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동 동네서점 산책

땡스북스에서 세가방까지 뚜벅이의 서울 여행

by 정제이

오늘은 12월 31일

2020년의 마지막 날.

어제 종무식을 하고 오늘은 휴무일.(야호)

추워도 맑은 날씨.

집에만 있기엔 아깝다.

한껏 고양된 감정을 갖고 찾은 곳은 합정동.

낮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일까.

그 건물이 품고 있는 개성 있는 가게들 때문일까.

낯설면서도 정이 가는 동네다.

첫 목적지는

노랑 바탕에 굵은 검정 글씨의 간판이 반겨주는 곳.

땡스북스다.

‘주차금지’ 대신

‘EVERYBODY BE AMBITIOUS’

멋진 타이포가 반겨주는 곳이다.

매번 주제가 바뀌는 쇼윈도의

이번 전시 주제는

책 [삶의 어느 순간은 영화 같아서] 이다.

녹색의 책과 그에 어울리는 빈티지 영화 소품들

하얀 솜과 눈송이로 장식된 쇼윈도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이곳에 올 때면 느끼는 건

큐레이션을 참 잘한다는 거다.

외부 내부 공간 구성부터

작은 스탬프 하나

가방을 놓을 수 있는

기다란 테이블 배치까지

모든 것들이

[동네서점 땡스북스]라는 컨셉을 향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합정동에 자리한 동네서점답게

땡스북스에는 디자인 관련 도서가 많다.

문외한인 나도 쉽게 볼 수 있는 잡지부터

전문 서적까지

꼭 알맞은 규모로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페미니즘 정치 식물 등등

다양한 주제의 책들도 상당하다.

이곳 책들의 특징은 독특한 사이즈와 디자인을 한

책이 유독 많다는 것.

이것 역시 합정동 다움과 큐레이션의 힘이겠지.

오늘도 배운다.

독립출판물이 아닌 책도 꽤 있다.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담아뒀던 책

[마감 일기]를 이곳에서 구입했다.

대형서점에서 사면 혜택이 더 많을 텐데

왜 굳이 이곳에서 샀느냐고?

책에 8명의 작가 사인이 있기 때문이었다.

같은 책이지만 특별해 보이니까,

이 서점이 오래 지속되길 응원하고 싶으니까.

이런저런 마음을 담아 구입.

영수증에 스탬프를 팡팡 찍어서

구입한 책과 함께 가방에 담고
기분 좋게 다음 목적지로 출발.

지도를 보고도 주변을 빙빙 돌다가

고개를 드니 보이는 두 번째 독립서점.

인스타로 팔로우하면서 꼭 한 번 가봐야지 했던 곳.

빨간색의 철계단을 올라가 힘껏 문을 열었는데.

어랏.

풀메이크업 상태로만 만나던 님을

세수 안 한 민낯으로 뵙는 기분이랄까.

정리 안된 어수선함

첫인상이 그랬다.

책을 색깔별로 구분해 꽂아둔 건 신선한데

높낮이는 들쭉날쭉

새책인지 헌책인지 구분 안 되는 책 상태

너무 많은 책을 꽂아서 꺼내 보기도 쉽지 않다.

어렵사리 고른 책은 너무 낡아서 결국 구입 실패.

하는 수없이 먼지 쌓인 떡메모지 3개를 구입해 나왔다.

추운 날씨로 언 손발에 마음마저 써늘해지려 한다.

‘서점 관리에 조금 더 신경 써주세요.’

사장님은 못 듣는 마음의 소리.

서둘러 추운 마음을 녹일 카페로 고고.

두 번 방문해서 두 번 모두

맛있는 감동을 안겨 준 그곳으로.

한껏 기대감을 안고 플랫 화이트 주문.

밖에 나와 뚜껑을 열었는데

어랏. (오늘만 두 번째 어랏이다.)

내가 주문한 건 플랫 화이트였는데.

지금 내 손에 들린 건

커피우유로 추정되는 액체다.

그래도 맛은 그대로... 가 아니네.

이건 우유 맛 커피잖아.

대체 커피에게 무슨 짓을 하신 거죠.

분명 바리스타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편의점 직원이 계신 그때(나의 상상이다.)

하필 내가 ‘그때’ 간 거였을 거야.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을 믿고 싶지 않아서

내 맘대로 상상해 본다.


항상 좋은 기억만 주던 동네에서

안 좋은 두 번의 기억을 만난 날이다.

서둘러 동네를 떠나려는데

손목에 차고 있던 핏빗에서

오늘 만보를 걸었다고 축포를 쏴준다.

그래 이 축하라도 받으니 마음이 좀 풀린다.

아직 날이 밝은데 벌써 만보라니.

많이 걸었군.

쉬는 날은 시간도 천천히 가나보다.

다시 밝아진 마음으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성수낙낙으로 출발

제주에서 처음 알게 된 세가방.

세상에서 가장 큰 책방의 줄임말인 세가방이

이곳에 팝업스토어를 열었단 소식을 들은 터였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 독립서점 중 30곳을 선정해

한 권의 책과 서점이 보내온 편지를

하나씩 독립부스로 마련한 장소라 했다.

책 전시와 독립서점 연합 공간이라니

참신하다.

인스타로 봐 두긴 했지만

직접 보고 싶어서 갈 수 있는 날을 기다렸는데

그날이 오늘이다.

새로 지은 성수낙낙 건물 1층에 자리한 세가방의

주공간에 들어가기 전 옆 칸의

작은 전시 공간 먼저 들른다.

나의 서점 취향을 찾는 벽면 질문이 있다.

마지막 질문

‘세계문학 전집 양장본 보다는 최신 트렌드를 다룬 책을 사고 싶다.’에 yes라 대답했더니

나는 영감수집가형이란다.
흠 그렇군요.


그 옆 벽에는 30곳의 서점을 표시한 지도가 있다.

나는 몇 곳이나 방문했을까?

세어보니 4곳이다.

많이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분발해야겠군요.

바로 옆 서점 부스들이 모여 있는

주공간에 드디어 입장.

캐비넷 클럽이란 브랜드에서 가져온 전시품인
멋진 포스터들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공간은 짙은 나무판으로 만든 서른 개의 서점 부스로 가득하다.

가보고 싶은 서점 부스에서

책도 고르고 서점 편지도 읽다 보니

까무룩 해가 졌다.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이 많은 서점들을

한 시간여 만에 다 돌았으니

그래도 알찬 여행을 했군.

이젠 집에 가서 송구영신 준비할 시간.

바로 앞 건물 이케아 랩은 다음에 다시 오는 걸로.

아쉽지만 뚜벅이의 서울 서점 여행은 여기서 마무리.

땡스북스 간판과 재치있는 입간판
따뜻한 쇼윈도 전시
나에게 실망을 안겨준 우유 맛 커피/ 세가방에서 찾은 나의 책 취향
전국에서 모인 독립서점 연합 세가방
팝업스토어는 매달 전시 주제가 바뀐다. 이번달 주제는 아임파인, 땡큐앤북
가고 싶은 서점들
재치있는 굿즈들
가장 가보고 싶은 서점 대전 다다르다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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