인 정의)

칼바람 부는 서피 비치에서

파란 바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를 배경으로

점프샷 찍는다고 폴짝거린 후

속초로 넘어가 맛본 문우당 서림의 아늑함이 문득 그리워졌다.


숙소를 잡기도, 함께 이동하기도 어려운 올해.

그래도 가고 싶다.

나의 낭만이 있는 동네서점 여행이.

그렇다면? 혼자 가야지. 당일치기로.

그렇게 속초 동네서점 여행이 시작됐다.


뚜벅이로 움직일 예정이라 다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목적지는 세 곳을 잡았다.

문우당 서림, 동아서점, 완벽한 날들


양양 해변을 달리는 고속버스 안에서 푸른 양양 해변을 만끽하고

목적지인 속초에 도착.

어라. 여긴 눈이 한 송이도 안 내렸다.

깨끗하고 넓은 십 차선쯤 되는 도로를 차들이 씽씽 달린다. 춥다.

그래도 저 멀리 눈 내린 설악산이 반겨주니 내가 속초에 왔구나 비로소 실감 난다.


/나의 첫 번째 낭만지 문우당 서림

버스와 트럭, 승용차들이 씽씽 달리는 속초 시내에 자리한 문우당 서림

큼직한 진갈색 문이 여전한 모습으로 반겨주는 곳.

이 문을 통과하면 복잡한 시내를 벗어나

책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다.


서점의 모습처럼

푸근한 인상의 사장님이 살갑게 맞아 주신다.

가족이 운영하는 2층짜리 서점은

규모가 꽤 큰 편이다.

천장에 닿을 만큼 서가에 꽂힌 책들이 가득하다.

아 좋다. 쌀쌀맞은 속초 바람을 거스르며 오느라 차가워진 몸도 마음도 풀린다.

곳곳에 놓인 의자에 앉아

책 속에 파묻혀 독서 중인 사람들이 보인다.

혼자와도 어색하지 않은 장소.

어린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와서

동화책을 고르는 모습은 진지해서 귀엽다.


입구에 놓인 서점 안내도를 훑어보고

문우당 서림의 이야기를 소개한 포스터도 읽고 있는데

자주 오는 손님인 듯, 사장님께 책 주문하는 대화가 오간다.

이곳에 없는 책을 주문하는 모양이다.

내가 중학생 시절 동네 서점에서 보던 풍경인데...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면 할인도 해주고 집까지 배달까지 해주는데도

굳이 이곳에 들러 주문하는 모습.

서울 사람에게는 낯선 듯 추억 어린(?) 장면이다.

(서울 대형서점에서도 간혹 이런 주문을 하는 분이 있다. 하지만 다른 풍경)


2층에 올라가면 이곳만의 시그니처

책 속 문장을 뽑아 전시한 공간이 있다.

글자만으로도 이렇게 우아한 공간 연출이 가능하구나.

처음 방문할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공간이다.


인스타를 통해 이번 큐레이션의 주제가 '산'이라는 정보를 접하고

어떤 책들이 선정됐을지 궁금했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부터

환경문제를 짚어주는 책까지 가지런히 전시 중이다.

책을 선정하고 전시했을 정성스런 마음이 느껴진다.


책을 구입하면

2층에 전시된 문장으로 제작한 스티커 세트를 선물로 준다.

종류가 꽤 많아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고르는 즐거움이 있다.


오목하게 들어간 서점 구석에는 독서할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 있다.

노트북을 가져와 작업하는 청년들 옆

빈자리에 앉아 구입한 책을 읽는다.

통창 너머로 보이는 차들은 바삐 다니고

상대적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동네서점 구석자리.

이런 장소에서 독서를 하니 행복감이 든다.


다음엔 아예 문우당 서림만 목적지로 삼고 당일치기로 와야지.

독서하다 배고프면

근처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다시 와서 독서하다 커피가 고프면

잠시 나가 커피 마시고 오고

그러다 해가 지면 서울 올라가면 되고.

거리상으론 190km 떨어진 동네서점이지만

마음만은 이곳이 우리 동네서점 같다.


서점과 책을 좋아하는 가족이 운영하는 서점다운

글자로 공간을 디자인을 하고

우직하고 다정한 친구처럼

동네에 자리한 서점이 사랑스럽다.



/나의 두 번째 낭만지 동아서점

오늘은 오롯이 서점 여행이고 나 혼자 여행.

맘 놓고 또또 서점으로 발걸음을 뗀다.

작년엔 다른 일정들이 있어서 못 갔던 동아서점.

문우당 서림 후문에서 백 걸음도 못 미친 곳에 동아서점이 있다.

이렇게 지척에 훌륭한 동네서점이 둘이나 있다니.

부럽다.


내가 본 속초는

도로가 넓게 뻥 뚫려있고

그 도로를 쌩쌩 달리는 운전자들은

조금이라도 지체하는 차 뒤에 서면 사납게 빵빵거리는 곳.

빈 땅은 여지없이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느라 뚝딱대는 중이고

오피스텔, 호텔, 모텔, 유흥업소가 많아서

낭만적인 모습보다는 거친 뱃사람을 보듯 삭막한 인상이다.

겨울인 데다 방역 단계 격상으로 손님 없는 가게들 모습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속초에 서점이 많다는 건 좋은 소식이다.

여행객들이 속초는 생선구이나 회나 먹고

유흥만 즐기다 가는 동네가 아니라

책 읽는 낭만과 즐거움도 있는 곳으로 기억할 테니.


단층으로 길게 뻗은 건물에 자리 잡은 동아서점은

1956년에 문을 연 동네서점이다.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삼 대째 운영하는 역사가 있는 서점.

책에 찍어주는 서점 도장은

산 모양으로 펼쳐진 책을 겹쳐 놓은 모습이다.

그 옆을 一九五六 한문이 세로로 박혀있다.

설악산에 위치한 1956년에 시작한 동네서점이라는 뜻.

재치 있다.


흰색과 아이보리, 밝은 나무를 사용한 인테리어가

문우당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젊은 청년 같은 서점. 첫인상이 그랬다.

넓고 긴 직사각형 공간에 서점 주인이 선별한

주제별 책들이 각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방문객들이 책을 짚기 편하도록 서가의 높이를 높인 것도 흥미롭다.


여기도 곳곳에 편히 앉을 수 있는 소파와 의자들이 있다.

속초가 좋아지는 지점.

서점 중앙에는 겨울이면 '감사문고'라는 주제로

선물하기 좋은 책을 선별해 추천해 준다는

글귀와 함께 9권의 책을 전시 중이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가벼운 주제부터 무거운 주제까지 아우르는 책 선정은

주인의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문우당에서 이미 책 식사(=독서)를 배부르게 마친 뒤라

이곳에서는 설렁설렁 책을 들춰보게 된다.

"서울서 온 손님, 어떤 책을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해 봤수다."

라며 말을 건네듯 정말 다양한 분야 많은 책들이 꽂혀있다.

독립서적도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주인의 안목으로 큐레이션 한 책장 덕에

대형서점에서는 눈에 띄기 어려울 책이

표지를 정면으로 한 채 의젓하게 서 있기도 하다.

그래. 이런 게 동네서점의 멋이고 낭만이지.


행복한 두 번째 서점 여행에서는 동아서점의 역사가 담긴 책을 구매했다.

서점의 삼 대 사장님이 쓴 [당신에게 말을 건다].

"이거 제가 쓴 책인데요. 사인해 드릴까요?"

수줍은 듯 말을 건네신다. 왜 마다하겠어요.

네임펜으로 꾹꾹 눌러쓴 사인이 담긴 책과

서점에서 제작한 꽃 모양 책갈피 두 장을 받으니

동아서점 단골이 된 듯 기분이 좋다.



서점 여행도 식후경

오후가 되니 맛있는 커피 한잔이 생각나는 시간이 왔다.

흠.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플랫화이트는... 안 보이는군.

속초 커피 맛집은 다음에 와서 찾아야겠다.

이제 서울 올라갈 시간이다.

세 번째 낭만지 완벽한 날들은 다음 기회로 접어두자.



지난주 합정동 동네서점 산책 때와는

다른 매력을 지닌 속초 동네서점 산책.

서울의 동네서점보다 큰 규모에 감탄하고

근현대 유산처럼 역사가 있는 곳이어서

더 낭만적이었던 속초 동네서점 여행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다른 개성을 가진 동네서점이지만

결국 파는 물건은 책이라는 공통분모가 존재하는 두 곳이

책을 파는 공간이자

동네 주민과 여행자의 휴식처로

앞으로 백 년 이상 그 자리를 빛내줬으면...

소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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